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산마을 뒤흔든 광란 3시간|5인조 살인강도단이 잡히기까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밀양=임시취재반】 5인조 납치살인·폭행사건의 범인들은 한 산골마을에서 광란과 잔혹의 마지막 3시간을 보내고 집단음독, 경찰에 붙잡혔다.
범인들은 4차례의 검문과 헬기까지 동원한 2천여 경찰병력의 철통수색망(?)을 유유히 빠져나갔으나 허기에 지쳐 민가에 들어갔다가 주민들의 신고로 경찰이 출동하자 끝까지 자수를 거부, 스스로 삶을 포기하며 인질·방화·칼부림 등 난동을 벌이고 저항했다.
일본도와 과도로 무장한 범인들은 서부활극속 무법자행세를 하면서 피를 보며 대중가요를 합창하는 등 인간성 상실의 광란을 보였으며, 경찰이 자수를 권유하자 저항하며 인질을 칼로 cLFFJ 상처를 입히고 점거했던 민가에 방화하고 음독하는 잔혹성을 보였다.
◇출현=범인들은 지난 31일 하오 9시쯤 새마부락 이상교씨(27)집에 나타나 찬밥을 뒤져먹다가 이씨의 어머니 김명분씨(57)가 아들 이씨의 이름을 부르며 들어오자 김씨를 안방으로 끌고 가 『밥을 지어달라』고 요구했다.
김씨가 부엌으로 나가 밥을 짓자 이들 중 1명이 흉기를 들고 쫓아나와 감시했다.
하오 9시40분쯤 청도면으로 경운기를 수리하러갔던 김씨의 아들 이씨가 돌아오자 범인들은 어머니 김씨에게 『손님이 있다』고 말하도록 지시했다.
◇인질=범인들은 이씨가 집안으로 들어오자 이씨의 목에 길이 30㎝쯤의 등산용 칼을 들이대며 『꼼짝하면 죽인다』고 위협, 무릎을 꿇게 했다.
범인들은 길이 70㎝와 43㎝쯤의 일본도 2자루, 길이 15.5㎝와 11.5㎝쯤의 등산용 칼 2자루등 모두 6자루를 손에 들고 『모두 죽여버리겠다』 『빨리 밥을 가져오라』고 소리치며 이씨를 위협하고 창호지로 된 방문을 칼로 찢기도 했다.
이때 이씨가 범인들에게 『경찰에 자수하라』고 권유하자 범인 중 1명이 일본도뒷등으로 이씨의 왼쪽어깨를 내려치기도 했다.
◇신고=하오 10시쯤 부엌에서 밥을 짓던 김씨가 자신을 감시하던 범인 1명을 따돌리고 1백50m쯤 떨어진 이장 이윤우씨(47)에게 알렸고 이장 이씨는 전화로 밀양경찰서 상동지서에 『강도범이 나타났다』고 신고했다.
범인들은 김씨가 집을 빠져나가자 아들 이씨에게 택시를 불러달라고 요구, 이씨가 평소 알고 지내던 개인택시운전사 안수광씨(46·밀양군 상동면 가곡리475)에게 전화를 걸었다.
◇출동=신고를 받은 밀양경찰서 상동지서장 권진식경사(46) 등 경찰관 4명과 방위병 2명이 출동, 때마침 이씨의 전화를 받고 새마부락으로 가던 운전사 안씨를 만나 경남2바2917호 안씨의 개인택시를 타고 함께 이씨집에 도착했다.
이어 밀양서 형사계장 송재영경사(47) 등 형사 8명과 전경 5분대기조 9명이 타이탄트럭을 타고 도착, 이씨집 주변을 포위했다.
◇음독·방화=이씨집에 도착한 택시운전사 안씨가 클랙슨을 울리자 밖을 내다보고 경찰이 출동한 것을 눈치챈 범인들은 『다 틀렸다』『함께 죽자』며 이씨집 창고에서 가져온 농약을 방안에 있던 스테인리스 술잔에 한잔씩 따라 마셨다.
