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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구 코트는 지금 러브에 빠졌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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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흥국생명의 레프트 공격을 책임지는 쌍포 러브(아래)와 이재영. 이재영을 업은 러브는 “재영은 팀 분위기를 올려주는 쿨한 선수”라고 말했다. [용인=김상선 기자]

흥국생명의 레프트 공격을 책임지는 쌍포 러브(아래)와 이재영. 이재영을 업은 러브는 “재영은 팀 분위기를 올려주는 쿨한 선수”라고 말했다. [용인=김상선 기자]

“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사랑’이에요.”

흥국생명 대형 공격수 타비 러브
1m96㎝ 키에 제자리 점프 50㎝
고공 폭격 앞세워 올 득점 3위
훈련 중 걸레질 궂은일도 척척

여자프로배구 흥국생명에 ‘사랑’ 바이러스가 퍼지고 있다. 새 외국인 공격수 타비 러브(Tabi Love·25·캐나다)가 가세하면서 흥국생명도 뚜렷한 상승세다. 한국배구연맹(KOVO)에 등록된 그의 이름은 ‘러브’다. 그러나 그는 또렷한 우리말 발음으로 자신을 ‘사랑’이라고 소개한다. 동료들이나 코칭스태프도 그를 “사랑이”라고 부른다. 이름만큼이나 실력도 사랑스럽다. 러브는 28일 현재 득점 3위(233점)다. 확실한 공격수가 가세한 흥국생명은 2위(6승2패·승점17)를 달리고 있다.

키 1m96㎝인 러브는 올 시즌 여자프로배구 외국인 선수 중 가장 크다. 탁월한 체격으로 지난 4월 트라이아웃(공개 선발) 때부터 기대를 모았다. 가만히 서서 팔을 위로 뻗어 잰 전체 신체 길이는 2m60㎝다. 여기에 제자리 점프가 50㎝ 정도다. 높이가 약점이었던 흥국생명으로서는 최적의 공격수를 뽑은 셈이다.

러브는 “어머니(1m93㎝)와 아버지(1m89㎝) 모두가 장신이다. 두 여동생과 남동생도 키가 커서 배구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2014년 결혼한 남편도 배구선수 출신이다. 러브는 “내 블로킹 기술은 떨어지는 편이다. 그래도 키가 크기 때문에 상대 선수들은 위압감을 느끼는 것 같다. 날 피해서 공격을 한다”며 “그러나 몸을 굽히는데 시간이 걸려서 리시브가 어렵다. 큰 키에는 장점과 단점이 다 있게 마련”이라고 말했다.

러브 덕분에 레프트 공격수 이재영(20·1m78㎝)도 부담을 덜었다. 러브는 원래 라이트 공격수지만 한국 무대에선 국가대표 이재영과 함께 ‘투 레프트’로 활약하고 있다. 공격 때 러브와 이재영이 왼쪽 전·후위를 번갈아가며 맡는다. 강력한 왼쪽 날개진을 구축한 덕분에 흥국생명은 리그 최고의 쌍포를 자랑하게 됐다. 배구 팬들은 이재영과 러브의 활약을 묶어 “재영이는 사랑입니다”라고 부른다.

이도희 SBS스포츠 해설위원은 “레프트는 수비, 라이트는 공격에 중점을 두는 게 전통적인 방식이다. 그러나 흥국생명은 러브와 이재영을 공격형 레프트로 활용하고, 신연경을 수비형 라이트로 내세워 큰 효과를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캐나다 국가대표 출신인 러브는 폴란드·아제르바이잔·독일 등 다양한 리그를 경험했지만 세계 정상급 선수라고 보기엔 실력이 2% 정도 모자란다. 여자프로배구는 지난 시즌부터 트라이아웃 제도를 도입하면서 연봉 상한선(15만 달러)을 뒀다. 이 때문에 화려한 경력보다는 한국에서 성장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갖춘 선수가 주로 국내 무대를 밟게 됐다.

박미희(53) 흥국생명 감독은 “러브는 친화력이 좋아 동료들과 잘 어울린다. 지지 않으려고 훈련도 열심히 한다”며 “항상 긍정적이고 새로운 환경에 잘 적응하는 게 장점”이라고 말했다.

프로 3년생 이재영은 “지금까지 함께 한 외국인 선수 중 러브가 단연 최고”라며 엄지를 치켜올렸다. 이제까지 봤던 고연봉 외국인 선수들과 달리 러브는 훈련 뒷정리 등 궂은 일도 열심히 한단다. 이재영은 “훈련 중 다른 선수가 흘린 땀을 러브가 걸레로 직접 닦더라. 그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정말 우리 팀 동료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박 감독은 “러브는 정말 마음씨가 고운 선수다. 피로 탓에 입술이 부르튼 동료 정시영(23)에게 ‘내 탓에 경기를 일찍 끝내지 못했다. 내가 힘들게 해서 상처가 난 것’이라며 미안해 하더라”고 귀띔했다. 러브는 “우리 팀에는 젊은 선수들이 많아 재미있다. 위기가 닥쳐도 끈끈한 동료애로 이겨내는 멋진 팀”이라고 말했다.

러브 덕분에 흥국생명엔 활력이 넘친다. 특히 이재영이 펄펄 날고 있다. 지난 시즌 외국인 선수(테일러→알렉시스)의 부진과 부상 탓에 이재영은 홀로 공격을 책임져야 했다. 그러나 올 시즌엔 러브와 번갈아 공격을 하면서 부담감이 줄어들었다. 이재영은 득점 7위(149점), 공격성공률 4위(41.51%)에 올라 있다. 리우 올림픽을 마친 뒤 한층 성숙해진 이재영은 “영어가 짧더라도 러브와 대화를 많이 하려고 노력한다. 둘 다 부상 없이 올 시즌을 치른다면 우승 트로피를 함께 들어올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글=박소영 기자 psy0914@joongang.co.kr
사진=김상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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