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 많을수록 보험료 더’ 실손보험 손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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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실손의료보험을 활용해 도수(徒手)치료 등을 받으려면 보험료와 자기부담금이 더 비싼 특약에 가입해야 할 것으로 예상된다. 또 의료 보험금을 청구하지 않을 경우 가입자가 낸 보험료의 일부를 되돌려받는 제도도 도입될 전망이다. 보험연구원과 한국보험계리학회는 28일 ‘실손의료보험 제도개선 공청회’를 열고 개선 방안을 제시했다.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의 공동 후원으로 진행된 공청회라 이날 나온 개선안은 상당 부분 정부안에 반영될 것으로 전망된다.

실손보험은 국민건강보험이 보장하지 않는 비급여 진료항목을 보장해주는 상품이다. 지난해 말까지 전 국민의 65%인 3265만 명이 가입해 ‘제2의 건강보험’으로 불린다. 하지만 보장 영역이 너무 방대해 과잉진료나 ‘의료쇼핑’ 등 도덕적 해이를 유발한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이 때문에 보험사 손해율(납입 보험료 대비 지급 보험금의 비율)이 높아져 보험료 인상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이대로라면 보험료가 너무 높아져 실손보험 제도 자체가 존폐 위기에 직면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제도 개선이 필요한 이유다.

진료범위 따라 기본·특약형 분리
보험금 청구 적을 경우 환급·할인
의료쇼핑 많은 항목은 부담 추가

이날 공청회에서 제기된 개선안의 핵심은 보험금을 많이 받을수록 보험료를 많이 내는 구조를 만들자는 것이었다. 한국계리학회장인 최양호 한양대 금융보험학과 교수는 “기존 실손보험의 보장항목 중 도수치료·체외충격파·증식치료·비급여 주사제 등 과잉진료 우려가 큰 항목을 별도의 특약으로 분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약 가입자의 경우 진료비 자기부담금 비율을 현행 20%에서 30%로 높여야 한다는 주장도 덧붙였다.

실손보험을 저렴한 비용을 치르고 기본적인 처방에만 활용하는 기본형과 비싼 비용을 치르고 보다 넓은 범위의 진료에 활용할 수 있는 특약형으로 나누자는 얘기다.

정성희 보험연구원 연구위원은 반대로 보험금을 적게 받는 가입자에 대한 보험료 환급 및 할인 제도를 제시했다. 실손보험에 가입했지만 보험금을 청구하지 않거나 적게 청구한 가입자는 일부 보험료를 되돌려받거나 할인받을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실제 독일은 1년간 보험금을 청구하지 않으면 최대 4개월치의 보험료를 되돌려준다. 영국은 보험금 청구나 미청구 횟수 및 기간에 따라 보험료를 할인, 할증하고 있다.

가입자 부담을 낮추기 위해 다른 상품에 실손보험을 끼워파는 관행을 금지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최 교수는 “보험사는 위험도를 낮추기 위해, 보험설계사는 판매수당을 많이 받기 위해 실손보험을 다른 보험상품과 패키지로 묶어서 판매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단독형 실손보험의 보험료는 월 1만~3만원 정도지만 암·뇌졸중 등 보장특약이 추가로 포함된 패키지형은 10만원이 넘는다. 하지만 보험료가 훨씬 저렴한 단독형 가입 비중은 전체 실손보험의 3.1%에 불과한 실정이다. 보험소비자가 보험사와 보험설계사로부터 제대로 된 정보를 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입자 편의성을 높이기 위해 인터넷과 모바일 등 다양한 채널을 통해 실손보험에 가입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현재 실손보험을 인터넷으로 판매하는 곳은 4곳에 불과하다. 금융당국은 이날 공청회에서 제기된 의견 등을 종합해 조만간 정부안을 확정할 계획이다.

박진석 기자 kaila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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