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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 국제화와 한국의 선택-김중웅<KDI선임연구위원. 경제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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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국제금융시장의 환경과 구조가 크게 바뀌고 있다. 금융자유화가 어느 때보다 촉진되고 있고, 국제 금융시장이 범세계적으로 통합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으며, 자금의 조달과 운용이 은행의 예금·대출로부터 증권의 발행·매매로 전환되고 있는 금융의 증권화 현상 등이 그 변화의 주요 양상이다.
이러한 금융환경 변화는 그 내용이나 변화속도가 과거와는 질적으로 다르기 때문에 선후진국을 막론하고 이와 같은 환경변화에 빨리 적응하여 국제경쟁에 뒤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최근에 시행된 영국의 금융 자유화조치와 이달부터 문을 연 일본의 동경역외 금융시장이 그 대표적 케이스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이 두 금융사건이 우리의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이유는 이들 금융조치가 같은 금융개혁이면서도 그 성격과 접근하는 방법이 다름으로 해서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기 때문이다.
영국이 얼마 전 단행한 소위 「빅뱅」(대폭발=big bang)이라는 이름의 금융혁신은 증권시장에서 증권매매 수수료의 자유화, 브로커(증권매매 위탁업자)와 조버(증권거래 딜러)의 겸업허용, 은행과 증권겸업금지의 철폐, 외부 금융기관의 증권시장참여 개방이 그 주요 골자인데, 요컨대 구태의연한 금융관행과 제도에 개혁의 바람을 넣어 런던을 과거와 같은 세계의 금융 중심지로 회복시키려는 금융조치다.
런던은 19세기까지 산업혁명 이후 줄곧 세계금융의 중심지로 번영을 누러왔으나 20세기에 들어서는 식민지 상실이라는 영국쇠퇴의 역사와 이른바 영국병으로 경제적 활력을 잃고 힘없는 노인으로 전락하고 있다. 영국경제의 쇠퇴원인은 어디에 있을까. 보는 시각에 따라 여러 가지 이유를 들 수 있겠으나 가장 중요한 원인의 하나는 새로운 변화 내지는 진보에 대해 지나칠 이만큼 완고한 영국적 보수성으로 환경변화에 기민하게 적응하지 못하였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런던은 이번 조치로 엄청난 변화를 기대하고 또 예견하고 있다. 그러나 「대처」수상의 경제자유화 정책의 일환으로 실시되는 이 「빅뱅」이 런던을 다시금 세계의 중추적인 국제금융시장의 지위로 부활시킬 수 있을는지는 현재 영국의 제조업 등 실물경제가 국제경쟁력을 상실하고 있는 점을 생각할 때 아직 미지수라고 말하지 아니 할 수 없다.
한편 일본의 동경역외 금융시장은 일본이 무역흑자가 계속 누적되어 세계 최대의 채권국으로 부상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런던시장과 같은 완전자유화는 유보하고 여러가지 제한을 두고 있다.
역외 금융시장(off shore banking center)은 국제간의 외환거래에 있어서 비거주자에게만 금융규제를 완화하고 특혜를 주어 자유거래를 허용하는 내외 차단식 국제금융시장이다.
그런데 동경역외 금융시장은 홍콩 등 다른 역외 금융시장과는 달리 지방세· 인지세를 면제하지 않는 등 겹겹의 제약을 두고 있는 점에 특색이 있다.
일본은 이미 경제 대국으로서 일본 엔화가 미 달러화의 역할감퇴에 대하여 세계기축통화의 대역을 맡기에 충분한 여건을 갖추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제한을 두는 것은 경제운용에 있어서 일본 특유의 신중한 접근방법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우리나라도 그 동안 낙후된 금융산업을 발전시켜 금융능률을 높이기 위한 금융자유화를 적극 추진하여 왔다. 그러나 우리의 금융개편은 「안으로부터의 혁신」이 아니라 「정부에 의한 제도개혁」이라는 수동적·피동적 자세에서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실질적인 큰 진전이 없음도 부인할 수 없다.
영국의 교훈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는 경제환경에 기동성 있게 대응하지 못하면 치열한 국제경쟁에서 낙오되는 것은 분명하다.
이제 금융자유화나 개방화는 하느냐 하지 않느냐의 당위성 문제라기보다 어떻게 효과적으로 대처하느냐 하는 적응성의 문제로 인식되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 주의하여야 할 점은 대내적인 금융자유화와 대외적인 금융 국제화는 구별해야 하고 우리와 같이 경제규모가 작은 경우에 금융개방을 서두르면 국제 금융시장의 변화에 국내금융이 좌우되어 결국은 국내금융정책의 불안을 초래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금융은 경제의 혈맥과 같은 순환체제이기 때문에 금융개방은 개별상품 시장의 개방과는 달리 국민경제에 미치는 파급효과가 엄청나게 크다. 이론적으로 금융국제화는 우리의 금융시장을 개방하여 외국의 금융기관과 자유로운 경쟁에 의한 금융효율을 높인다는 의미에서 금융자유화에 포함되는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개도국의 입장에서는 금융 개방으로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많은 법이다. 금융국제화는 본래 국내 금융자유화가 실현되고, 또 개방이 되더라도 국내 금융질서에 혼란이 초래되지 않을 만큼 한나라의 국제경쟁력이 제고되어 있음을 전제로 한다. 금융개방을 서두른 아르헨티나 등 남미 제국이 자본 유출입의 자유화로 인한 경제불안으로 종국에는 경제자유화 정책을 포기한 것은 그 좋은 예다.
전환기 경제환경에 적응함에 있어서 우리는 영국이 그 보수성과 수구성 때문에 급변하는 환경에 제때 대응하지 못하고 경제적 대세에 뒤쳐진 우를 범하지 않도록 대내적 금융자유화는 적극 그 실현을 도모해야 한다.
그러나 대외적 금융개방은 일본의 조심성 있는 접근방법에서와 같이 국내경제의 거시적인 안정성을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신중히 추진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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