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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리포트TONG] 청소년을 위한 집회 주최 매뉴얼-천안여고의 경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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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건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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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실 게이트’로 전국적으로 집회와 시국선언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청소년들이 직접 만들고 이끄는 집회들도 수차례 화제가 됐다. 그 청소년들은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고, 어떻게 방법을 알아서 집회를 주최할 수 있었을까.

지난 10일 충남 천안시 신부동 문화공원에서 집회를 주최했던 천안여고 3학년 학생들에게 경험담을 들었다. 이들도 집회 주최는 처음 경험하는 일이었다. 주최자 4명 중 김예림·오소민·유화정 3명을 인터뷰해 또래를 위한 집회 매뉴얼을 정리했다. 

1. 다른 집회에 참여하기

안녕! 나는 얼마 전 천안에서 있었던 청소년 집회를 주최한 흔한 고3이야. 첫 집회인데 400명 가까운 청소년들이 함께 했고, 천안 최대 규모였다고 해.

처음 집회를 열겠다고 마음을 먹은 건 지난 5일 서울 광화문 촛불집회에서였어. 그곳의 뜨거운 열기에 나는 많이 놀랐어. 그에 비해 천안은 너무 조용했거든. 많은 사람들의 함성소리를 듣고 ‘우리 지역에서도 집회를 열어야겠다!’고 결심했어. 학교에 가서 친구들에게 이 얘기를 하니까 나랑 같은 뜻을 가지고 있는 친구들이 있더라고. 그 친구들과 함께 바로 집회를 준비하기 시작했지.

2. 집회 개최의 시작은 장소 섭외

우리가 제일 처음 했던 건 장소를 섭외하는 일이었어. 우리는 천안시 청소년들이 가장 많이 찾아오는 ‘신부문화공원’을 선택했지. 신부문화공원 상인회에 연락해 장소 섭외비용은 얼마나 되는지, 우리가 정한 시간에 이용할 수 있는지 여쭤봤어. 우리 지역 같은 경우에는 전기를 사용하면 1만원, 음향까지 사용하면 5만원이 들더라고. 혹시 음향시설을 직접 구할 수 있다면, 먼저 알아본 뒤에 연락을 해야 해.

3. 진행 순서 구성

아까 말했다시피 나는 광화문 집회에서 본 걸 참고해서 집회 진행 순서를 구성했어. 앞에서 랩도 하고 노래도 하는 것을 보면서 ‘저런 식으로 흥을 띄우면서 사람들의 참여를 이끌 수 있을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했어. 또 어떤 멘트를 하면 사람들이 많이 호응을 하는지도 배울 수 있었어. 하지만 무엇보다도 광화문에서 얻은 가장 중요한 경험은 ‘사람들의 에너지’였어. 집회에 모이는 사람들의 힘을 믿게 된 거지.

순서를 짤 때는 많은 것을 고려하려고 했어. 같은 학교 학생만 계속 나오기 보다는 여러 학교 학생들이 번갈아가면서 나오게 했고, 발언만 계속하다 보면 지루해질 수 있으니 분위기를 다시 띄우기 위해 중간에 노래를 부르는 무대도 넣었어.

4. 홍보 및 참가자 모집

그 다음으로 우리는 이 집회에 참여할 청소년을 모으기 시작했어. 우선 천안 시내 고등학교 전교 회장들에게 알려 각 학교마다 인원을 구했어. 다음으로는 학생들이 잘 알고 있을 만한 유행어를 활용해 홍보물을 만들었고, 그걸 여러 페이스북 페이지들에 올렸지. 아마 참여한 청소년들 대부분은 페이스북에 올린 포스터를 보고 왔을 거야.

5. 최소 이틀 전 집회 신고, 질서유지인은 넉넉히 선발

집회 신고는 직접 관할 경찰서 민원실에 가서 했어. 집회 날짜, 장소, 참여 예상인원, 대표자, 질서유지인 등을 적어야 해. 여기서 중요한 건 참여 인원수에 따라 질서유지인의 수가 달라진다는 거야. 질서유지인은 참여 인원의 5~10% 정도가 적당해. 우리의 경우, 원래 예상한 참여인원은 100명 정도였는데 실제로는 거의 300-400명이 참여해서 경찰 측에선 최소한 11명의 질서유지인이 필요하다고 하더라고. 혹시 예상보다 더 많은 인원이 참여할 수 있으니, 질서유지인은 넉넉히 선발해 두길! 그리고 신고는 한달 전부터 할 수 있는데, 최소한 이틀 전에는 해야 된다는 것 잊지 마!

