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태풍의 눈’ 대신 마름모꼴로…삼성 색깔 빼는 르노자동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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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M3

르노삼성차가 기존 ‘태풍의 눈’ 엠블럼 대신 프랑스 르노자동차의 마름모꼴 엠블럼을 단 ‘QM3’ 차량을 판매하기 시작했다. 르노 엠블럼을 단 차를 파는 건 르노가 2000년 삼성자동차를 인수한 이후 처음이다. 르노삼성차가 ‘삼성’에서 ‘르노’로 무게추를 옮기는 모양새다. 르노삼성차는 “10월부터 고객이 원할 경우 QM3 차량에 한해 전면 라디에이터 그릴과 엔진 보닛은 물론 뒷면 트렁크, 휠까지 르노 엠블럼을 다는 식으로 교체해주고 있다”고 31일 밝혔다. 비용은 전시장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약 90만원이다.

QM3 고객 원하면 엠블럼 바꿔줘
전시장·AS도 르노스타일로 전환
삼성과 로열티 계약 2020년 종료
GM대우식 엠블럼 전면 교체 주목

QM3는 2013년 출시한 소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이다. 스페인 바야돌리드 공장에서 생산한 르노 ‘캡처’를 수입해 들여온다. 원래 르노 엠블럼을 달도록 디자인한 차를 국내로 들여오면서 태풍의 눈 엠블럼을 달아 판매해 왔다. 르노삼성차 관계자는 “엠블럼 교체는 옵션(선택사항)이 아니라 고객 반응을 살피기 위한 시범 서비스다”며 “QM3 이외의 다른 차종으로 (엠블럼 교체 서비스를) 확대할 계획은 아직 없다”고 말했다.

자동차 라디에이터 그릴 한가운데 달린 엠블럼은 회사의 상징이다. 메르세데스-벤츠의 ‘삼각별’ 엠블럼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QM3를 비롯해 SM6·QM6 등 르노그룹 차를 순차적으로 들여오고 있는 르노삼성차 입장에선 엠블럼이 골칫거리였다. 좁은 마름모꼴 엠블럼을 태풍의 눈 엠블럼으로 바꾸는 과정에서 디자인이 어색해지고 추가 비용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르노 본사에서도 한국 시장만 유독 기존 태풍의 눈 엠블럼을 고집하는 데 대한 지적이 나왔다.

르노삼성차 측은 “한국은 삼성차 시절부터 태풍의 눈 엠블럼에 대한 고객 충성도가 높다”며 기존 엠블럼을 지켜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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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번 변화를 두고 르노삼성차의 전략에도 변화가 생긴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한국GM도 과거 GM대우 시절 마티즈(스파크)·라세티(크루즈)·토스카(에피카)·윈스톰(캡티바) 고객에게 황금 십자가 모양의 쉐보레 엠블럼을 제공했다. 그러다 2011년 쉐보레 브랜드를 도입했다. 이 때문에 르노삼성차도 추후 르노 브랜드로의 전환에 대비하고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르노삼성차는 이미 지난해 11월 전시장 리모델링 작업에 착수했다. 과거 전시장이 삼성의 상징색인 푸른색 일색이었다면 새단장한 전시장은 르노그룹의 상징인 노란색 위주로 바꿨다. 특히 르노그룹에서 만든 차만 따로 전시하는 ‘르노 존’을 마련했다. QM3와 캡처를 동시에 전시하는 식이다. 여기엔 르노 엠블럼이 선명히 박혀 있다. 르노삼성차의 주인이 삼성이 아닌 르노라는 걸 각인시키는 뜻으로 풀이된다.

애프터서비스(AS)에도 르노의 색깔을 넣고 있다. 올 초부터 르노가 자랑하는 AS 프로그램인 ‘케어(CARE) 2.0’을 도입했다. 케어 2.0은 수동적으로 고객이 AS를 원할 때만 응대했던 데서 벗어나 자동차 회사가 적극적으로 고객에게 다가가는 서비스다. 차량 구매 후 일정 기간이 지난 고객에게 특정 부품의 점검·교체 시기가 왔음을 먼저 알리고 수리한 뒤에도 어떤 점을 개선했는지 관련 정보를 적극적으로 제공하는 식이다.

르노삼성차의 ‘르노화’는 예고된 수순이다. 부산 공장에서 한 대도 만들지 않는 QM3를 수입해 파는 것을 두고 “르노삼성차가 르노 그룹의 판매기지로 전락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왔다. 한국GM이 ‘쉐보레’ 브랜드 차량인 대형 세단 임팔라를 들여오며 ‘수입차 아닌 수입차’ 전략을 쓰고 있는 것과 비슷하다.

르노삼성차는 과거 삼성 브랜드를 앞세운 ‘국산차’ 마케팅에 집중해왔다. 르노 인수 후 사실상 삼성과 관련이 없는데도 영업이익을 냈을 경우 매출의 0.8%를 삼성에 로열티로 낸 것도 국산 브랜드의 이점을 가져가려는 포석이었다. 르노삼성차가 삼성 브랜드를 쓸 수 있는 계약기간은 2020년까지다. 르노삼성차 관계자는 “삼성 브랜드와 분리에 대해선 결정된 바 없다”고 말했다.

김기환 기자 kh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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