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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단 기강 바로 잡는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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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불교 조계종이 종단풍토를 쇄신하기 위한 대대적인 「승단 기강확립」에 나섰다. 조계종 총무원은 지난주 승려들간의 상하위계질서를 바로 잡기 위해 제87회 정기중앙종회(11월∼18일)의결을 거쳐 제정한 「승적 제적법」을 공포, 시행한데 이어 승려들의 무분별한 해외여행을 규제하기 위한 「승려 해외여행 억제지침」을 만들었다.
또 새해부터는 승니법 등을 엄격히 적용, 불교 밖에서까지 많은 지탄을 받아온 고질적인 승단 폭력을 일소하고 승려들의 해종행위에 대해서도 종헌·종법대로 엄히 징계할 방침이다.
이같은 불교 조계종의 승단 기강확립 방침은 우선 제2의 불교 정화논이 강력히 제기되고 있는 오늘의 혼탁한 종단 풍토를 바로잡아보려는 승가 자체의 노력과 참회로서 불교계 안팎의 큰 기대를 모으고 있다.
현재 불교 승단의 기강과 관련해 가장 심각히 제기되고 있는 문제는 ▲폭력 ▲위계질서 ▲파계행위 등이다.
새롭게 제정, 공포된 불교 조계종의 승적 제적법은 스승이 제자(상좌)를 제적시킬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해 아래위턱조차 가리지 않는 승단 일각의 해이한 위계 기강을 바로 잡으려는 게 법 제정의 주목적이다.
전문 4조의 이 법은 은사가 10년 이하의 도제에 대해 제적원을 제출할 경우 총무원은 이를 받아들여 승적을 제적토록 했고 제적 승려의 복권에도 은사의 사전 승낙을 받아 시행토록 했다.
승려 해외여행 억제지침은 ▲성지순례의 경우 연1회 ▲학술교류 및 국제회의 참석 연2회 ▲기타 해외여행은 총무원의 사전 승인을 받도록 규제했다.
해외여행 규제는 관광 성격을 띤 승려들의 잦은 해외여행에서 빚어지는 음주·육식 등의 계행 이탈과 승풍해이, 귀중한 외화 낭비 등을 막기 위한 것이다.
조계종 총무원은 새해부터 억제 지침이 명시한 기준에 어긋나는 승려들에게는 해외여행과 관련한 서류를 일체 발급치 않기로 했다.
조계종이 가장 불행한 정화불사(대처승 축출)의 유산으로 물려받은 승단 폭력문제는 62년 종단 출범 이후 몇번의 정화기회를 상실한 채 고질병으로 굳어져 왔다.
종권 다툼을 비롯한 공사간의 크고 작은 일들에 약방의 단초처럼 등장한 승려들간의 폭력행위는 불교이미지를 먹칠해온 주범이었기 때문에 그동안 여러차례 쾌도난마의 발본색원을 4부대 중 모두가 열망해왔고 일반사회에서도 잦은 지탄을 받았다.
조계종은 별도의 법제화나 지침을 새롭게 제정하기보다 기존의 법령들을 철저히 활용, 승려들의 폭력 행위를 엄벌하겠다는 것이다.
이같은 폭력 일소의 제1차 대상으로는 지난달 5일 총무원의 불법점거를 기도했던 승려들.
조계종 총무원은 이들 승려들의 엄벌을 이미 중앙종회 결의까지 얻어놓고 승적 제적(체탈도첩)·공권정지 등의 중징계를 할 방침을 확정해놓고 있다.
불교 조계종의 승단 기강확립은 종권분규 등으로 혼미만을 거듭한 채 날로 해이해지기만 하던 긴 수렁을 빠져나오려는 모처럼의 바람직한 몸부림이라 할 수 있겠다. <이각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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