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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은 어떤 해이어야 하는가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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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새해는 우리에게 어떤해인가. 세일이면 누구나이런 자문을 해본다.
1987년은 그러나 좀다르다. 어떤 해인가를 묻기보다는 어떤 해 이어야 하는가를 물어야 한다.
지금 우리는 변화의 시대를 맞고 있다. 새해아침에 새 달력을 여는 그런 평상의 변화가 아니다. 대학입시제도가 바뀌고, 지방 행정구역이 바뀌고, 전화번호부가 바뀌는 그런 변화를 얘기하는 것도 아니다.
우리는 한 시대의 분위기를 바꾸고, 삶의 방식과 자세를 새롭게 하고, 세계의 지평을 새로운 눈므로 바라보아야한다.
그런 변화들 가운데 가강 긴요한 변화는 헌법을 바꾸는 일이다. 건국후 39년동안 아홉번째의 개헌이다.
그러나 이번 개헌은 어느날 갑자기 집권자가 불쑥 내민 그런 개헌이 아니다. 가슴 철렁하는 정변은 더구나 아니다. 여야가 지난 수삼개월동안 하루의 영일도 없이 시비를 벌여온 끝에『그렇다면 고쳐보자』고 작정한 개헌이다.
국민들 또한 이번에는 민주주의다운 민주주의 한번 해 보자는 원망과 기대에 부풀어 있는 개헌이다.
그런 결의와 희망대로 개혜이 순조롭게 이루어지면 우리는 비로소 정치안정의 길목에 들어설 수 있다. 설령 어느 구석에서 데모가 일어나고 목청을 돋우는 무리들이 있어도 그런 개헌만 성사시키고 나면 큰 걱정거리가 못된다. 다수 국민들이 더 큰 목소리와 준엄한 꾸짖음으로 시끄러운 무리들을 잠재울수 있을 것이다.
분명 이런 날이 시작되어야 한다. 세상에 민주주의 보다 더 강한 정치제도는 없다. 정의가 똑바로 잡혀있으면 정의 아닌 것은 기를 펼수 없게 된다.
우리는 이 순간 그런 날이 오는 변화를 기다리고 있다. 우리는 건국이 되던 그날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발을 구르며, 목청을 돋워 민주주의를 외치고 열망해온 것도 그때문이다.
우리는 이제 그런 민주주의, 더 살기좋은 민주주의의 실현을 고대하며 개헌을 지켜보고 있다.
그것은 분명 새로운 시대의 전개이고, 새로운 전진의 시작이고, 새로운 희망의 손짓이다.
역사는 그런 변화의 힘으로 발전한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어떤가. 새로 만들어질 헌법은 윤곽조차 드러나지 않고 있다. 개헌논의가 시작된지 1년이 지나도록 개헌작업은 아무것도 이루어진 것이 없다.
정치인들은 대통령중심제냐, 내각책임제냐의 시비로 그 많은 시간과 노력과 정치에너지를 소모했다. 하루하루가 아슬아슬하게 지나가는 정치불안이 연속되었다.
도대체 권력구조가 민주화보다 더 시급하고 절박한 문제라는 정치인들의 독선적 논리엔 이제 종지부를 찍어야 할때가 되었다.
정치시계는 더 기다려줄 시간이 없다. 내년초입엔 그동안 집권자 자신에 의해 약속된 평화적 정권교체가 이루어져야할 시점이다. 그전에 먼저 개헌이 되어야 하고 그뒤엔 선거법이 고쳐져야 하고 국회의원 뽑기, 새 집권자 결정하기, 지방선거치르기등 실로 태산같은 일들이 첩첩이 쌓여 있다.
그런 정치일정을 역산해 보면 지금 금머리를 싸매고 줄달음질을 쳐도 목표에 닿을지 모를 형편이다.
여와 야는 이제 포진도 풀고 요새도 허물고 앞으로 나와야한다. 우리의 정치는 어써면 그렇게 사생결단을 하고 전쟁을 하듯이 하는가.
