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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억원 들인 침수 예상도, 정작 태풍 땐 있는지도 몰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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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4호 12면

제18호 태풍 ‘차바(CHABA)’가 지난달 5일 부산 해운대구 마린시티를 덮쳤다. 파도가 높이 1.3m 방수벽을 넘어 들이치면서 이 일대 도로와 고층 아파트 주변이 침수됐다. 한반도에 상륙한 10월 태풍 가운데 가장 강력한 위력을 보인데다 태풍 상륙 시간이 만조 시간과 겹친 탓이다. 부산 해운대구청 관계자는 “당초 방수벽을 1.8m 높이로 설치하려 했으나 인근 아파트 주민과 상가 상인들이 주변 경관이 가려진다며 반발해 1.3m로 낮춘 탓”이라고 설명했다.


지난달 17~18일에는 인천 남동구 소래포구 재래시장이 백중사리보다 더 높이 차오른 바닷물에 침수됐다. 지구와 달이 가장 가까운 지점에 위치하고, 달-지구-태양이 일직선상에 놓이면서 큰 조차(潮差)를 기록한 탓이다. 해수면의 상승으로 인천 지역뿐 아니라 전남 목포시 동명동, 경남 창원시 진해구 용원동 등지에서도 침수 현상이 나타나 주민들이 큰 불편을 겪었다. 용원동의 경우 태풍이 남해안에 상륙할 때마다 침수 피해를 보고 있는 지역이기도 하다.

[2100년 한반도 접근 태풍 최대 두 배로]


태풍과 천문 현상으로 인해 바닷물이 육지까지 범람하는 상황이 갈수록 빈번해지고 있다. 지구온난화로 인해 해수면이 상승하고 더 거센 태풍이 닥친다면 해안 지역의 침수 피해는 갈수록 늘어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우리의 대비태세는 허술하기만 하다. 피해 예방을 위해 많은 예산을 들여 만든 ‘해안침수 예상도’나 ‘실시간 폭풍해일 침수범람 예측시스템’도 활용되지 않고 방치되고 있다.


지난달 31일 부산 벡스코(BEXCO)에서 열린 한국기상학회 가을학술대회에서는 한 해에 한반도에 영향을 주는 태풍 숫자가 2100년께 되면 지금보다 최대 두 배가 될 수 있다는 연구 논문이 발표됐다. 서울대·부산대·한국해양대·극지연구소와 홍콩시립대·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UCLA) 등의 국제공동연구팀에 참여한 박두선 박사는 “2100년께 한반도와 일본으로 향하는 열대저기압(태풍)의 숫자가 지금보다 4개 정도 늘어날 것으로 예측된다”고 밝혔다.


부산 해운대에 사리 때의 만조 시간에 더 강력한 태풍이 밀어닥친다면 1.8m 높이의 방수벽으로도 방어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경고하고 있다. 실제로 2003년 9월 경남 마산에 태풍 ‘매미’가 접근했을 때는 바닷물 높이가 2.58m나 더 높아졌고, 이로 인해 건물 8000여 동이 침수되고 18명이 사망하는 큰 피해가 발생했다.


정부에서도 이런 상황에 대비해 2009~ 2014년 당시 150억원을 들여 국토해양부 산하 국립해양조사원을 통해 남해안과 서해안 147개 지역에 대한 ‘해안침수 예상도’를 제작해 각 지방자치단체에 보급했다. 50년, 100년, 150년, 200년에 한 번 발생할 정도의 태풍 해일 침수 예상지도를 작성한 것이다.


하지만 태풍이 할퀴고 지나간 부산 해운대구청 안전총괄과 담당자는 “올 1월부터 이 업무를 맡았지만 해안침수 예상도가 있다는 말은 처음 듣는다”고 말했다. 태풍 접근이 예보됐는데도 이런 예상도가 전혀 활용되지 못했다.


국립해양조사원에서는 이런 침수예상도를 열람할 수 있는 웹 사이트를 2014년에 만들었으나 현재는 서비스가 중단돼 지자체 공무원들이 접속할 수 없다. 해양조사원 해양과학조사연구실 관계자는 “보완해야 할 점이 나타나 현재는 연결을 중단한 상태”라고 말했다. 언제 서비스가 재개될지도 불확실하다.


한국해양과학기술원은 2014년 ‘실시간 폭풍해일 침수범람 예측시스템’을 개발했다. 태풍이 오면 ‘태풍 해상풍 모델’을 활용, 태풍 해일로 인해 해수면이 얼마나 상승할 것인지 산출해낸다. 하지만 해양과학기술원 심재설 박사는 “해당 연구 과제가 종료됐기 때문에 현재 이 시스템은 운영되지 않고 있다”며 “기상청이나 국민안전처에서 가져다 쓰지 않는다면 민간 기상 사업자가 이 시스템을 활용해 지자체에 정보를 제공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말했다.

[2100년까지 286조원 경제 피해 우려]


지구온난화로 인해 해수면이 빠르게 상승하는 상황에서 피해 예방을 위한 투자를 늘려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KEI) 조광우 박사는 “기후변화가 지금과 같은 추세로 진행된다면 2100년까지 한반도 연안의 해수면은 1.36m 상승하고, 남한 국토 면적의 4.1%에 해당하는 4149.3㎢가 해수 침수 피해를 보게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이로 인한 경제적 피해는 토지와 주택 침수 피해, 주민 이주비용, 경제활동 손실 등으로 2100년까지 286조원(현재 가치)의 피해가 발생할 것으로 추산했다. 조 박사는 “태풍 해일과 해수면 상승에 대비해 방조제·방파제 보완 등 적응 대책을 미리미리 추진할 경우 이러한 피해를 크게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성호 부산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이미 개발이 완료된 지역은 방조제·방수벽 등으로 침수 피해를 줄여야 하고, 개발이 진행 중인 곳에서는 건물 1~2층을 침수 피해를 보지 않는 구조로 건설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국립해양조사원에 따르면 한반도 해역에서는 평균 해수면이 최근 40년간 약 10㎝ 상승했다. 2015년 말 기준으로 산정된 해수면 상승률은 연평균 2.48㎜였고, 해역별로는 남해가 2.89㎜, 동해는 2.69㎜, 서해는 1.31㎜ 상승했다. 이는 유엔 정부 간 기후변화위원회(IPCC)가 2013년 발표한 전 세계 평균값 보다 약간 높은 편이다.


강찬수 환경전문기자kang.chansu@joogn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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