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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뒤흔드는 K팝에도 스웨덴 음악인의 숨결이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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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3호 15면

스웨덴의 제2도시 예테보리는 음악과 예술의 도시이기도 하다. 스웨덴 대중음악에서 예테보리의 역할을 짚어본 ‘예테보리 음악의 명장면들’ 전시가 열리고 있는 예테보리 미술관 내부. [사진 조현진]

1982년 이후 공식 음악 활동을 중단했던 아바(ABBA)가 다시 뭉친다는 소식이다. 26일 영국 BBC에 따르면 칠순이 된 멤버들은 음악 매니저 사이먼 풀러와 함께 이르면 내년부터 가상 현실과 인공지능을 활용하는 ‘디지털 연예 활동’을 하기로 의기투합했다.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팬으로서 기대하지 않을 수 없다.


ABBA의 성공은 한 밴드만의 성공을 의미하지 않는다. 스웨덴이 세계 대중음악 시장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도록 절대적인 발판으로 작용했다. ABBA 덕분에 세계 대중음악계는 자연스럽게 스웨덴으로 눈을 돌리게 되었고, 스웨덴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미국 최대 스포츠 행사로 프로미식축구 최강자를 가리는 수퍼보울(Superbowl) 경기. 경기도 경기지만 전반과 후반 사이에 펼쳐지는 인기 뮤지션의 하프타임 쇼는 늘 관심 대상이다. 지난해 2월 1일 수퍼보울 하프타임 때는 미국의 인기 여가수 케이티 페리가 무대에 올라 8곡을 불렀는데, 이때 부른 첫 5곡은 모두 스웨덴 프로듀서 맥스 마틴(Max Martin)의 손을 거친 곡이었다. 또 2014년 미국 빌보드 차트 1위에 오른 곡 중 무려 25%가 스웨덴 작곡가들의 도움을 받았다.


국내 아티스트들이 새 음반을 준비할 때 스웨덴 음악인이 참여하는 현상도 더 이상 새로운 사실이 아니다. 올해 데뷔한 SM 엔터테인먼트의 아이돌 보이그룹 NCT127이 발표한 곡 ‘소방차’와 가수 에릭 남이 이번 달 초 서울에서 열린 국제뮤직페어 뮤콘 2016 행사에서 공개한 곡 ‘4AM’ 등에도 스웨덴 음악인들의 숨결이 묻어 있다.

1 ‘스웨덴 음악 명예의 전당’을 찾은 관람객들. 2 ‘예테보리 음악의 명장면들’ 전시관 내부에 마련된 악기를 연주하며 즐거워하는 어린이.

[ABBA의 성공이 스웨덴 음악에 관심 유도]


스웨덴은 자국의 대중음악 시장 규모가 미국과 영국에 이어 세계 3위 규모라고 주장한다. 미국(3억2000만 명)이나 영국(6000만 명)에 비해 인구가 900만 명에 지나지 않아 1인당 음악 시장 규모로 환산하면 세계 최대 규모라는 해석도 덧붙인다. 영어가 모국어가 아니라는 사실을 생각하면 더욱 놀라운 수치다.


이 같은 현상을 세계 대중음악계는 ‘스웨덴 음악의 기적(Swedish Music Miracle)’이라고 부르고 있다. 모든 기적이 다 그렇듯 ‘스웨덴 음악 기적’도 하루아침에 나타난 결과는 아니다. ABBA가 발판을 마련한 뒤 많은 제도와 환경, 그리고 노력의 복합적인 결과다.


자국의 음악시장 규모가 제한적이어서 많은 음악인이 해외에 진출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는 점, 이론이든 실기든 음악을 공부하고 싶은 청소년들을 위해 다양한 음악교육 프로그램이 마련됐다는 점이 특히 중요했다. 영미권 방송프로그램을 편성할 때 자국어로 따로 더빙하지 않아도 괜찮을 정도로 국민의 영어 수준이 높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스웨덴 국적의 ‘스포티파이(Spotify)’나 ‘사운드클라우드(Soundcloud)’ 같은 음악 관련 정보기술(IT) 기업의 성공에서 보듯 디지털 IT 환경이 뛰어나다는 점도 거론된다.