좀 웃기도 하고 때로는 못이기는체 양보도 해가며 앞으로 나아가는 정치는 할수 없는가. 정치가 요새속에 진을 치고 있는 동안은 아무것도 되는일이 없다.
요즘 정계에서 대화의 기미가 보이기 시작하는 것은 천만다행이다. 그보다 반가운 신춘소식은 없다. 모처럼의 분위기는 정성스럽게 유지되고 성숙되어야 한다.
야당은 우선 옆사람의 눈치를 살피는 소신없는 정치자세를 대담하게 버려야한다. 여부은 자신의 입장을 고지선점인양 고집하지 말아야 한다. 민주화를 하자는데 어디에 당리당략이 따로있는가.
국민이 생각하는 개헌은 여당을 위한 것도, 야당을 위한 것도 아니다. 학생이나 재야정치인, 종교인, 근로자를 위한 개헌은 더구나 아니다. 모든 국민이 다함께 마음 편하게 살수있는 정치를 펴나가는 개헌을 하자는 미담이 아닌가.
민주주의는 마치 따스한 햇볕과도 같이 모든 사람의 마음을 어루만져주고, 또 한편으로는 순한 바람과 부드러운 비와도 같아서 생명의 윤기와 광채를 더해주는 제도다.
그앞에서 혼자 돌아앉아 주판을 놓으려는 정치인들은 부끄러운줄을 알아야한다.
지금 판단을 그르치고 길을 잘못들면 우리는 돌이킬수 없는 합격에 빠져또다시 끝도 없는 방황과 절규와 침울한 날을 맞을지 모른다.
지난해는 누가 뭐래도 역사상 오래기억되어야할 해였다. 불과 1년전만해도 우리가 무역흑자를 운위하고, 외채를 갚는 일을 누가 엄두나 냈었는가.
그러나 현실은 기적같은 일들이 일어났다. 무역흑자는 물론이고 국제수지가 흑자로 돌아서고 외채도 20억달러 가까운 규모를 탕감할수 있었다.
3저현상이니 뭐니 설명은 장황하지만 역시 우리 국민의 저력과 폭발적인 에너지가 있었기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더도 말고 이런 경제상황이 몇 년만 계속되면 우리 경제의 체질이 바뀔 것이다. 그때는 정치구호로서가 아니라 현실로서 선진국의 티켓을 우리국민은 손에 쥘수 있다.
전후 일목이 무역흑자를 기록하기 시작한 것은 64년부터였다. 그후에도 몇년 주춤거리다가 불과 64여년만에 일본은 오늘 9백억달러의 흑자를 구가하며 세계 최고의 채권국이 되어있다.
우리가 주목해야할 것은 시대의 진운을 헛되이 놓쳐서는 안된다는 사실이다. 일본은 정치안정과 생산적인 사회분위기로 그런 일을 해낼수 있었다. 그정치안정의 요체는 민주주의의 실현이요, 존중이었다. 그 사회는 그런 활기속에서 뼈대를 갖고, 기업은 기업대로 최선을 다할수 있었다.
그것은 바다건너 남의 나라 이야기일수는 없다. 우리도 지금 그런 희망적 변화속에 있다.
오늘 우리 옆에 있는 정치며, 경제며, 사회의 희망적인 변화들의 진운을 잠지못하면 절망적인 변화가 그자리를 차지하게 될 것이다. 상상조차 하기싫은일이다.
1987년은 그런 해가 되어서는 안된다. 그렇지 않은 해가 되도록 우리는 모자람없는 노력을 다 해야한다.
-『최선으로 출발한 것은 최악으로 끝날수 없다』
이런 시구가 생각난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최선의 것을 세상에 주라. 그러면 최선의 것이 돌아오리라.
우리의 1987년은 그런 해가 되도록 정치인, 경제인, 각계각층의 모든사람들은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지금 새로운 역사의 문턱에 서성거리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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