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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이병호 답변 땐 침묵, 뒤늦게 반박…야당의 한밤 ‘봉숭아 학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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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19일 국회 정보위원회의 국가정보원에 대한 국정감사는 송민순 전 외교통상부 장관의 회고록(『빙하는 움직인다』)을 둘러싼 엇갈린 진실의 퍼즐을 맞출 수 있을지 관심을 모은 자리였다.

송민순 회고록 관련 국정원 국감
민주당, 3시간 뒤 기자들에게 문자
“여당 브리핑 사실과 전혀 달라”
박지원 “현장서 따졌어야” 훈수

2007년 11월 정부가 유엔의 북한인권결의안에 기권 결정을 할 때 북한 측이 전달해온 ‘쪽지’가 있는지, 문재인(당시 대통령 비서실장)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역할은 무엇인지 등에 대한 국정원의 ‘기밀 자료’에 눈과 귀가 쏠릴 수밖에 없었다. 결과에 따라 ‘과거’를 향한 소모적인 정쟁을 단축시킬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19일 상황은 거꾸로 흘렀다.

#. 오후 8시10분 국정원 브리핑장

여야 간사가 국감 뒤 함께 진행한 브리핑에서 이완영 새누리당 의원은 “송 전 장관의 회고록이 구체적이고 진실이라는 느낌을 받았다”는 이병호 국정원장의 답변을 소개했다. 또 “김만복 당시 국정원장이 북한에 물어보자고 제안하자 문재인 전 실장이 ‘그렇게 하자’는 취지로 말했느냐”는 질문에 “‘맞다’고 답했다”고 전했다. 이에 김병기 민주당 의원은 “이 원장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맞다고 생각한다’고 했다”고 반박했다. 브리핑 중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들은 내용을 두고 옥신각신했지만 김 의원도 이 원장의 개인 의견 쪽에 무게를 실었지 답변에 ‘맞다’는 대목이 포함된 사실을 부인하진 않았다.

#. 오후 11시25분 민주당의 문자메시지

국감을 마친 후 세 시간가량 지나서 소동이 벌어졌다. 민주당 정보위원들은 공식 입장 자료를 담은 ‘한밤의 문자메시지’를 기자들에게 보냈다. 이들은 “새누리당 이완영 간사의 주장은 사실과 전혀 다르다”며 브리핑 내용 자체가 ‘거짓’이라고 주장했다. 앞서 기자는 김병기 의원과 오후 10시쯤 통화를 했다. 그는 기자에게 “너무 화가 나고 뚜껑이 열려서 국정원 앞에서 민주당 의원들끼리 대책회의 중”이라고 말했다.

이유야 어쨌든 민주당은 자신들도 동석했던 브리핑 내용을 180도 뒤집었다. 민주당은 20일에도 기자회견을 열고 “이 의원이 소설을 썼다”고 거듭 주장했다.

반면 이완영 의원은 20일 본지와의 통화에서 “‘김만복 전 원장이 11월 18일 회의에서 북한의 의견을 묻자고 제안한 게 맞죠’라고 내가 묻자 이 원장은 ‘네, 그렇습니다’라고 답했다. 그때 민주당 의원들은 반박 질문도 없었다”며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 또 “이 원장은 ‘쪽지와 관련된 자료가 있다고 보는 것이 상식일 것’이란 답변도 했다”고 덧붙였다.

이틀째 양측은 이렇게 서로의 유불리에 따른 주장과 반박만 계속했다. 이 와중에 3당인 국민의당은 남의 집 불구경하듯 방관했다. 국감에 참여했던 박지원 국민의당 원내대표는 “(민주당이) 학업에 뜻이 없더라. 부적절했으면 현장에서 따지고 시정을 시켰어야지”라고 훈수만 뒀다.

이 원장의 발언을 가장 정확히 알고 있을 국정원은 모호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국정원 관계자는 “이 원장이 ‘맞다’고 단정적으로 얘기한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그 이상을 밝힐 수는 없다”고 말했다.

여야 3당이 이 원장의 발언을 각각의 입맛에 맞게 요리하면서 9년 전의 진실은커녕 불과 몇 시간 전의 진실도 변질됐다. 여야와 국정원이 국정감사를 ‘봉숭아학당’으로 만들고 말았다.

유성운 기자 pirat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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