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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경제·물가품귀 해결겨냥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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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소련은 지난 19일 새로운 경제관계법률을 제정함으로써 60여년 만에 처음 개인기업에 대한 규제를 완화했다.
공산주의체제가 들어선 이래 소련이 부분적이나마 개인기업을 허용했던 것은 1921년 「레닌」이 신경제계획(NEP)을 채택한 이래 이번이 두번째다.
당시 「레닌」은 1차세계대전 및 혁명 후 내란으로 혼란에 빠진 경제를 수습하기 위해 농산물과 일부 소비재·서비스업의 개인경영을 용인하는 경제계획을 실시, 상당한 효과를 본적이 있었다.
그러나 이 정책은 1930년대에 흐지부지되면서 일체의 사기업이 자취를 감추었다. 이후 소련의 모든 생산수단을 국유화한 급진적인 공업화정책에 따라 중공업 부문, 특히 군수산업 부문 등은 많은 발전을 이룩했으나 소비경제부문은 계속 뒷걸음질만 쳐왔다.
60년대 이후 소련지도부가 바뀔때 마다 모자라는 소비재의 공급을 늘리기 위해 이 공업부문의 발전을 꾀해왔으나 공산체제 특유의 근로의욕 저하, 낮은 생산성 등 때문에 번번이 실패해 왔다.
물론 중공업부문에 대한 중점투자도 소비재공업부문의 위축에 큰 몫을 차지했지만 낮은 노동생산성은 소련경제의 고질적인 병폐로 지적돼 왔다.
이 때문에 소련시민들은 국가가 공급해주지 못하는 소모품이나 서비스를 암시장에서 충족시켜 왔다. 가구나 자동차·가전제품을 수리하려 해도 국가가 경영하는 기업에서는 몇 주일, 몇 달 걸려도 제대로 되지 않지만 음성적인 업자나 기술자에게 맡기면 금방 고칠 수 있기 때문에 이런 암시장이 공공연히 성행해 왔다.
필요한 소비물자도 국가경영 상점보다는 오히려 암시장 폭이 풍성한 편이었다.
전임 지도자에 비해 훨씬 현실적으로 문제에 접근하고있는 「고르바초프」체제는 이번 개인기업을 허용하는 법 제정을 통해 이처럼 공공연한 지하경제를 양성화하면서 소비재 부족현상을 부분적으로나마 해결하려 시도하고 있다.
「고르바초프」는 이미 경제개선을 위해 몇 가지 개혁정책을 점진적으로 시도해왔었다. 그중 중요한 것이 완전히 중앙통제 방식이었던 기업경영 결정권을 지방으로 분산시키고 있는 정책이다.
이미 1년 전부터 소련기업의 50%정도에 기업이윤을 재량껏 처리하고 기업의 판단에 따라 투자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임금도 결정할 수 있도록 해왔다. 1987년부터는 이 제도를 모든 기업에 적용할 예정으로 있다.
「고르바초프」의 수석 경제문제 고문인 「아벨·아간베기안」은 『수십만 개의 기업을 중앙에서 통제한다는 것은 이제 불가능하다. 이윤도 남겨야 하고 자금도 자체조달해야 하고 임금인상도 기업자체에서 해결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최근에는 새로운 가격체계도 도입돼 상품의 질에 따라 비싸게 받거나 싸게 팔 수 있게 했다.
대외무역부문도 기존 무역기관에만 독점돼 왔으나 내년부터는 내각의 21개 성과 70개 기업도 독자적으로 정부의 외환 지원없이 거래하도록 돼 있다 .뿐만 아니라 서방과의 합작기업도 곧 허용될 예정으로 있다.1년 전만 해도 발설조차 금기로 돼 왔던 문제다.
이처럼 새로운 경제정책을 시행하면서 소련은 이번 새로 합법적으로 허용한 것과 같은 개인기업을 일부지방에서는 이미 조심스럽게 추진해 왔었다.
발틱해 연안의 라트비아공화국 수도 리가에서는 개인경영의 카페가 문을 열어 정부경영 레스토랑과는 달리 「푸대접받는 일도 없고 속는 일도 없어지는」효과를 얻었다.
새 법률로 규정된 29개 업종에 대한 개인기업 허용은 교조적인 사회주의 경제의 조심스런 수정주의를 뜻하는 것이지 무제한적인 것은 아니다.
▲가족이외에 타인은 고용할 수 없고▲국가기업종사자의개인기업을 위한 직장포기는 허용되지 않으며▲지방관청이 개인기업의 필요여부를 결정, 허가하며▲소득의 상한선은 국가의 통제를 받아야 한다는 것은 공산주의 체계의 틀에서 벗어나지 않겠다는 뜻이다. 이런 개혁정책이 다른 부문에까지 파급돼 성공할 지는 아직 불분명하다. 기업 경영권을 분산시켰다고는 하나 생산 노르마(양)결정은 계속 중앙에서 좌우하기 때문이다. 또 소련경제특유의 낮은 근로의욕, 무책임, 낮은 노동생산성, 변화에 대한 소련시민과 당 기구의 두려움 등이 지금까지 몇 차례 시도돼왔던 경제개혁정책에 장애가 돼 왔던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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