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박·최 게이트’ 혼돈, 법적·정치적 수습책 찾아야 할 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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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오늘 저녁에 있을 광화문 시민시위는 100만 촛불이 모였던 지난주의 ‘평화적 분노’와 다른 양상을 띨지 모른다. 숨죽인 채 상황을 지켜보던 박 대통령은 지난 월요일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영수회담 취소 소동으로 야권이 허점을 보이자 바로 반격을 개시했다. 정부 각 부처 임명장 수여, 정상외교 의지 표명, 부산 엘시티 사건 수사 지시 등의 행위를 보면 최순실 국정붕괴 사건이 자신과 아무 관계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피의자 신세 박 대통령의 국민 도전
야당, 새 총리부터 뽑는 게 순서
그 뒤 영수회담으로 퇴진 논의해야

 이는 현재 진행 중인 검찰 수사와 다음주 구성될 특검에서 피의자 신세로 떨어질 대통령의 행동으로 봐주기 어렵다. 사인(私人)에 불과한 최순실 일당과 한 통속이 돼 정부 조직을 사유화하고, 사면권을 악용해 기업으로부터 돈을 받아내는 등 국정을 농단하고 헌정을 문란하게 한 대통령이 이런 식으로 나오는 것은 국민에 대한 어이없는 도전 행위다.

 서울역광장에선 박근혜 지지세력들이 총집결해 광화문 촛불집회 쪽으로 행진한다는 계획이 있다고 한다. 정홍원 전 총리 등 친박이라는 사람들은 잃어버린 주권을 되찾고 무너진 나라의 기강을 세우기 위해 평화적으로 촛불을 든 남녀노소의 시민들을 “마녀사냥” “인민재판”이라고 정신 나간 소리를 퍼붓고 있다.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계엄령이 준비되고 있다”고 뚜렷한 근거도 없는 주장을 꺼내 양측 간 일촉즉발의 전선이 형성되고 있다. 성격이 다른 두 집단은 법적 신고절차에 따라 집회시위를 하는 만큼 법 테두리 내에서 자기 의사를 민주적으로 표출하는 데서 만족해야 한다. 불법과 폭력은 그 자체로 민주주의의 적이며 그 위에 세워진 질서는 결코 오래가지 못한다.

 촛불을 든 평화적 분노의 표시는 민주공화국의 주권자인 국민으로선 지극히 정당한 것이며, 민주주의적 명예혁명으로 승화돼야 한다. 제아무리 꼼수를 동원하고 안간힘을 쓴다 해도 박 대통령과 그의 새누리당은 사실상 아무 일도 할 수 없는 폐족으로 전락했다. 따라서 야권은 혼돈의 정국을 해소하기 위한 합법적인 로드맵, 합리적인 정치일정을 내놔야 한다.

 그런데 야당들은 그저 광장의 분노에 편승해 퇴진운동을 전개하겠다는 말뿐이다. 국회 과반 의석을 가진 야당이 제일 먼저 할 일은 정국을 실질적으로 이끌어갈 거국내각 총리를 뽑는 것이다. 국회에서 거국 총리를 뽑지 않고 박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것은 막상 대통령 퇴진 시 황교안 국무총리에게 대통령 권한승계를 허용하거나 헌법적 근거가 없는 대통령권한대행을 내세운다는 말이다.

 야당은 그런 다음, 대통령과 영수회담을 열어 새 총리 후보에 대한 임명을 요청하고 헌법적 테두리에서 대통령이 퇴진하는 방법을 논의해야 한다. 예를 들어 새 총리와 박 대통령 사이에 조각을 비롯한 국정운영의 구체적 권한들을 나누고 조정하는 문제는 야당이 계속 개입해 정치적 대화를 해야 할 사안이다. 이런 실질적인 권한이양의 준비와 조치를 취하지 않고 그저 광장에서 촛불만 들겠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는 한 야당은 수권자격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