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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방담)추도열기 확산에 강은 양면 대처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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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정국을 초긴장으로 몰아 넣었던 2·7 박종철군 추도대회가 비록 산발적인 충돌은 있었지만 큰 불상사 없이 끝났읍니다.
-추도회 주최측이 철저한 비폭력을 내세우면서 실제 과격한 행동을 자제했고 경찰도 대회장인 명동성당 일대를 철저히 봉쇄하긴 했으나 과잉진압을 하지 않으려는 모습이 역력했읍니다.
아무래도 이슈 자체가 인권문제이며 한 생명의 죽음과 관련한 행사인 만큼 참여하는 사람들의 마음가짐이 다를 수밖에 없고 경찰로선 사건발생의 책임을 지고 있어 역시 몸놀림에 제약을 받았다고 봐야겠죠.
15·3 인천사태와 11·29서울대회를 거치면서 쌍방 모두 과잉행동에 대한 국민적 비난과 외면을 인식한 듯이 보여지기도 하더군요.
시민들의 참여도 5·3이나 11·29때와는 달랐습니다 .특히 시청 앞 일대와 광교 등지에서 일제히 터져 나온 자동차 경적은 주최측도 기대이상이라며 놀랄 정도였으니까요.
신민당 측은 이런 현상을 들어 대회가 성공이라고 자평하는 분위기입니다.
민정당 쪽에선 그와는 반대입니다. 역시 경적에 대해 가장 관심을 가졌었는데 실제 행동한 차량은 20∼3O%에 불과한 것으로 추산하더군요. 지난번 서울대회 때보다는 전반적으로 참여도가 높았다고 인정을 하면서도 야권에서 이를 시민들의 적극호응으로 보는 것은 오판이라는 거죠.
신민당 의원들의 열의도 높은 편이 었습니다 .그러나 실체 각 지구당에서의 동원은 미미한 편이었죠.
이번 대회로 박군 사건은 일단 고비를 넘겼다고 봐야겠죠
그렇지도 않아요 .신민당에서는 지구당별 고문사례 발표회·규탄대회 등을 계속 열어 공세를 퍼야한다는 의견도 있읍니다.
재야 쪽에선 고문백서발간·고문공청회 개최 등의 주장이 계속 나오고 있어요.
결국 「춘투」의 주 이슈로 계속 등장될게 틀림없습니다. 야권으로선 이번 사건의 상징적 효과가 상당기간 지속될 것으로 보고 있어요.
여 측에서도 꽤 긴 시간동안 괴로움을 당할 것으로 각오하더군요 .개헌정국이 매듭져진 후에도 선거에서 틀림없이 되살아날 걸로 보고 있어요.
앞으로의 정국방향을 놓고 신민당내에는 크게 두 갈래 흐름이 있습니다. 한쪽에선 2·7 대회에서의 호응도로 보아 장외투쟁의 성공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그런 방향으로 매진해 나가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다른 한편에선 이번 대회에서의 호응도를 발판으로 대여협상에서 주도권을 장악해나가는 방향으로 행동해야한다고 말하고 있어요.
양순식 부총재가 「이번 대회에선 피플 파워 (민중의 힘)의 동원 및 형성가능성을 과시했다」고 평가했듯 동교동계는 장외투쟁 강화 쪽으로 밀어붙이고 있고 이 총재의 임시국회 소집론 등 협상국면 전개의 뜻을 밝힌 것이라고 봐야겠죠.
민정당의 많은 당직자들은 신민당이 정국을 더 이상 장외로 끌고 가는 것은 불가능하리라고 판단하고 있어요 .오히려 장외열기를 계속 연결하기 위한 임시국회를 원할 것으로 보고 있읍니다.
1주일쯤 냉각기를 갖고 나면 신민당내부에 「원내」를 주장하는 의견이 다수가 될 수밖에 없다는 거죠. 그때 본격 대화를 시도함으로써 국면전환의 기회로 삼겠다는 전략입니다.
한 여권 인사는 박군 사건으로 개헌 스케줄이 두달 반쯤 늦어졌다고 말하더군요.
이제 2· 7대회로 가장 큰 고비는 넘겼으니 당분간 냉각기를 가진 뒤 다시 여당이 이니셔티브를 쥐고 대야협상을 펴나가며 합의개헌과 대통령의 중대결단의 양면작전을 구사해 나갈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어요. 국회를 열자면 국회도 열고 ,헌특도 정상화하고, 청와대 3당대표회담도 갖는 등 모든 대화채널을 열어 합의 개현 추구의 노력을 하는 데까지 해보겠다는 거예요. 이런 노력이 성공하면 가장 좋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에도 중대결단에 대한 국민적 납득 기반을 조성하고 축적해 나간다는 측면이 있는 점이죠.
