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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 내분·독재국가에 많다|국제사면위 세계실태조사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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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이 지구상 상당수의 나라에서, 특히 국내분쟁이 있는 나라나 독재국가에서 「국가안보」, 또는 「개발정책의 필요」를 내세워 무고한 시민들에 대한 잔혹한 고문이 끊임없이 자행되고 있다.
경찰서나 비밀취조실, 외떨어진 캠프·군막사 등지에서 온갖 수모를 당하고 가까스로 목숨을 건졌던 피해자들은 한결같이 『기억할수 있는 것은 단지 나자신이 숨져가는 것을 본것뿐』이라고 술회할만큼 고문은 인간에게 커다란 고통을 안겨주고 있다.
앰네스티 인터내셔널은 84년 각국에서 저질러지고 있는 갖가지 유형의 고문행위를 종합, 그 보고서를 펴낸 바 있다.
독재시대 스페인의 국가안보본부로부터 이란의 감방에 이르기까지 80년대 이후에도 고문과 가혹행위가 그치지 않고 있다.
「80년대의 고문」이라는 제목으로 발간된 앰네스티 인터내셔널의 이 보고서는 잔혹행위에 관련된 세세한 증거들을 수집해 양심수의 석방과 공정한 재판, 고문에 의한 부당한 처형을 즉각 중지하도록 촉구했다.
일반적으로 고문은 한나라의 정부가 그 반대자들을 억누르기 위한 수단의 하나로 사용한다. 고문자의 손에 들려진 전기가 통하는 쇠막대기나 약물주입기가 갖고 있는 위력은 바로 정부의 힘이며 따라서 책임 또한 정부에 있는 것이다.
고문하는 개개인의 가혹행위가 아무리 악독하다 하더라도 그같은 행위의 근본 이유는 대체로 몇가지 공통되는 점을 갖고 있다. 외부와의 접촉을 단절시키고, 인간적인 굴욕감을 맛보게 하며 심리적인 압박과 신체적인 고통을 거의 무한대로 느끼도록 하는 이유는 ▲정보를 얻어내거나 ▲상대방의 기를 완전히 꺾어놓기 위해서, 그리고 ▲가족·친지등 가까운 사람들에게 겁을 주기 위해서라고 할수있다.
고문을 통해서 피해자들은 가해자가 요구하는 자백을 강요당하고, 자신의 신념을 번복하고 친분관계를 외면해야하는 상황에 부닥치기 일쑤며 이렇게 해서 얻어진 성과로 가해자측은 제2, 제3의 고문대상자를 쉽게 찾아나설수 있게되는 것이다.
고문은 어느 한 정부의 정권유지 방편으로 흔히 쓰여져왔다. 게릴라들로부터 위협을 받는 정부라면 체포된 일당을 고문함으로써 게릴라조직을 소탕하거나 무력화시키려할 것이며 집권의 연장을 위해 국가안보의 범위를 새삼스럽게 확대하려는 정부는 사회의 각계층, 즉 대학생이나 노동조합원·변호사등의 반대세력을 고문하는 상황으로 몰고갈 것이 분명하다.
이런 상황에서 흔히 볼수 있는 긴급조치법등은 고문행위를 보다 손쉽게 해주는 역할을 한다. 이렇게 해서 극단으로 치닫는 정치적 국면은 군부가 정부를, 그리고 치안과 사법권까지 독점하는 사태로 악화되는 것이 보통이다.
고문은 이밖에도 희생자들과 유대관계에 있는 잠정적인 정적들이 정치활동을 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한 도구로 쓰이기도 한다. 아시아의 한나라에서는 시위에 가담한 대·학생들을 정식재판에 넘기지도 않은채 경찰서에서 마구 때린뒤 돌려보냄으로써 더 이상의 시위참가를 막으려 하기도 했다.
무지한 농촌 사람들에게 처형이나 고문으로 위협을 가하는 것은 이들 지역의 사람들을 정부가 마음대로 지배하기 위한 가장 원시적인 전략중의 하나다.
80년대 들어서 특기할 사항은 우선 「고문의 방법」이 달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오랜기간 전통적으로 쓰여져 오던 「팔랑가」(발가락에 매질을 하는 방법)도 여전히 쓰이기는 하지만 요즘에는 자동차 바퀴의 튜브안쪽에서 떼어낸 생석회를 음식속에 넣어 고통을 주기도하고(과테말라), 전기장치로 벌겋게 달군 쇠꼬챙이를 항문에 집어넣은 예(시리아)도 있다. 전문적인 고문관들 사이에서 「검은 노예」라고 불리는 이장치는 시리아에서 가장 흔히 쓰여져왔다.
프랑스식민지였던 아프리카의 루안다에서는 「카쇼 느와르」(검은감방)속에 죄수들을 넣어 1년, 또는 그이상의 오랜기간중 단 한줄기의 햇볕도 볼수 없게 하는 악명높은 특수감방시설이 되어있다. 소련의 정신병동에서는 감금된 사람들에게 고통을 일으키는 약물을 투여하거나 온몸의 감각을 완전히 마비시키는 장치를 사용하기도 한다.
나라마다 차이가 있기는 하나 고문을 당한 사람은 어린이에서 노인에 이르기까지 남녀노소 각 연령층을 망라하고 사회적 신분이나 직업·인종·종파에 관계없이 골고루 포함돼 있다. 엘살바도르에서는 어린이들이 고문을 당한 것으로 보도됐으며 이란의 유명한 에빈교도소에서는 어린자녀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그들의 어머니들을 고문하기도 했다. 여성들은 종종 남자들에 의한 성적폭행으로 고문을 당하기 일쑤다.
고문전문가를 양성하는 사례는 그리스(67∼74년)의 경우에서 상세히 살펴볼수 있다. 잘 알려진 반공가문 출신의 신병들 가운데 선발된 이들은 병영에서의 기초훈련을 마친뒤 특별교육장으로 보내진다.
이들은 다른 사병들과 달리 남들이 가질수 없는 특권을 누린다.
그러나 이들이 고문업무를 게을리 하거나 주저하면 주위로부터 조롱을 받는 것은 물론, 상관으로부터 엄한 체벌과 함께 누려오던 특권마저 박탈당하게 마련이다. 심지어는 가족의 생계를 위협함으로써 고문에 적극적으로 나서게 하기도 한다. 고문전문가들도 이런 면에서 보면 그들의 희생자처럼 자신을 고문하는 처지로 빠져들고 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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