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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트] 버핏·그린스펀 ‘쓰레기양 늘었어? 경기 좋아지겠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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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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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DP는 전기 대비(연율 기준), 폐기물 운송량과 커창지수는 전년 동기 대비 증가율.
자료 : 도이체방크, 블룸버그

미국 대선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대선 결과는 누구도 예측하기 힘들다. 미국 경제도 암호 해독이 필요한 상황이다. 최근 미국 경제의 종합성적표인 국내총생산(GDP)의 3분기 성장률은 2.9%(연율 기준, 잠정치)로 2년래 최고치를 기록했다. 직전 분기(1.4%)와 시장의 예상치(2.6%)를 모두 웃돌았다. 반면 미국의 GDP 대비 재정적자는 지난해(2.5%)보다 늘어 GDP의 3.2%까지 확대됐다. 의회예산국은 미국의 저성장이 계속돼 2026년까지 재정적자가 GDP의 4.6%까지 늘어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경제 고수들의 경기 진단법
미 3분기 쓰레기 배출량 30% 급증
“경기 팽창 시작 구간 진입” 전망
가이트너는 피아노 매출 동향
디즈니랜드 예매율로 진단도
중국 경기 진단엔 ‘커창지수’
전력사용·대출·철도화물량 따져

엇갈린 경제지표, 오마하의 현인은 어떻게 풀이할까. 워런 버핏 버크셔 해서웨이 회장은 “미국 경제의 침체 가능성은 낮다”고 진단했다. 미국공영방송 NPR은 “버핏이 경기를 판단할 때 중요하게 여기는 지표 중 하나가 쓰레기 물동량”이라고 보도했다. 쓰레기 물동량을 추적하면 경제가 성장하고 있는지, 주춤거리는지, 아니면 뒷걸음질 치는지 알 수 있다는 것이다. 블룸버그 애널리스트인 마이클 맥도우는 “많은 물건을 사들이면 그만큼 버리는 쓰레기의 양도 늘어난다”며 1998년 이후 미국철도협회(AAR)가 발표하는 폐기물 운송량 추이는 미국의 실질 GDP와 동행지표로 쓰인다고 설명했다.

올해 3분기 쓰레기 배출량 증가율은 지난해 마이너스(-)에서 30%로 크게 올랐다. 지난달 폐기물 운송량 증가율은 25%에 가깝다. 도이체방크 수석 이코노미스트인 토스텐 슬록에 따르면 2016년 미국은 “경기회복세가 이어지거나 경기가 이제 막 팽창하기 시작하는 구간”에 들어섰다. 슬록은 “쓰레기 물동량은 현재 경기 사이클 중 어디쯤 있는지를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경제지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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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런 그린스펀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왼쪽)은 폐기물 운송량을 살펴 경기 동향을 가늠했다. 커창지수는 중국의 리커창 총리가 2007년 중국의 경제 흐름을 판단하기 위해 제시한 세 가지 지표(전력 사용량, 은행 대출, 철도 화물 운송량)에서 비롯된 경제지표다.

앨런 그린스펀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도 기준금리를 결정하는 회의에 들어가기 전 쓰레기 배출량을 살폈다. 뉴욕시 외곽에 위치한 퀸즈, 브루클린, 브롱스 등이 그가 자주 가던 쓰레기 매립장이다. 뉴욕시의 쓰레기 물동량이 예년 봄철 수준에 못 미친다는 판단을 하자 그린스펀 전 의장은 2001년 4월 18일 갑작스레 금리 인하를 단행하기도 했다. 미 상무부가 발표하는 개인소비지출(PCE) 통계가 약 1개월 늦게 발표되기 때문에 지금의 소비경기 동향을 파악하기 위해 그 나름의 경제지표를 찾은 셈이다.

많은 경제 고수들은 이렇게 자기만의 경기 진단법이 있다. 티머시 가이트너 전 미국 재무장관은 매일 아침 60가지 지표를 보며 경기를 점검했다. 체크리스트에는 주가·금리·환율 같은 통상적 경제지표는 물론 스타인웨이 피아노(그랜드 피아노) 매출 동향도 들어 있었다. 경기가 나쁠수록 고급 피아노는 덜 팔릴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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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머시 가이트너 전 미 재무장관(오른쪽)은 스타인웨이 피아노(그랜드 피아노) 매출 동향도 경기를 읽는 데 참고했다. 월트디즈니의 회장을 지낸 마이클 아이스너(왼쪽)는 소비자신뢰지수와 디즈니랜드 예약률 등에 주목했다.

