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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는 사자, 엄마는 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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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박수련 기자 중앙일보 산업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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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련
산업부 기자

“아빠가 웃으실 땐 하하 하하하하 듬직한 사자 같고요. 엄마가 웃으실 땐 호호 호호호호 포근한 양 같아요. 랄라라랄라~.”

지난달 다섯 살짜리 둘째가 어린이집에서 하는 가을음악회를 앞두고 입에 달고 산 동요 ‘우리 집은 동물원’은 이렇게 시작했다. 노래하는 아이의 해맑은 표정과 달리 내 머릿속은 복잡했다. ‘아빠는 용감한 사자, 엄마는 포근한 양이라니…. 동요가 이렇게 정치적일 수가. 동물의 왕국에서 양은 사자에게 잡아먹히고 말 텐데, 쩝.’

옆에서 함께 듣던 초등생 첫째가 정치적으로 올바른 지적에 동참해 준다. “이 노래는 엄마를 너무 소극적이고 상냥하게 그리는 것 같아. 근데 그거 고정관념 아냐?” ‘마냥 순하고 착한 양’이 아닌 엄마, ‘pretty like daddy, smart like mommy(아빠처럼 예쁘게, 엄마처럼 똑똑하게)’가 적힌 티셔츠를 사다 주는 부모의 영향일 터다. 그렇더라도 초등학생도 느낄 법한 어색함과 거북함은 여전히 수많은 동요·동화에 무심하게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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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이런 지적이 처음도 아니다. 국민동요로 유명했던 ‘아빠 힘내세요’가 부모의 성 역할을 왜곡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건국대 산학협력단, 2014년)로 떠들썩했던 게 불과 2년 전이다. 실제는 육아와 직장을 병행하느라 허덕이며 사는 엄마를 보면서도 우리의 아들딸들은 ‘아빠는 직장에서 힘들게 일해 돈을 버는 가장, 집에 있는 엄마는 양육과 가사 담당’이라는 노래를 들으며 자신의 현재와 미래를 재정의한다.

동요 곱씹기를 하다가 몇 년 전 듣고 흠칫 놀랐던 중국어 동요가 떠올랐다. ‘우리 엄마’라는 제목의 노래는 국내 동요에선 듣지 못한 장면을 담았다.

“퇴근하고 집에 오신 우리 엄마. 하루 종일 일해 피곤하시죠. 엄마 여기 좀 앉아서 차 한 잔 드세요. 제가 뽀뽀해 드릴게요. 엄마 엄마 우리 엄마.”

엄마의 퇴근을 기다리는 아이들…. 생각만 해도 가슴이 저리다. 하지만 그런 아이들의 눈빛과 그런 워킹맘의 마음을 읽어낸 노래를 나는 들어본 적이 없다. 맞벌이 가구 비율이 43.9%(통계청 2015년 10월 기준)인 오늘을 사는 우리 아이들도 나와 다르지 않다. 반면 ‘하늘의 절반은 여자’라고 여기는 중국에서 아이들은 이런 노래를 듣고 부른다. 세계경제포럼(WEF)이 지난해 발표한 중국의 양성평등 수준은 144개국 중 99위로 선진국 수준은 아니다. 그래도 우리(116위)보다는 높다.

물론 동요 한 곡에 아이들의 미래가 좌지우지되진 않는다. 다만 양성평등에 대한 어른들의 무딘 감수성마저 아이들에게 물려줄 이유는 없다. 우리에겐 새로운 동요가 필요하다.

박수련 산업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