그러나 이 정도의 장점은 스웨덴만이 갖는 경쟁우위는 아니다. 한국의 환경도 이와 유사하다. ‘스웨덴 음악 기적’ 탄생의 가장 중요한 배경으로는 이 나라 음악 산업에서만 찾을 수 있는 독특한 멘토십(mentorship) 환경이 꼽힌다. 상하 지위 없이 참여자 모두 자신의 아이디어를 내며 협업하는 분위기다. 이 과정을 거쳐 다양한 의견이 나오고 완성도는 더욱 높아진다.

스웨덴 음반 매장 어디를 가도 ABBA는 여전히 특별 대우를 받는다.

[요절한 프로듀서 데니즈 팝이 토대 만들어]


이런 환경은 스웨덴의 전설적인 DJ 겸 프로듀서 데니즈 팝(Denniz PoP)에 의해 본격화됐다. 그는 90년대 초 케이론(Cheiron) 스튜디오를 설립해 재능 있는 후배 음악인들을 영입하면서 멘토십 철학을 확립했다. 자국 출신의 에이스 오브 베이스(ACE of Base)와 로빈(Robyn)은 물론 브리트니 스피어스, 백스트리트 보이스와 엔싱크(NSYNC) 등의 성공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98년 35세로 요절했지만 그의 음악 철학은 맥스 마틴과 셸백(Shellback) 등 지금 가장 몸값 높은 스웨덴 출신 프로듀서들을 통해 계승되고 있다. 스웨덴 음악의 해외진출을 지원하는 기관 ‘엑스포트 뮤직 스웨덴(Export Music Sweden)’의 제스퍼 토손 대표는 “스웨덴 음악의 성공에는 여러 요인이 있지만 무엇보다 협업하는 멘토십 문화가 있었다. 지금 한창 전성기인 울프 커즌스(Wolf Cousins)가 좋은 예”라고 소개했다.


이렇게 세계 대중음악계에 확실한 한 축을 담당하게 된 스웨덴 대중음악의 가치를 보존하고 역사를 대중에 알리면서 앞으로의 발전을 추구하기 위해 마련된 음악박물관이 ‘스웨덴 음악 명예의 전당(Swedish Music Hall of Fame)’이다. ABBA 박물관과 같은 건물 안에 배치해 방문자 유치 극대화를 위한 노력이 엿보인다. 명예의 전당은 2014년 ABBA와 남녀혼성 듀오 록셋(Roxette) 등을 시작으로 매년 헌액자를 발표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힙합과 댄스음악의 조화를 선보인 네네 체리(Neneh Cherry)와 한국도 여러 차례 방문한 속주 기타리스트 윙비에 말름스텐(Yngwie Malmsteen) 등이 입성했다. 올해는 프로듀서 데니즈 팝 외에 스웨덴 최고 인기의 록밴드 켄트(Kent) 등이 이름을 올렸다.


스웨덴 팝과 로큰롤 역사에서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 곳이 제2의 도시인 예테보리(Gteborg)다. ABBA의 비에른 울바에우스가 태어난 이곳은 일찍이 재즈음악 문화가 크게 성행했다. 50년대 중반에는 로큰롤도 본격 보급됐다. 55년 12월 3일 훗날 스웨덴의 로큰롤 황제로 불리게 되는 가수 크리스 레너트(Chris Lennert)가 재즈 공연 중 연주를 잠시 멈추고 당시 인기 가수 빌 헤일리(Bill Haley)의 히트 로큰롤곡 ‘록 어라운드 더 클라크(Rock Around the Clock)’를 연주했던 것이 계기였다.