월트디즈니의 회장을 지낸 마이클 아이스너는 소비자신뢰지수와 디즈니랜드 예약률, 투자은행으로부터 걸려오는 전화를 경제지표로 삼았다. 아이스너는 뉴욕타임스(NYT) 인터뷰에서 “투자은행은 경기가 나쁠 때 직접 고객을 찾아다닌다”며 “불황에는 투자은행들의 전화가 평소보다 5배는 많다”고 설명했다.

경제 고수들의 협업으로 탄생한 경제지표도 있다. 바로 커창지수(克强指?)다. 경제의 전반적 흐름을 정확하게 파악하기 위해 고안됐다. 중국이 경제지표를 발표할 때면 어김없이 신뢰성 문제가 떠오른다. 중국 국가통계국이 3분기 GDP를 발표했던 10월 19일도 그랬다. 이날 국가통계국은 중국의 3분기 GDP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6.7% 성장했다고 밝혔다. 3분기째 6.7% 성장이다. 중국 GDP 통계의 품질에 관한 논문을 저술한 홍콩 과학기술대학의 카스텐 홀츠 경제학 교수는 국가발전개혁위원회(NDRC)가 GDP 수치를 확보하는 방법은 “어느 누구도 정확하게 모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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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DP는 전기 대비(연율 기준), 폐기물 운송량과 커창지수는 전년 동기 대비 증가율.
자료 : 도이체방크, 블룸버그

리커창(李克强) 총리는 GDP에 대한 이런 불신에 에둘러 공감을 표시했다. 그는 역대 중국 총리 중 최초로 대학에서 경제학(베이징대 경제학 박사)을 전공한 ‘경제통’이다. 위키리크스가 공개한 미국 대사관 공문에 따르면 지난 2007년 랴오닝성 당서기였던 리 총리는 중국의 GDP 부풀리기를 비판했다. 당시 미국 대사가 작성했던 메모에는 리 총리가 중국의 GDP 수치가 “조작돼 신뢰할 수 없다(man-made and unreliable)”는 발언과 함께 전력사용량(40%), 은행 대출(35%), 철도 화물 운송량(25%)을 살펴봐야 한다고 조언한 내용이 들어 있다.

2010년 12월 영국 이코노미스트지는 리 총리가 제시한 세 가지 지표를 재구성해 ‘커창지수’를 산출했고, 공식 GDP 통계와 비교해 커창지수가 더 신뢰할 만한 지수라고 보도했다. 이후 금융기관들은 자체적으로 전력소비량(중국전력위원회), 은행 대출 잔액(인민은행), 철도 화물 운송량(중국 철도부) 등 3가지 지표를 재구성해 GDP 수치를 추산하게 됐다.

커창지수는 공식 GDP 통계의 보조지표로 쓰인다. 지난해 11월 20일 리 총리는 이코노미스트지에 ‘중국 경제의 청사진’이라는 글을 기고하며 취업·평균소득·에너지소모량 등 세 가지 지표로 중국 경제를 분석하는 ‘신(新)커창지수’를 발표하기도 했다. 통계학자 네이트 실버는 “미국 정부가 해마다 생산하는 경제지표만 해도 약 4만5000건”이라며 “너무 많은 경제지표가 생겨 사람들은 신호와 소음을 구분하기 어려울 지경”이라고 설명했다.

경제 고수들은 경제지표를 알리기 위해 대중에게 친숙한 소재를 불러왔다. 2012년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던 앨런 크루거 프린스턴대 교수는 경제적 불평등에 경종을 울리고 싶었다. 크루거는 국가별 소득불평등도(지니계수)와 소득의 대물림 수준(세대 간의 소득 탄력성) 간의 관계를 나타내는 그래프를 찾았다. 이 그래프는 마일스 코락 캐나다 오타와대학 교수의 업적이었다. 크루거는 여기에 ‘위대한 개츠비 곡선(Great Gatsby curve)’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덴마크·노르웨이처럼 지니계수가 낮은 나라에서는 가난한 부모 밑에 태어나도 노력·능력에 따라 계층 이동이 가능하다. 하지만 미국은 지니계수가 높아 개츠비 탄생이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소득 불평등의 심화가 기회의 평등마저 빼앗아 갈 수 있음을 경고하고, 소득 불평등에 대한 적극적 대처의 필요성을 역설한 이 발표는 큰 반향을 일으켰다.

중세 잉글랜드 민담에 등장하는 의적 로빈후드도 부활했다. 로빈후드 지수는 최고 부자들의 재산을 일정 수준 이하의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면 얼마씩의 재산이 돌아가는지를 보여주는 지표다.

임채연 기자 yamfl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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