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태열 “여러분이 강대국 앞에서 비굴해지면 대한민국이 비굴해진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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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태열 신임 주유엔 대사 [뉴시스]

조태열 신임 주유엔 대사 [뉴시스]

“패기 있고 기개 있는 외교관이 되길 바란다. 여러분이 (강대국 앞에서)비굴하게 굴면 우리 대한민국이 비굴해지는 것이다.”

외교부 2차관으로서 3년 8개월 재임이란 역대 최장수 차관 기록을 남기고 떠나는 조태열 신임 주유엔 대사의 표정은 홀가분하기보다는 결연했다. 21일 오전 서울 도렴동 외교부 청사에서 열린 이임식에서 그는 최순실씨 국정농단 사태를 의식한 듯 “지난 한 달 동안 국내에서 일어났던 여러가지 일들로 인해 떠나는 마음이 납덩이처럼 무겁다”며 후배 외교관들에게 여러 당부를 남겼다.

조 대사는 “어렵고 힘든 시기에 우리 외교의 한 축을 맡아 몸 던져 일할 수 있었다는 것은 저에게 큰 보람이었다”고 돌아봤다. 그러면서 “전례 없는 위기상황이라고 볼 수 있는 대내외적 환경에 직면해 외교적 정책 판단에 있어 오류를 범하면 우리나라의 미래를 바꿀 수도 있는, 소중한 기회를 놓쳐버릴 것이란 생각에 고민할 때가 많았다”고 말했다.

양자·다자 통상 분야에서 크고 작은 협상에 직접 관여하며 잔뼈가 굵은 ‘협상 베테랑’인 그는 “30여년 간의 협상 경험을 돌아보면 때로는 무례하다고 할 만 한 강대국 대표들의 행위에 분노했고, 그 앞에서 헛헛한 웃음을 짓는 우리 대표들을 보면서 좌절도 느꼈다”고 소개했다. 이어 “여러분도 비슷한 경험을 할 것”이라며 “힘센 자 앞에서 당당하려면 패기가 있어야 하고, 지식과 논리로 무장해야 한다. 지금부터 준비하라. 여러분이 당당하지 못하면 대한민국이 당당해지지 못한다”고 강조했다. “힘센 자 앞에서 당당하고, 약한 자 앞에선 따뜻한 외교관이 돼달라”면서다.

그는 또 “기회는 꼬리가 없어서 (뒤에선)붙잡을 수 없다. 부담과 함께 찾아오는 기회를 무서워하지 말고 붙잡으라”고 주문했다. 공직자로서의 기본도 강조했다. “‘다들 반칙하니까 나도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과 매 순간 공직자로서 올바른 선택인지 고민하는 사람의 20년 뒤, 30년 뒤는 확연히 다르다. 인생은 매순간 선택이란 점에서 연결된 선이며, 선택의 책임은 자신이 지는 것”이라면서다.

고(故) 조지훈 시인의 막내아들로서 뛰어난 문필력을 자랑하는 조 대사의 마지막 당부는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그는 “실패가 많을 텐데 성공으로 이어지길 바란다. 수많은 실패와 더 큰 성공을 기원한다”고 말했다.

유지혜 기자 wise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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