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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간 다재다능한 초정밀 화학공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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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제대로 먹은 것이 없을 때 「간에 기별도 안간다」고 한다. 또 대담하고 배짱이 두둑하면「간이 크다」고 하고, 무척 놀랐을 때는「간떨어질뻔 했다」고 한다. 이밖에도「간에 바람이 들었다」느니 「간이콩알만 해졌다」느니 「간덩이가 부었다」는 등의 말도 있다.
이같은 표현들이나 『별주부전』에 나오는 토끼의 간얘기는 모두 간이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에 나온 말일 것이다.
간이 중요한 만큼 간 때문에 고통을 받는 사람도 많다. 85년도 사인분석에 의하면 사망자 20명 가운데 1명은 간 때문이었으며 환자수도 매년 늘어나고 있다.
간을 그렇게 중요시하고, 또 무서워하면서도 어느 조사에 따르면 정작 간이 어디쯤 붙어있는지조차 모르는 사람이 절반이 넘었다고 한다. 그만큼 우리몸을 모르고 있다는 것을 반증한다.
간은 자기의 양 손바닥을 합친 정도의 크기에 무게는 체중의 50분의1정도인 1·2∼1·5㎏으로 인체장기중 가장 크고 무겁다.
간의 위치는 오른폭 4∼5번깨늑골(갈비뼈), 그러니까 오른쪽 젖꼭지 조금 밑에서 아래로는 10∼11번째 늑골, 그리고 왼쪽 젖꼭지 조금 아래에 걸쳐있다. 앞에서 볼때 이 세점을 잇는 삼각형 모양으로 생각하면 된다. 따라서 간의 대부분은 우상복부의 늑골에 보호되고 있는 셈이다.
정상인의 간은 손으로 만져지지 않으나 간염이나 간암으로 간이 커지거나 간경변증으로 간의 모양이 뒤틀리면 오른쪽 갈비뼈 밑으로 만져질수 있다. 의사들이 촉진할때 숨을 크게 들이마시게 하는 것도 횡격막에 붙어있는 간이 아래쪽으로 더 많이 밀려 내려오도록하기 위함이다.
간에 이상이 있을때 이같이 크기나 표면이 변하는수도 있지만 병이 있어도 크기에 변화가 없는 간질환도 허다하다.
정상간의 표면은 쇠간처럼 매끈하고 말랑말랑하며 윤기있는 적갈색을 띠고 있으나 병적 상태가 되면 표면이 자갈밭처럼 울퉁불퉁하게 일그러지거나 돌덩이처렴 단단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간은 인대를 중심으로 좌·우엽으로 나뉘며 우엽 아래쪽에 담낭(쓸개)이 붙어있다.
애기때는 좌·우엽이 거의 같은 크기지만 성인이 되면 개인차가 있긴 하나 대개 우엽이 좌엽의 6배정도 크기가 된다.
그러나 기능적으로는 간으로 들어온 혈관이 두갈래로 나뉘는 분기점을 중심으로 좌·우를 구분하는데 이것은 절제수술이나 혈관조영술등에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간으로 들어가는 혈관은 간동맥과 문정맥(문맥)으로 간속에서 여러 갈래로 나눠진후 간정맥으로 모아져 간밖으로 빠져나간다.
간에는 1분에 1∼1·5ℓ의 혈액이 흐르는데 그 70%를 문정맥이 담당한다. 문정맥은 각 내장기에서 오는 대사의 산물을 운반한다는 점에서 중요한 혈관으로 꼽힌다. 소장이나 상행결장에서 오는혈액은 우엽으로, 위·췌장·비장·하행결장·S상결장·직장등에서 오는 혈액은 좌엽으로 들어간다.
따라서 좌엽보다는 우엽에 영양분이 많이 가며 위암이나 췌장암·직장암이 전이될 때는 좌엽쪽으로, 상행결장의 암은 우엽쪽으로 전이가 잘되는 것도 다 그때문이다.
만일 문맥이 어떤 원인으로 막혀버리면 샛길인 식도 하부나 항문주위·배꼽주위로 혈액이 흘러들어가 이곳의 혈관이 굵어지거나 꾸불꾸불해져 눈으로 확인되는 경우도 있다.