질서유지인은 만 18세 이상이어야 하고, 일반 참가자랑 구분되게 표시해야 해. 질서유지인을 반드시 둬야 할 필요는 없지만, 질서유지인이 없다면 일몰시간 후에는 옥외집회를 하거나 도로행진을 할 수 없어. 수업 끝난 뒤 모여야 하는 청소년들의 집회라면 사실상 반드시 필요한 셈이지.

6. 집회 물품 준비

처음 직접 집회를 열고자 한다면 물품 준비하는 것도 많이 어려울 거야. 우리는 처음에 초를 500원에 팔고, 피켓은 각자 준비하는 쪽으로 가려고 했어. 그런데 그 전날 민주노총에서 주최한 집회에 참여하던 중 우연히 그곳 관계자와 이야기가 되어 피켓과 초, 종이컵을 지원받게 됐어. 그리고 피켓을 넣을 L자 홀더 500개는 집회 준비를 좋게 봐주신 분들이 지원해 주셨지. 우리는 우연히 지원을 받게 되었지만, 각종 단체에 요청하면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거야. 겁내지 말고 연락해봐.

7. 사회자의 역량도 중요해

아무래도 수험생이다 보니 수능 공부도 해야 하고, 면접 준비도 해야 하는 시기였지. 집회 준비에 시간을 많이 할애하는 건 사실 힘들었어. 그리고 주최자가 같은 청소년 또래여서 그런지 서로 조금이라도 더 돋보이려고 하는 학교간 경쟁도 조금씩 있어서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 도중에 발언 순서가 많이 바뀌어서 혼란스럽기도 했어. 그렇지만 그런 문제들은 주최자가 배려심을 갖고 풀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해. 진행 순서와 관련된 문제는 노련한 사회자 덕분에 잘 넘어갈 수 있었어.

8. 하늘은 내 맘대로 안 된다고!

무엇보다 계획했던 방향과 다르게 진행에 차질이 생길까 하는 걱정스러운 마음이 컸어. 하필이면 그날 비가 온다는 예보가 있었고, 또 비 때문에 많은 학생들이 못 오게 되면 어떡하나 싶었지. 실제로 저녁에 비가 왔어. 다행히도 많이 온 건 아니었고, 비옷도 지원받을 수 있어서 큰 문제는 아니었지만 심리적인 부담감 때문에 많이 힘들었어. 심지어 쉬는 시간에 잠깐 쪽잠을 자다 시위하는 꿈을 꾸기도 했을 정도였어.

9. 청소년들의 나랏일 관심, 당연해지길

우리의 이야기가 집회 준비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어.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어. 처음에는 열의가 넘쳤는데, 준비 과정이 벅차서 순간적으로 괜히 했나 생각이 들 때가 있을 지도 몰라. 그럴 때에는 관련 뉴스를 보거나 전에 참여했던 집회 현장을 생각하며 다시 마음을 다잡길 바라. 또한 준비하는 학생들은 본인들이 잘 하고 있다는 자부심을 느낄 텐데, 물론 그런 생각을 가지는 것도 좋지만, 다른 목소리도 존중해야 해.

우리와 뜻이 다른 사람들이 방해할 수도 있어. 예를 들어 박근혜 대통령을 지지하는 사람이라든가 청소년들이 이런 걸 해봤자 세상이 뭐가 달라지냐며 손가락질 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어. 괜히 그런 의견 때문에 상처를 받고 의기소침해지지는 마. ‘이런다고 달라지겠어’하는 마음으로 아무 행동도 하지 않는다면 달라질 건 아무것도 없으니까. 이제는 청소년들이 나랏일에 신경을 쓰는 게 대단한 일이 아니라 당연한 일이라고 인식이 바뀌었으면 해.

글·사진=이도현(천안여고 1)·박건희·정은지(천안여고 2) TONG청소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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