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공 때 긴장 속에서 쓴 『태백산맥』 그래서 더 탄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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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첫 출간 30주년을 맞아 청소년 『태백산맥』을 낸 소설가 조정래씨. “내 소설이 여전히 독자 사랑을 받고 있으니 이런 행운이 없다”고 말했다. 책 크기를 13% 키운 양장본 30주년 기념본도 냈다. [사진 해냄]

첫 출간 30주년을 맞아 청소년 『태백산맥』을 낸 소설가 조정래씨. “내 소설이 여전히 독자 사랑을 받고 있으니 이런 행운이 없다”고 말했다. 책 크기를 13% 키운 양장본 30주년 기념본도 냈다. [사진 해냄]

‘고전’은 되풀이해서 읽힌다. 소설가 조정래(73)씨의 열 권짜리 장편 『태백산맥』이 그렇다. 1983년 문예지 연재를 시작해 89년 완간된 200자 원고지 1만6500쪽 분량의 소설은 지금까지 850만 부 이상 팔렸다. 출판사 해냄은 지금도 매년 6만∼8만 부가 팔린다고 밝혔다.

청소년판 출간한 소설가 조정래
‘19금’ 수위 낮춰 중학생 눈높이로
『태백산맥』은 30년간 850만 부 팔려

2006년 만화로도 만들어졌던 『태백산맥 』이 이번에는 중학생 눈높이 소설로 탄생했다. 청소년문학 작가 조호상(52)씨가 각 권 1600쪽 분량을 600쪽씩으로 줄이고, 화가 김재홍(58)씨가 180컷의 그림을 보탠 청소년판 『태백산맥』(전 10권, 해냄)이다. 마침 올해는 연재가 한창이던 86년 『태백산맥 』 1권이 세상에 나온 지 30주년이 되는 해다. 조정래씨가 8일 조호상씨 등과 함께 기자간담회를 자청한 이유다.

조정래씨는 “마흔 되던 해에 소설을 쓰기 시작했는데 30년이 지나 이런 기념회를 하게 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지금 다시 쓴다 해도 더 잘 쓸 것 같지는 않다. 전두환 정권 시절 언제라도 정치적 위해가 가해질 수 있다는 점을 각오하고 긴장 속에서 썼기 때문인지 소설이 더 탄력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든다”고 했다.

또 “문학은 문자가 갖는 시공간의 제약을 넘어서려는 영원의 생명성에 바탕을 둔 것이기 때문에 살아남아 읽혀야 의미가 있다. 국제적으로도 책 한 권의 평균 수명이 3개월에서 6개월이라는데 내 소설이 30년간 읽힌다는 건 결국 살아남는 문제를 통과한 게 아닌가 한다. 갈수록 문학에 대한 관심이 줄어 내 소설 독자가 1000분의 1로 줄어들었데도 아쉬움이 없다”고 밝혔다.

『태백산맥』은 해방 공간 좌익 빨치산을 재평가하려는, 당시로는 충격적인 시도로 큰 파장을 불렀다.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고발된 지 11년 만인 2005년 이미 수백만 부가 팔려 ‘독자검증’이 끝났다는 이유로 무혐의 처분을 받기도 했다.

이날 자리를 함께한 평론가 서경석씨는 “소설이 처음 나왔을 때 문구 자체에 예민해 판이 바뀔 때마다 달라지는 대사나 표현을 따져봤던 게 기억난다”고 말했다. 소설 속 이념 대립 양상도 복잡하지만 ‘19금’ 수위를 넘나드는 질펀한 풍속 묘사도 청소년용으로는 걸림돌이다. 조호상씨는 “소설을 과연 제대로 줄였는지 독자들이 평가할 부분”이라며 말을 아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책 뒤편에 빨치산 등 역사 용어 설명을 덧붙였다.

조정래씨는 최근의 국정 농단 사태를 거침 없이 비판했다. “민주주의의 권력은 의논과 협력에서 나온다는 기본틀 없이, 봉건적 명령과 굴종만 존재하는 정치구조가 70년간 지속된 이 땅의 문제에 대통령의 자질 미달이 겹쳐 지금 사태가 벌어졌다”며 “반드시 이번 기회에 바뀌어야지 그렇지 않으면 대한민국은 미래가 없다”고 했다. 또 “국민은 이미 대통령 탄핵을 결정했다. 그러므로 국민의 명령을 따르면 된다. 그것이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주장했다.

신준봉 기자 infor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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