그러나 야권에서는 이번 대회로 재야의 입김이 강해진데다 협상세력 쪽에 여당이 제대로 장단을 맞춰주지 못한다면 3월3일 박군 49재까지 연결돼 있는 장외투쟁 쪽으로 쓸려버릴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민정당이 2월말부터 지구당 개편대회를 시작하고 3월 들어 신민당도 지구당 개편대회에 들어가면 정국은 국회를 중심으로 한 대화의 노력과는 관계없이 어느 정도 장외화 할 것은 불가피합니다.
미국무성의 「슐츠」 장관과「시거」 차관보가 다음달 6일 방한하는 것도 개헌정국 전개와 관련 ,주목되는 일정입니다. 「시거」 차관보는 지난주 한미협회의 연설에서 여야의 타협을 다시 한번 강도있게 촉구했고 지난달 말 「블레이크 모어」 한국과장의 방한중 동정도 정가의 큰 관심사가 되고 있습니다 .최근 미국의 한국에 대한 정치적 관심표명은 과거 어느 때보다 구체적이고 미묘한 부분까지 언급되고 있읍니다.
대체로 「슐츠」 방한 전에 정부로서는 국면 전환을 위한 타협의지를 가시화하지 않을까 하는 전망을 해봅니다.3월 들어 3일의 박종철군 49재, 춘투의 출발이라는 경성요인이 있지만 정부로서는 이런 불안요인을 무릅쓰고 뭔가를 보여줄 가능성이 있다고 봅니다. 가령 청와대 3당 대표회담·구속자 석방문제도 고려되지 않을까요.
3월 들어 신민당의 개편대회가 시작되면 신민당 입장도 달라질 수 있다고 봐야겠죠. 두 김씨에 밀리고 있는 비주류로서는 이번 전당대회에서 총력전을 전개할 것입니다 .두 김씨 측도 비주류의 도전을 방어하는 과정에서 상처를 받게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따라서 신민당은 대여투쟁도 .투쟁이지만 내부투쟁에도 당력을 쏟을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그런 점들까지 여권은 계산해 놓고 있는 것 아닐까요.
「시거」의 연설에서 관심 가는 대목이 타협을 위한「보다 혁신적인 제안」입니다만 「혁신적인 제안」에 대한 정부·여당의 반응도 주목이 되고 있읍니다.
구속자 석방조치는 3월 개학을 앞두고 위험하다는 평가가 있어 어렵다는 전망입니다 .그것보다 최근 김대중씨 등의 사면·복권에 더 관심이 쏠려집니다.
아뭏든 여권으로서는 종전보다는 다른 차원에서 여러 가지 조치를 구상하고 있는 게 분명하고 시기에 따라 하나씩 제시할 걸로 봐야합니다.
개헌 시기와 관련해 여권은 6월까지로 잡고 있지만 개헌 과정이 나쁘면 선거에서의 위험부담이 크기 때문에「나쁜 모양의 개헌」은 시도하지 않을 가능성이 많지요.
막바지에 가서 여권이「개헌이냐, 아니냐」를 야당에 택일토록 요구하는 상황도 일부 논의되고 있어요. 개헌을 위한 여러 가지 노력과 성의를 다하고도 안될 경우 민정당이 독자적으로 개헌안을 발의하고 국회에서 부결되면 그때 가서는 여권으로서의 독자적인 길을 간다는 것입니다.
그럴 경우 88년 2월의 정부이양은 부득이 현행 헌법에 따라 이뤄질 수밖에 없다는 거죠.
그럴 경우 88년2월에 출범하는 정권은 올림픽을 치른 뒤 89년 개헌을 할 때까지의 잠정적인 성격을 갖게되고 잠정정부→올림픽→89년 개헌을 여야가 합의할 수 없겠느냐는 얘기도 나오고 있읍니다.
야권에서는 「중대결단」이 곧 「판쓸이」사태가 아니겠느냐고 받아들이면서도 일부에서는 현행 헌법 고수도 진단하고 있읍니다.
장외투쟁보다 선거투쟁에 의한 정권 획득을 내세우는 측은 민정당이 개헌과정에서의 무리수를 남발하면 선거투쟁에서 이긴다고 생각해 봤는데 민정당이 호헌쪽으로 방향을 선회할지도 모른다고 하니까 큰 딜레마에 빠지고 있읍니다.「선거 투쟁론」의 설득력이 그만큼 떨어진다는 것이죠.
아무튼 정치가 노상에서 방황하는 현상은 탈피해야 겠읍니다. 장내에서 안되니까 노상으로 나온다고 할지 모르지만 이제 2·7 대회를 겪으면서 노상정치로도 무엇하나 이룰 수 없다는 게 분명해지지 않았읍니까.
여권은 대담하게 양보할 것은 하고 내놓을 것은 내놓고, 야권도 되지도 않을 「노상승리」에 집착할게 아니라 협상으로 목표에 접근하는 자세가 절실합니다.<정리=허남진·박보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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