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복 일제시대 잔재는 그만, 이젠 한국미 입혀야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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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예진 명장은 “학생들의 마음속에 한복에 대한 자부심을 넣어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사진 우상조 기자]

지난달 31일 강원도 횡성군의 민족사관고등학교 강당. 저고리, 치마에서 두루마기까지 형형색색의 한복 교복 51벌이 전시돼 있다. 쉬는 시간을 이용해 강당을 찾은 학생들은 옷을 만져 보고 입어 본 뒤 맘에 드는 샘플에 표를 던졌다.

한복 교복 만든 김예진 명장
클린턴 부부, 니콜라스 케이지 등
국내외 유명인사에게 한복 지어줘
“한복 아름다움 해외에 덜 알려져
중국에 한복 체험관도 만들 것”

이날 행사는 민사고가 개교 20년 만에 처음 한복 교복을 바꾸기 위해 마련한 전시회다. “체형에 맞게 맵시를 살리는 쪽으로 디자인했더니 여학생들이 특히 좋아하네요.”

새 교복 샘플을 디자인한 김예진(51) 한복 명장이 학생들의 반응을 보며 말했다. 김 명장은 김대중 전 대통령 부부의 노벨평화상 수상 기념 의상을 비롯해 노무현 전 대통령,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 부부, 영화배우 앤소니 퀸과 니콜라스 케이지, 야구선수 이승엽 등 국내외 유명인사들의 한복을 디자인한 한복 명장이다. 지난해에는 대한민국 신지식인으로도 선정됐다. 그런 그가 교복을 디자인하게 된 건 지난 3월 오랜 단골로부터 받은 한 통의 전화 때문이다.

“자녀가 민사고 학생인데, 이번에 학교에서 교복 바꾸는 일을 추진한다며 도와 달라는 요청을 받았어요.”

그는 “누구나 가장 많이 추억하는 게 고교시절 아니냐”며 “학생들의 마음속에 한국 의상에 대한 자부심을 넣어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김 명장이 만든 한복을 입은 영화배우 니콜라스 케이지. 오른쪽은 민사고의 새 교복 샘플. [사진 우상조 기자]

김 명장이 만든 한복을 입은 영화배우 니콜라스 케이지. 오른쪽은 민사고의 새 교복 샘플. [사진 우상조 기자]

20년 넘게 한복을 만들었던 그에게도 한복 교복은 새로운 도전이었다. 그는 서울과 횡성을 수차례 오가며 학생, 학부모, 교사들을 만나 의견을 듣고 디자인을 연구했다. “‘촌스럽다’ ‘따뜻하지 않다’ ‘불편하다’는 불만이 많았어요. 그래서 특별한 행사 때 입는 정복은 한복의 전통미를 살리되 생활복은 세탁기에 돌려도 3년 내내 입을 수 있을 정도로 실용적이면서 편하게 활동할 수 있도록 디자인을 업그레이드했어요.”

김 명장은 “시간이 촉박해서 예정됐던 홍콩 패션쇼까지 취소하고 의상 제작에만 올인했다”고 했다. 그가 디자인한 교복은 학생·학부모 등의 의견 수렴을 거쳐 내년부터 적용될 예정이다. 그는 “다른 학교에서도 교복을 한복으로 바꾸고 싶다는 문의가 오고 있다”며 “일제시대 문화의 잔재로 남아 있는 교복 디자인을 한국적으로 바꾸는 일을 계속 진행하고 싶다”고 말했다.

대학에서 양장 디자인을 공부하던 그가 한복으로 방향을 바꾼 것도 1980년대 후반 영국 런던의 해롯백화점에 전시된 기모노를 보고 난 이후부터다. 그는 “외국에선 중국 치파오나 일본 기모노에 비해 한복의 아름다움이 아직 덜 알려져 있다”며 아쉬워했다.

“색을 쌓아 피어나는 한복 특유의 아름다움은 서양의 드레스와는 다른 신선한 인상을 주죠. 영부인 시절에 제가 만든 한복 드레스를 받은 힐러리도 한복의 디자인에 대해 아름답다며 감탄했어요.”

그는 조만간 중국 광저우에 한복 체험관을 만드는 등 전 세계에 한복의 미를 널리 알리는 일에 매진할 계획이다.

글=천권필 기자 feeling@joongang.co.kr
사진=우상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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