이후 예테보리는 스웨덴 대중음악에서 스톡홀름과 함께 양대 축을 형성해 왔다. 이미 60년대에 일본 공연을 하는 등 스웨덴 출신의 록밴드로 첫 해외진출과 성공을 맛보고, 영국의 섀도스(The Shadows), 벤처스(The Ventures)와 함께 연주 중심의 로큰롤 음악을 보여준 스푸트닉스(The Spotnicks)도 예테보리 출신이다.


이후 예테보리는 90년대 국내에서도 큰 인기를 얻었던 에이스 오브 베이스, 펑크록 성향의 사운드트랙 오브 아워 라이브스(The Soundtrack of Our Lives), 일렉트로닉 듀오 더 나이프(The Knife), 라이브 공연 스타 하칸 헬스트롬(Hakan Hellstrom), 인디 포크록 가수 호세 곤살레스(Jose Gonzalez) 등 숱한 스타를 배출했다.


[에이스 오브 베이스 등 숱한 스타 배출]


이 차분하고 아름다운 도시는 아이러니하게도 무겁고 날카로운 메탈음악 부문에서도 두각을 보였다. 앳 더 게이츠(At the Gates), 인 플레임스(In Flames), 해머폴(HammerFall) 같은 밴드의 잇따른 성공은 ‘예테보리 사운드’라는 용어를 탄생시켰고 2004년 이후 개최돼 온 메탈 음악 중심의 음악축제인 ‘메탈타운 페스티벌(The Metaltown Festival)’은 중요한 메탈 축제로 자리매김했다.


스웨덴 대중음악에서 예테보리의 기여를 알리고 위상을 다지기 위해 예테보리 미술관은 ‘예테보리 음악의 명장면들(Music Scenes Gothenburg) 1955-2018’이라는 전시를 기획해 지난해부터 2018년 1월까지 장장 2년 3개월에 걸친 전시를 시작했다. ‘예테보리는 훌륭한 음악도시다’라고 일방적으로 주장하기보다는 ‘예테보리시와 음악은 서로의 발전에 서로가 어떻게 영향을 미쳤나?’라는 화두를 던진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전시를 기획한 큐레이터 제시카 라그홀름은 “스톡홀름에 음악 산업이 있었다면 예테보리는 자유롭고 활기찬 언더그라운드 무대가 있었다. 음악인들은 음악에 관대한 이런 분위기를 좋아했고 이는 예테보리 사운드 성공의 원동력이 됐다”고 설명했다.


자유롭고 활기찬 예테보리의 매력은 도시에서 가장 오래된 지역 중 하나인 하가(Haga)를 방문하면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 예쁘고 개성 넘치는 가게와 카페들 사이에 근사한 음반점도 눈에 띄는데, 74년 예테보리에서 시작해 지금은 스웨덴 곳곳에서 매장을 운영하는 벤간스(Bengans)도 포함된다. 전성기 때 가수 데이비드 보위와 록밴드 R.E.M 등이 찾아오기도 한 명소다.


이 수변(水邊) 도시에서 빼놓을 수 없는 문화가 공연이다. 헤비메탈에서 오페라까지 늘 크고 작은 음악무대가 관람객들을 즐겁게 해준다. 음악축제도 인기를 더해가면서 앞서 언급한 메탈타운 페스티벌 말고도 ‘웨이 아웃 웨스트(Way Out West)’와 얼터너티브 음악 중심의 ‘클란데스티노(Clandestino)’는 매년 골수팬이 늘어나면서 예테보리를 유럽의 중요한 음악축제도시 반열에 올려놓고 있다.


스칸디나비아 지역의 최대 영화제인 예테보리 영화제와 예테보리 비엔날레 같은 국제 행사가 주목받으면서 한때 스웨덴 조선·해운 산업의 중심지였던 예테보리는 이제 유럽의 중요한 문화도시로 거듭났다. 하지만 이 중심에는 역시 음악이 있다. 이 아름다운 음악도시에 하루밖에 머물지 못한 점은 두고두고 아쉽게 느껴진다. 예테보리를 다시 찾아가고 싶은 이유이기도 하다.


예테보리(스웨덴)= 조현진 국민대 특임교수gooddream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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