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미국기업 사냥을 막아라" 미국의 중국 견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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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강일구]

“중국 국유기업은 미국 기업을 인수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이 중국을 통상관계에서 ‘손 볼 국가 1호’로 지목하고 있는 가운데 자극적인 보고서가 나왔다. 보고서 작성 기관은 미ㆍ중 경제안보검토위원회(UCESRC)다. 중국과의 무역과 경제관계가 미국 안보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해 미 의회에 보고하기 위해 2000년 설립된 정부 기구다. 줄곧 중국에 비판적인 입장을 유지해왔으나, 이번엔 타깃이 구체적이다. 명분은 국가 안보 침해 우려다. 부상하는 중국에 대한 견제 의도가 다분하다.

보고서는 “중국은 사회적·산업적·외교적 목표를 추구하는 수단으로 국유기업을 활용하고 있다”면서 “중국의 국유기업이 미국 회사를 인수하거나 실질적으로 통제할 때마다 본질적으로 높은 위험이 생긴다”고 주장했다. “국유기업이 인수한 미국기업의 기술과 정보, 시장 영향력을 활용할 것이므로 미국의 안보를 해칠 수 있다”는 논리에서다.

사실 중국의 미국 기업 사냥은 현기증이 날 정도다. 미 컨설팅 업체 로디엄 그룹에 따르면 올해 중국의 미국 기업인수와 미국에 대한 그린필드투자(생산시설이나 법인을 직접 설립하는 투자)를 합치면 180억 달러(약 21조1400억 원)에 달한다. 10년 전과 비교하면 거의 100배 수준이다.

투자 주체의 84%는 민간이다. 하지만 “중국에선 정부 통제와 민간 경영의 경계선이 희미하다”는 것이 위원회의 진단이다. 그런데도 중국 국유기업의 미국 기업 사냥만 막자고 나온 데는 중국과의 전면전은 피하자는 전략적 계산이 담겨있다. 우선 외국인 투자자에 대한 인수합병(M&A) 허용이 미국의 기본 정책 노선이다. 게다가 중국 당국이 미국 기업에 대한 보복에 나설 가능성도 크다.

UCESRC의 우려가 근거 없는 것은 아니다. 일례로 미국 최대 반도체 기업인 마이크론 테크놀로지가 중국 국영기업인 칭화유니그룹에 넘어갈 뻔 했다. 230억 달러(27조원)에 달하는 초대형 거래였다. 중국을 순식간에 반도체강국으로 만들 수 있었던 이 거래는 미 재무부의 승인을 얻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되면서 막판에 무산됐다.

트럼프도 선거전에서 중국의 미국 기업 매입을 비판한 바 있다. 중국 투자자그룹의 시카고증권거래소 인수 케이스다. 시카고거래소는 규모는 작지만 미국 금융시스템의 허브 가운데 하나로 평가된다. 중국의 미국기업 사냥에 대한 트럼프 정부의 태도를 보면 미ㆍ중 경제관계의 방향을 확인할 수 있을 전망이다.

뉴욕=이상렬 특파원 is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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