간을 구성하는 단위는 간소엽. 이것은 간세포가 방사형으로 배열되어 하나의 집단을 이루고 있는데 소엽하나하나는 직경약1㎜, 높이 2㎜정도의 6각기둥형태를 하고 있으며 이 속을 협관을 비롯해 임파관·담관등이 어망처럼 뻗어있고 한 가운데를 중심정맥이라는 혈관이 지나고 있다.
간에는 이러한 간소엽이 50만개정도가 있고 또 1g에는 2억개의 세포, 그러니까 전체로는 약3천억개의 세포가 채워져있다.
고려대의대 이창홍교수(부속구로병원·내과)는 간의 가장 신비한 점은 놀랄만한 재생력과 여유능력을 든다. 개와 흰쥐의 간을 4분의3만큼 떼어낸 실험에서 각각 8주, 3주후에 원래 크기대로 복원되었는데 사람에서도 이보다는 좀느리지만 원래대로 복원이 된다.
이교수는 『간질환으로 85%이상의 간세포가 파괴되어도 평소의 기능을 계속할수 있을 정도로 간은 여유능력이 크며, 또 간암수술로 80%이상의 간을 절제해도 정상적인 기능이 유지될뿐 아니라 몇개월 이내에 원래대로 재생된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이러한 장점은 다른한편으로는 간손상이 상당히 진행되기까지는 증상을 느끼지 못하는 단점이 되고 있다는 것. 그래서 간을 「침묵의 장기」라고 부르는 것이다.
그러면 간은 어떤 일들을 할까. 간의 기능은 현재까지 알려진 것만해도 5백가지가 넘는다.그만큼 복잡하고 중요한 일을 하고 있어「다재다능한 예술가」라느니, 「인체의 화학공장」 으로 간을 표현하기도 한다.
서울대의대 김정룡교수(소화기내과)는 간의 기능을 크게 ▲대사기능 ▲배설기능 ▲해독및 방어기능 ▲순환기능 ▲조혈및 혈액응고기능으로 나누고 그중에서도 으뜸은 대사기능이라고 말한다.
우선 탄수화물대사부터 보자. 소장에서 흡수된 포도당이나 과당및 갈락토스와 같은 단당류는 문맥을 통해 간으로 운반된후 분해되어 에너지원이 되든지, 글리코겐으로 합성되어 저장되고 공복때와같이 혈액속의 포도당이 줄어들면 저장된 글리코겐을 포도당으로 분해해 혈액속으로 방출함으로써 혈당을 일정하게 유지시킨다.
단백질이 소장에서 아미노산으로 분해 흡수되어 간으로 운반되면 간세포는 이것을 새로운 단백질로 합성하거나 혈액속의 중요한 단백인 알부민이나 혈액응고에 관여하는 피브리노겐등의 혈액응고인자들을 합성하며 이밖에 지방질이나 비타민·호르몬·전해질등을 합성, 분해한다.
만일 이같은 대사기능이 없다면 금방 혼수에 빠지고 생명을 잃게된다.
또 간에서 생긴 담즙이나 콜레스테롤, 혈액속의 빌리루빈등을 처리, 배설하는 일도 간이 맡아서 한다.
빌리루빈은 수명을 다한 적혈구가 파괴돼 생기는 노란색소로 이것이 제대로 배설되면 장의 내용물은 노랗게 물들어져 대변으로 나오지만 배설이 되지 못하면 혈액속에 남아 눈에서 얼굴·몸·팔다리·손·발바닥을 차례로 노랗게 물들인다. 이것이 황달로 만일 눈자위는 그대로인데 손바닥만 노랗게될 경우 이것은 간하고는 관계가없다.
또 간은 체외에서 섭취되는 알콜이나 약물, 체내에서 생성된 각종 독성물질을 복잡한 화학반응을거쳐 해독하고 혈액을 타고 들어온 세균이나 이물을 잡아먹는 방어기능도 갖고 있다.
이러한 중요한 일들을 소리없이 해내는 간에 항상 고마운 마음을갖고 약물남용이나 폭주등으로 혹사시키는 일이 없도록 보호하는 것이 간에 대한 보답일 것이다. <신종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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