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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가득한 카페, 조각품 전시한 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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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예술의 만남

예술작품이 미술관 밖으로 나왔다. 누구나 쉽게 찾을 수 있는 카페·숙소가 예술작품을 관람할 수 있는 공간으로 바뀌고 있다. 커피 한잔 마시며 조각 작품을 천천히 둘러보고, 가족과 함께 찾은 숙소에서 벽에 걸린 그림을 하루 종일 감상할 수 있다. 문턱 높게 느껴졌던 예술작품이 일상 속으로 깊숙이 들어왔다.

지난 8일 오후 3시 서울 한남동에 자리 잡은 카페 ‘스튜디오 콘크리트’. 지상 2층과 옥상 테라스가 있는 이 카페는 넓은 공간에 비해 테이블과 좌석이 많지 않다. 대신 형형색색의 그림이 카페 벽을 가득 채우고 있다. 손님들은 그림 바로 아래 놓인 의자에 앉아 여유롭게 커피를 마시며 작품을 감상한다. 이곳을 찾은 회사원 김윤아(30·서울 동작동)씨는 “평소에 좋아하는 세계적인 미술작가 장 줄리앙의 작품이 전시 중이어서 찾았다. 작품 하나하나를 차분히 보며 친구들과 자유롭게 감상평을 나눌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주부 김태경(43·서울 신도림동)씨는 서울 통의동 카페 ‘미술관옆집’에서 중저가 그림을 구입했다. 바로 옆에 있는 대림미술관이 운영하는 카페다. 커피와 음식 외에도 예술작품을 활용한 생활용품을 판매한다. 1000원짜리 연필부터 3만~4만원대 그림까지 종류가 다양하다. 김씨는 “갤러리에서 그림을 구입하기엔 부담이 됐는데 이곳은 가격도 저렴하고 분위기가 편안하다. 천천히 구경하다가 가장 마음에 드는 사슴 그림 한 점을 샀다”고 전했다.

이달 말까지 프랑스 미술작가 장 줄리앙의 작품을 전시하는 서울 한남동 ‘스튜디오 콘크리트’ 카페(위 사진). 신진 작가 작품을 전시하는 서울 영등포동 ‘오월의 종’ 카페(왼쪽)와 신진 작가 40여 명의 작품세계 등을 소개하는 서울 이화동 ‘그림가게, 미나리하우스’카페. 프리랜서 장석준

이달 말까지 프랑스 미술작가 장 줄리앙의 작품을 전시하는 서울 한남동 ‘스튜디오 콘크리트’ 카페(위 사진). 신진 작가 작품을 전시하는 서울 영등포동 ‘오월의 종’ 카페(왼쪽)와 신진 작가 40여 명의 작품세계 등을 소개하는 서울 이화동 ‘그림가게, 미나리하우스’카페.
프리랜서 장석준

맘껏 얘기하고 사진 찍고

예술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이 다양해지고 있다. 예술작품은 갤러리나 미술관에 가야만 볼 수 있고 부유층이나 소수의 수집가만 구입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몇 년 전부터 신인 작가를 지원하는 창작공간이 많아지고, 고가부터 중저가 작품까지 모아 판매하는 아트페어(Art Fair), 온라인 갤러리 숍과 같은 판로가 늘면서 예술의 문턱이 낮아졌다. 부담 없이 찾아갈 수 있는 카페나 여행지 숙소도 예술작품으로 꾸미는 곳이 늘었다.

갤러리와 카페가 결합한 갤러리 카페는 미술관과 갤러리가 아닌 공간에서 시간적 제약 없이 자유롭게 작품을 관람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다. 오래 서 있기 힘들어 하는 어린 자녀와 방문하기에도 좋다. 사진 촬영도 자유롭다. 마음에 드는 작품 앞에서 마음껏 사진을 찍고 SNS에 공유할 수 있다. 갤러리 카페를 꾸미는 설치미술 작가 권바다 큐레이터는 “갤러리 카페에서는 정해진 동선에 따라 작품을 순간적으로 쓱 보고 지나치는 것이 아니라 작품이 있는 공간에 머물면서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누고 관람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적막한 전시장이 아닌 색다른 공간에서 예술작품을 감상할 수 있어 좋다. 서울 영등포동에 있는 갤러리 카페 ‘오월의 종’은 1936년 면직물과 실을 생산하던 건물 원형을 그대로 보존해 운영하고 있다. 당시 사용하던 붉은 벽돌 벽 위에 현대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내년 4월까지 김보경·박병현 작가의 작품을 볼 수 있다. 이곳의 전시기획을 담당하는 서민정 작가는 “주기적으로 작가를 공모해 1년에 4회 기획전시를 한다. 이곳을 방문한 사람들은 역사적인 공간에서 현대 작품을 보는 것을 새로워 한다”고 말했다.

서울 문래동 ‘치포리’는 옛 철공소 거리에 있던 건물을 개조해 만들었다. 커피를 마시는 공간 옆에 작은 크기의 사무실 방을 미술 전시관으로 꾸몄다. 서울 한남동 ‘스튜디오 콘크리트’는 2층 단독주택 한 채를 통째로 갤러리형 카페로 개조했다. 1층에선 덩치가 큰 설치미술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2층에서는 복도와 방 벽에 빼곡히 걸린 그림을 볼 수 있다.

