캘린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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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22일은 동지. 1년 중 해가 노루꼬리처럼 가장 짧은 날이다.
우리 조상들은 이날을「아세」라고도 하여 집집마다 팥죽을 쑤어먹고 『한살 더 먹었다』고 했다. 동지에 설을 쇠었던 시절이 있었기 때문이다.
『동국세시기』동지조를 보면 이런 기록이 있다.
조선조 때는 해마다 동지 무렵이 되면 관상감에서 새해 역서를 여러 벌 만들어 궁중에 들여보냈다. 표지 장정의 색깔에 따라 황장력·청장력·백장력이라 불렀는데, 황장력을 제일로 쳐주었다.
왕은 이 역서에 「동문지보」라는 큼직한 어새를 찍어 문무백관은 물론 각 관아에 나눠주면서 새해엔 더욱 열심히 국사에 임하라고 당부했다.
또 『열양세시기』에는 각 관아에서도 달력을 만들어 썼다는 얘기가 있다. 역시 관상감에서 찍어다가 직급에 따라 나누어주면 그들은 이것을 고향의 친지나 이웃에 선물하기도 했다. 『여름에는 부채, 겨울에는 책력』이라는 속담이 있듯이 모두 아름다운 유풍이다.
그러나 동지는 대 음력의 11월. 오늘의 태양력 캘린더와는 크게 다르다.
태양력을 쓰는 서양사에는 1582년10월5일부터 10월14일까지 열흘이 없다. 로마교황 「그레고리」13세가그해 10월4일 그레고리역을 새로 제정, 반포하면서 다음달을 15일로 건너뛰었기 때문이다. 바로 요즘 우리가 쓰고 있는 캘린더는 그 역법을 따른 것이다.
그러나 1년을 달(월)과 주일로 구분하고, 또 각종 기념일까지 자세히 기입한 오늘날의 캘린더가 언제부터 나왔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기독교의 성일을 기록하기 위해 시작된 것만은 틀림없다.
캘린더 출판이 활발했던 시대가 있었다. 15세기 무렵 점성술이 성행했던 때다. 당시의 캘린더는 1년용이 아니고 다년용이었다. 점성가들이 몇 년 뒤의 일을 예언하고 그것을 캘린더에 적어 넣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캘린더는 예언서이기도 했다. 이런 종류의 캘린더에는 대부분 표지에 미사여구의 서문을 집어넣기도 한다.
1491년 독일에서 출판 된 한 캘린더는 「서시」를 붙였는데, 내용은 임신과 무통 분만에서 설사 약 쓰는 법까지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그 뒤엔 양치기 캘린더, 항해용 캘린더, 관청의 직원록 캘린더까지 등장했다.
우리나라에서 이 태양력을 처음 쓴 것은 1895년(고종32년)1월부터지만 절후와 기신·생일 등의 행사에는 음력을 그대로 썼다.
어쨌든 새해를 알리는 캘린더가 거리에 선보인지도 오래다. 더구나 금년엔 캘린더가 다양화·고급화되었고 발행 부수도 크게 늘어난 모양이다. 동지 날의 유풍도 되살아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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