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인 도움받을 권리보장을"|인권보호위한 「수사성역」 추방캠페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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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제가 변호인을 만난 것이 재판시작일에서 불과 열흘전밖에 안됩니다. 이것은 방어권에대한 중대한 침해일뿐아니라 저에게 가해졌던 용서할수 없는 고문행위를 은폐하려는 목적이었습니다. 85년9월26일 기소된후 10월초순내지 중순쯤 변호인이 접견을 요청할 시기에 검찰측은 여러차례에 걸쳐 하오3시30분내지 5시에 출정을 요구해왔습니다. 이것을 증명할수 있는 사실은 출정을 나갔을때 검찰관을 만나지못하고 돌아온 경우가 4차례나있었고 검찰청에 도착했을때 검찰관이 없는 경우가 여러차례 있었읍니다.』(민청련전의장 김근태씨의 1심첫공판진술)
김근태씨는 치안본부 대공수사단에 연행돼 조사를 받을때는 물론 검찰송치이후에도 상당기간 변호인을 접견할 수 없었다고 주장했다.
변호인도 이처럼 변호인입회권리가 박탈됐다고 목청을 높였지만 법원은 이를 문제삼지 않았다.
『누구든지 체포·구금을 당한때는 즉시 변호인의 조력(조력)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헌법제11조4항) .
이같은 헌법의 선언에도 불구하고 수사단계에서의 변호인입회는 물론 공안사건에서는 접견마저 외면당하기 일쑤다.
지난해6월 「5·3인천사태」와관련, 경찰에 구속된 민통련정책연구실장 장기표씨(40)를 접견하러갔던 변호인들도 경찰관과 실랑이를 벌였으나 끝내 접견을 하지못했다.
『지난해11월 건국대점거 농성사건으로 아들이 구속돼 속옷이라도 넣어주기위해 경찰서를 찾았으나 수사중이라고 면회를 허용치않아 발길을 돌려야 했읍니다.』
일반 형사사건과는 달리 공안사건의 경우 변호인입회는 말할것도 없고 접견이나 가족들의 면회까지도 제한을 받는다.
때문에 어떤때는 아들·딸·동생이 수사기관에 연행된지 10여일이 지나도록 가족들이 어디서어떻게 무엇때문에 조사를 받고있는지조차 모르는경우도 허다하다.
헌법에는 수사기관에서 조사받을때 피의자가 변호인의 도웁을받을수 있도록 규정되어 있고 형사소송법(72조)등에 변호인 입회를 의무화하고 있지만 제대로 이행되지 않고있는 실정이다.
조영내변호사는 『우리 헌법이 수사과정에서의 변호인입회권리를 선언하고 있지만 성문주의를 따르고 있는 현행 법체계상 의무규정이 없을때 그 권리는 부인되고 있다』며 『조사과정에서의 고문을 막기위해 변호사를 의무적으로 입회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조변호사는 이를위해 경제력이없는 모든 사람에 대한 국선변호인제가 확립돼야한다고 강조했다.
일선 경찰서에 변호인 접견실이 한군데도 없는것만 보아도 변호인입회권리가 무시되고 있음을 쉽게 알수있다.
김상철변호사는 『경찰서단위까지의 접견실이나 독립된 접견공간의 확보가 시급하다』며 접견의비밀도 보장돼야한다고 말했다.
경찰에서 접견이 허용된 경우도 그 장소가 수사과장실이나 형사계장실이 일반적이어서 사건의 본질에대한 이야기보다는 안부에 그치기 쉽다는 지적이다.
김변호사는 경찰조사단계에서부터 변호인입회가 의무화된다면 경찰조서역시 검사앞에서의 진술처럼 증거능력을 인정할수 있어 수사기관의 업무부담이 그게 줄어들게 될것이라고 말했다.
고문등 불법수사를 막기위해 미국에서는 법원이 판결로써 수사과정에서의 변호인입회제도를 확정시켰다.
64년 미연방대법원은 매부를 살해한 혐의로 기소돼 일리노이주법원에서 유죄를 선고받았던 「에스코베도」에 대해 『수사과정에서 변호인참여없이 한 자백은 유죄의 증거가 될수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던것.
「에스코베도」사건 판결이후 미국에선 변호인입회권리가 수사원칙으로 굳어졌고 66년 미연방대법원이 내린 「미란다대 애리조나」사건 판결에서 변호인 입회권리를 완벽하게 확립시켰다.
수사관이 피의자를 체포한때는 신문시작전▲묵비의 권리가 있고▲묵비를 포기하고 진술하는 경우 그 진술이 법정에서 불리한 자료로 이용될 수 있으며▲신문중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가 있다는 것등 3가지를 수사관이 피의자에게 반드시 고지해야한다는 것이다.
「미란다」 는 부녀자를 납치, 강간한 혐의로 기소돼 애리조나주법원에서 징역 단기20년에 장기30년을 선고받았으나 연방대법원이 이를 파기했던 것.
당시 연방대법원은 『국가가 어느 개인을 처벌코자할때 그사람입으로부터 증거를 강제로 끌어내려는 잔인하고 간편한 방법보다는 국가자신의 독자적 노력에 의해 증거를 수집, 법원에 제출해야하며 범죄의 혐의를 받고있는 사람을 구금하여 신문하는 것자체가 자유의사와 다르게 진술할 수밖에 없는 강제력을 갖고있는만큼 이들 권리가 반드시 보장되어야한다』 고 못박았다.
이같은 미국 연방대법원의 판결은 모두 「독나무의 열매」이론에 바탕을 두고 있다.
독이 든 씨앗이 자라 열매를 맺었을때 독과일이 되는 것처럼 수사과정에서 고문·협박등 불법행위가 있었다면 거기에서 비롯된 증거역시 법정에서 인정될수 없다는 이론이다.
독나무 열매이론의 대표적인 케이스가 29년의 「실벤돈」(silventhone)사건과 39년의 「나르돈」(nardone) 사건.
미연방법원은 「실벤돈」사건에서 적법절차를 무시하고 체포된 피의자로부터 채문한 지문을 증거로 인정치 않은데 이어 「나르돈」사건에서는 도청으로 수집된 증거는 유죄의 증거능력이 없다고 수사기관의 탈법에 쐐기를 박아버렸던 것.
이처럼 사법부가 수사기관을 판결로써 이끌어가는 것은 지극히 바람직한 일이지만 이는 법원이 제기능을 다할때에만 기대할수있는 일이다. <신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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