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빈 칼럼] 386에 내일이 있는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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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청춘! 이는 듣기만 하여도 가슴이 설레는 말이다. 청춘! 너의 두손을 가슴에 대고 물방아 같은 심장의 고동을 들어보라…. 이상! 빛나고 귀중한 이상! 그것은 청춘이 누리는 바 특권이다. 그들은 순진한지라 감동하기 쉽고 그들은 점염(點染)이 적은지라 죄악에 병들지 아니하였고 그들은 앞이 긴지라 착목(着目)하는 곳이 원대하고 그들은 피가 더운지라 실현에 대한 자신과 용기가 있다."(민태원의 '청춘예찬'에서)

"어제란 돌이킬 수 없고 미래는 불확실하다. 우리의 손아귀에 있는 것은 오늘 뿐이다. 오늘은 두개의 내일보다 좋은 것이다. 오늘은 우리 젊은이들의 봄을 뜻한다. 이 영원한 봄을 가지고 우리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으며 아무런 걱정이나 두려움을 느낄 필요가 없는 것이다."(리다자오의 '청춘'에서)

*** 정말 순수하고 뜨거운 피인가

"'방각본 살인사건'은 나와 동년배인 386세대에 대한 기대와 우려가 많이 담긴 작품이다. 초고를 집필한 2002년 가을과 겨울에는 분위기가 훨씬 밝고 희망에 넘쳤다. 참여정부를 표방한 새로운 대통령의 취임식 때는 이야기를 해피엔드로 끝낼 수도 있겠다고 여겼다. 그러나 2003년 봄, 퇴고를 하는 동안 소설은 점점 어두워만 갔다."(김탁환 '방각본 살인사건' 지은이 말에서)

'청춘예찬'은 오래 전 국어 교과서에 실렸던 민태원의 명 수필이다. 청춘의 뜨거운 피가 있기에 인간의 동산에는 사람의 풀이 돋고 이상의 꽃이 피며 희망의 놀이 뜨고 열락의 새가 운다.

비록 암담한 오늘이지만 청년들이 있기에 나라의 미래는 밝고 오늘의 고통이 내일의 보람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젊은이들이 추구해야 할 이상과 변혁의 희망을 당시 청년들은 이 한편의 수필 속에서 찾았을 것이다.

리다자오(李大釗)는 중국 공산당을 창시한 주도적 인물이다. 열렬한 민족주의자였던 그는 28세에 '청춘'이라는 글을 발표하면서 망해가는 중국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며 오늘의 중국을 구할 젊은이들의 뜨거운 피를 외친다.

그는 내일보다 오늘을 중시한다. 망해가는 중국을 구하자는 구망(救亡)사상이다. 그는 서슴없이 사회주의를 택했고 공산당을 창당하면서 38세 젊은 나이에 일본 헌병에게 체포돼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다.

김탁환의 '방각본 살인사건'은 조선 후기 정조 임금 때 백탑 아래 모인 북학파 젊은 개혁세력들이 연쇄 살인사건과 연루되면서 보수 정치세력과 마찰.갈등을 보이는 역사적 배경을 깔고 있다. 보.혁 세력을 공존시키는 정조의 탁월한 리더십이 소설 속에 묻어난다.

각기 다른 세편의 글을 왜 이리 장황하게 늘어놓는가. 우리 시대의 젊은이들은 너무나 성급해 미래지향적이지 않고 현실 영리적이며 권력 탐닉적이라는 말을 하고 싶어서다. 젊음을 상징하는 386세대를 보라. 그들이 우리의 미래인가. 밝고 맑은 이상을 지녔는가.

악에 점염되지 않은 순수한 뜨거운 피인가 하는 물음을 요즘 와서 나는 거듭하고 있다. 젊은 개혁세력들을 386이라고 통칭할 때, 어느 시대에서나 386은 있어왔다. 그러나 우리 현대사는 성급한 청년들의 구망사상 때문에 왜곡되고 병들었다고 본다.

*** 정치판에서 내는 분열과 파열음

5.16쿠데타를 일으킨 청년장교들, 이들도 나라를 구한다는 거창한 구호로 오늘의 권력을 찾아 목숨을 걸었다. 5.18 커널(대령)그룹들 또한 정의 사회를 구현한다는 거창한 명분을 걸었지만 전자의 속편일 뿐이다. 민주화를 위해 헌신했던 수많은 젊은이들이 YS와 DJ가 내민 권력의 지팡이 끝을 잡고 줄줄이 정치권력에 입문했다.

허나 그들 젊은 피가 우리 정치개혁에 어떤 기여를 했는지 이렇다할 흔적을 찾아보기 힘들다. 386의 끝세대라 할 현 정권의 젊은 개혁세력들이 집권 6개월이 안된 시점에서 이미 분열증세와 파열음을 내고 있다.

청춘은 기성세대가 있기에 존재할 가치가 있다. 진보는 보수가 있기에 의미를 지닌다. 중심이 있기에 주변이 존재한다. 주류와 비주류, 보수와 진보, 늙음과 젊음, 현실과 꿈은 별개가 아니다. 상호 보완적이다. 갈등 아닌 조화관계다.

지금 정치현실에서 일어나고 있는 분열과 파열음은 이런 조화의 이치를 거스른 탓이다. 왜 우리의 젊은이들은 여름밤 불나방처럼 오로지 권력만을 향해 돌진하고 탐닉하는가. 무더운 여름밤 한 권의 역사추리소설에서 그 해법을 찾아보자.

권영빈 편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