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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산 케이블카 사업지역 산림조사 부실 논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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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산 오색 케이블카. [자료 강원도]

설악산 오색 케이블카 사업. [자료 강원도]

설악산국립공원에 케이블카가 설치될 경우 잘려나가게 될 나무의 숫자와 종류 등에 대한 조사가 부실하게 진행됐다는 지적이 제기돼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환경단체 "나무 종류·숫자 엉터리 조사"
"2~4명이 이틀만에 7곳 조사는 불가능"
사업자 "산에서는 정확한 조사 어려워"

또 이와 관련된 환경영향평가서(이하 평가보고서)가 부실 작성된 사실이 확인될 경우 단순히 보완하는 수준이 아니라 부실 작성에 대한 법적인 책임까지 물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녹색연합 등 환경단체들로 구성된 설악산국립공원지키기국민행동(이하 국민행동)은 20일 보도자료를 통해 "케이블카 설치를 추진하는 강원도 양양군이 환경부에 제출한 평가보고서 내용의 사실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지난 13일 관련 전문가들과 함께 설악산 현장을 조사한 결과, 평가보고서가 엉터리 허위로 작성된 것으로 드러났다"고 밝혔다.

국민행동이 문제 삼은 것은 평가보고서 중에서도 매목(每木)조사 부분이다. 개발사업으로 훼손 우려가 있는 지점 주변의 나무의 숫자와 종류를 빠짐없이 조사한 내용이다. 이는 개발대상지역 내에 멸종위기 식물이나 희귀종이 존재할 경우 이식 등 대책을 수립하기 위해 필요한 조사다. 설악산 케이블카사업은 사업지역이 국립공원 지역이어서 정확한 매목 조사의 중요성은 더 강조되고 있다.

설악산 케이블카 평가보고서에서는 상부·하부정류장, 상부·하부 가이드타워, 중간지주 6개, 상부 산책로 등 모두 11곳에 대해 실시한 매목조사 결과를 담고 있다. 이에 따라 국민행동 측은 이들 11개 지점 중 2번 중간지주가 건설될 지점에 대해 확인조사를 실시했다.

하지만 양양군측이 제출한 평가보고서 내용은 실제 상황과 달랐다. 평가보고서에서는 교목 6종 95그루, 아(亞)교목 9종 168그루가 있다고 돼 있으나, 국민행동 측은 조사를 통해 교목 5종 159그루, 아교목 9종 184그루를 확인됐다. 국민행동 측 조사에서 80그루(23%)가 더 많이 조사된 것이다. 특히 평가보고서에 여러 그루 존재하는 것으로 나와있는 음나무가 국민행동 측 조사에서는 한 그루도 확인되지 않았다.

확인조사에 참여했던 서울시립대 조경학과 한봉호 교수는 "음나무는 약재로 쓰이기 때문에 (훼손되는 경우가 많아) 군락으로 존재하는 경우가 드물다"며 "더욱이 줄기에 가시가 있어 다른 나무와 쉽게 구별이 된다"고 말했다. 한 교수는 "음나무를 구별을 못했다면 조사할 자격이 없는 사람이 조사에 참여했거나, 현장 조사를 아예 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또 평가보고서에서는 중간지주가 들어설 경우 50그루 정도만 훼손될 것이라고 서술했지만, 국민행동 측은 "장비진입과 진입로 정비 등으로 인해 343그루 대부분이 훼손될 것으로 판단된다"고 주장했다.

국민행동 황인철 상황실장은 "평가보고서에서는 가로 40m, 세로 40m의 방형구(1600㎡ 면적)에 대해 조사를 했다고 밝혔는데, 2번 지주 예정지 한 곳을 조사하는 데만 10명이 두 시간이나 걸렸다"며 "평가보고서에서 2~4명이 이틀 동안 7개 지점을 조사했다지만 이는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방형구를 구분하기 위해 줄을 치지 않고 대충 조사를 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한봉호 교수는 "우리 연구팀도 연간 1000개씩 방형구 조사를 하지만, 아무리 빨리 해도 두 사람이 조사를 하는 데는 6~8시간 걸린다"고 말했다.

국민행동 측은 사업자인 양양군이 제출한 조사 야장(野帳, field note)과 평가보고서의 도면도 큰 차이가 나타난다고 지적했다. 조사 현장에서 그때그때 직접 나무의 위치와 종류를 그려놓은 야장 내용과 평가보고서의 내용이 다르다는 것은 현지조사를 실시하지 않은 증거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평가보고서를 작성한 미강생태연구원의 정흥락 원장은 "산지에서는 금을 긋고 하는 게 아니라서 정확하게 조사할 수는 없고 훼손될 지점에 대한 개략적인 그림을 보기 위해서 하는 조사"라며 "조사하는 사람마다 나무 종류가 조금씩 다르게 나올 수도 있다"고 말했다. 정 원장은 또 "조사야장은 우리 편의대로, 우리가 정한 양식대로 작성한 것이고, 야장의 기초데이터(raw data)를 분석가공해서 작성한 보고서는 야장과 다를 수밖에 없다"고 해명했다.

이와 관련 한봉호 교수는 "줄을 치지 않고 매목조사를 했다는 것은 비과학적인 조사임을 인정한 것"이라며 "그게 관행이라면 그동안 환경부가 협의한 모든 환경영향평가가 잘못이라는 의미"라고 반박했다.

원주지방환경청 류호일 환경평가과장은 "훼손될 지점의 나무에 대한 조사는 해야 하지만 반드시 매목조사 방법일 필요는 없다"며 "조사에 따라서 (결과가) 약간 차이가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반드시 해야 할 조사가 아니기 때문에 다소 미흡해도 큰 문제는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류 과장은 "평가보고서에서 틀린 점은 보완하라고 이미 이달 초에 양양군에 지시를 내렸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국민행동 측은 "매목조사는 환경영향 협의 당시에 환경부에서 요구해서 실시한 것인데, 이제 와서 대충해도 문제없다고 하는 것은 자기 모순"이라며 "평가보고서를 허위 작성한 사업자에 대해 법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반박했다.

국민행동 측은 "잘못된 평가보고서에 대한 검증 책임을 소홀히 한 환경부에 대해서도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강원도 양양군이 추진하고 있는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사업은 설악산 오색리 하부정류장에서 해발 1480m 높이의 끝청 하단 상부 정류장까지 총 3.5㎞ 구간에 케이블카를 설치하는 것이다. 양양군은 지난 7월 26일 원주지방환경청에 평가보고서를 제출했으며, 현재 협의 절차가 진행중이다.

강찬수 환경전문기자 kang.chans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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