신진 작가 전시회 지원

갤러리 카페는 신진 작가에게는 자신의 작품을 처음으로 알리고 작품도 판매하는 새로운 형태의 무대가 되고 있다. 서울 이화동에 있는 ‘그림가게, 미나리하우스’에는 40여 명의 신인 작가 작품을 한눈에 볼 수 있는 포트폴리오가 마련돼 있다. 6개월에 한 번씩 신진작가 중 한 명을 선정해 카페 2층 공간을 개인 작업공간으로 제공한다. 이곳을 운영하는 정지연 아트 디렉터는 “신진 작가 포트폴리오로 1000여 점이 넘는 작품을 볼 수 있다. 그림을 구입해 본 적 없는 사람도 이곳에서 여러 작품을 보고 자신의 취향에 맞는 작가와 작품을 골라 미술품 수집가의 세계로 입문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서울 평창동 ‘키미아트’는 두 달에 한 번씩 신인 작가를 공모해 기획전과 개인전을 연다. 전시 공간 외에도 전시 관련 인쇄물을 제작해 전시 홍보 등을 지원한다. 이곳을 찾은 방문객은 1층에서 작품이 전시된 방을 구경하고, 2층에 있는 방과 발코니에서 커피·케이크 등을 먹을 수 있다. 서울 청파동 ‘마다가스카르’에서는 신진 사진작가의 작품을 볼 수 있다. 2주마다 포트폴리오 공모를 통해 선정된 작가들의 사진을 전시한다.

갤러리 카페에서는 작품을 구입할 수 있다. 유명 작가 작품보다 신진작가 작품이 많아 가격이 저렴한 편이다. 자신의 예산 범위에 맞는 가격대인지 따져보고 취향에 맞는 작가 작품을 중심으로 구입하길 추천한다. 작품을 배치할 집이나 사무실 등의 전체적인 인테리어와 잘 어우러지는지 생각한 뒤 작품을 골라야 한다. 공간 크기, 밝기, 벽 색상, 조명 상태 등도 조화를 이루는지 확인하고 구입하는 게 좋다.

포도송이 같은 호텔 외관, 도예품 수놓은 게스트하우스 실내

숙소 복도를 갤러리 형태로 꾸민 제주도의 두스몽 펜션.

숙소 복도를 갤러리 형태로 꾸민 제주도의 두스몽 펜션.

미술관에 온 것처럼 내부를 꾸민 ‘갤러리 숙소’나 예술작품을 콘셉트로 한 ‘아트 스테이’도 등장했다. 머무르는 동안 예술작품을 가까이에서 즐길 수 있어 주목 받고 있다.

제주도 서귀포시 안덕면의 핀크스 포도호텔은 포도송이 모양의 건물 자체가 작품에 가깝다. 세계적인 건축가이자 화가인 재일동포 이타미 준이 설계했다. 호텔 입구부터 박물관이나 갤러리처럼 꾸몄다. 호텔에 들어서서 긴 복도를 따라 걷다 보면 곳곳에 배치된 베르나르 뷔페와 이왈종 화백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조명·소품 하나까지 작가의 작품을 골라 배치해 미술관 못지않은 예술적인 여운을 준다. 인근 서귀포시 대정읍에 들어선 두스몽은 숙소와 갤러리를 함께 운영하는 공간이다. 복도식 갤러리에 세 동의 건물이 연결된 형태다. 제주의 사계절 풍경을 담은 사진작가 안웅철의 전시가 열리고 있다.

방 자체를 전시 공간으로 꾸민 게스트하우스도 눈길을 끈다. 다양한 분야 작가들과 서울 홍대 지역 에어비앤비(숙박 공유 사이트)의 게스트하우스가 협업해 ‘아트x스테이’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게스트하우스에 예술가의 작품을 전시해 여기에 머무르는 관광객이 곧 관객이 되는 숙박형 체험 예술이다. 서울 지하철 2호선 홍대입구역 근처 ‘우&우 하우스’에서는 조각가 김민기의 전시가, 인근 망원동 ‘민즈 하우스’에서는 도예가 한정은이 협업 작가로 참여한 게스트하우스가 12월까지 선보인다. 이를 주최한 아트 관광 큐레이팅 그룹인 아트립 이민정 대표는 “갤러리에서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시간은 한정적인데 머무르는 공간을 작품으로 꾸미면 일상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잠자는 순간까지 예술작품을 온전히 접할 수 있다”고 했다.

일상에서 예술작품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이 늘고는 있지만 아쉬운 점도 있다. 작가를 위한 창작 공간과 전시 위주여서 일반인이 직접 참여해 비용 부담 없이 예술을 체험할 수 있는 기회는 아직 많지 않다. 오진이 서울문화재단 시민문화본부장은 “내년부터 ‘생활문화진흥 조례’가 실시돼 시민이 예술 활동에 직접 참여하고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늘 것으로 보인다. 생활문화종합지원단을 꾸려 시민들이 예술활동을 취미로 즐기고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도록 뒷받침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진·라예진 기자 jinnylam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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