범인들은 인질 이씨에게도 극약을 마실것을 요구, 이씨가 거절하자 주먹으로 때리기도 했다.
범인 중 한 명은 농약을 마신 뒤 괴로와지자 라이터로 방안에 걸려있던 옷에 불을 지른 뒤 『경찰은 물러가라』고 소리지르며 이씨의 머리채를 잡고마당으로 뛰쳐나왔다.
◇대치=범인 4명은 집에 불을 지른 뒤에도 방안에서 포위경찰에 빈병·칼등을 던지고 욕설을 퍼부었으며 김경태는 마당 한복판에 이씨를 꿇어앉힌 채 목에 일본도를 들이대고 경찰을 향해 『조금만 움직이면 이놈을 죽여버리겠다』고 소리쳤다.
경찰은 범인들이 이씨를 살해하거나 밖으로 뛰쳐나올 것에 대비, 총에 실탄을 장전하고 핸드마이크로 자수를 권했다.
범인들은 1시간여 동안 대치하던 중 고통이 심해지자 방·창고·마당 등에 모두 쓰러졌다.
◇검거=하오 11시30분쯤 마당에서 이씨의 목에 칼을 들이대고 있던 김경태가 고통스러운 얼굴로 이씨를 끌고 이 집 아래채 창고 옆 사랑방으로 데리고 가 이씨의 왼쪽 옆구리를 칼로 찔렀다.
순간 이씨는 김의 가슴을 발로 차 땅바닥에 넘어뜨리고 『사람 살려라』고 외치며 집밖으로 뛰쳐나왔다.
하오 11시35분쯤 정성태(22)는 마당에, 최형호 김성만 김모 등 3명은 안채 창고에 쓰러진 채 경찰에 붙잡혔고 11시47분 김경태도 아래채 사랑방에서 붙잡혔다.
◇후송=경찰은 실신상태의 범인들을 경찰트럭 등으로 영남종합병원으로 옮겨 위세척 등 응급치료를 받게 했다.
법인들 중 3명은 1시간 뒤 의식을 되찾았고 왼쪽옆구리에 길이 2∼3㎝쯤의 상처를 입은 이씨는 봉합수술을 받았다.
◇은신=범인들은 지난 30일 하오 2시20분쯤 밀양군 상동면 도곡리 순천박씨 재실에 스텔라승용차를 버린 뒤 2㎞쯤 떨어진 용암봉(해발 6백83m에 올라 8부능선 바위틈에서 하룻밤을 새웠다.
이들은 산에 오르면서 빵5개, 담배 6갑, 쌀 반되를 준비했으나 성냥을 미처 챙기지 못해 밥을 짓지 못하고 담배도 피우지 못해 빵과 생쌀로 요기를 했으며 칡뿌리를 캐어 목을 축였다.
이들은 31일 아침 용암봉에서 4㎞쯤 떨어진 새마부락 뒷산으로 이동했으며 경찰 헬기가 공중수색을 펼칠 때는 숲속으로 몸을 숨겼다.
범인들은 물이 없어 목이 마른데다 생쌀마저 동이 나자 심한 허기를 이기지 못하고 하산을 결심, 하오 7시쯤 새마부락으로 내려가 이씨집으로 들어갔다.
◇수사=밀양경찰서는 1일 범인들의 의식이 완전 회복되는 대로 이들의 신병을 경북 포항경찰서로 넘기기로 했다.
포항서는 이들의 신병을 넘겨받는 대로 최정열씨 납치살해사건에 대한 현장검증을 실시하고 지난해 11월부터 포항·영일·경주·대구 등지에서 발생한 30여건의 강도사건과의 관련여부에 대해서도 집중수사키로 했다.
경찰은 범인검거에 공이 큰 밀양서 상동지서 석이근, 형사계 김상출·정원식순경 등 3명을 1계급 특진시키기로 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