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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첩보」 너무 많아 사태 판단 혼란|뒤돌아본 "김일성 피살" 소용돌이-기자 방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떠들썩했던 김일성 사망설이 어처구니없게 막을 내렸다. 해프닝은 끝났지만 북한의 대남 확성기 방송의 저의가 무엇인지, 북한 내부에 권력 투쟁이 있었는지 등의 궁금증은 풀리지 않고 있다.
취재 기자 좌담회를 통해 이번 소용돌이를 돌이켜 챙겨본다.
-김일성이 피살됐다는 소문은 일요일인 지난 16일부터 갑자기 퍼지기 시작해 커다란 충격만 던져주고 사흘간의 어처구니없는 해프닝으로 끝나버렸습니다. 김일성의 생존이 확인된 후 반응들이 허탈·착잡하더군요.
-18일 아침 몽고 공산당 당수 「바트문흐」의 평양 방문이 김일성 생존 여부 확인의 결정적-계기가 될 것이라고 기다리면서도 정부는 김이 나타나지 않을 것으로 믿고 있었습니다. 심지어 이날 상오 10시23분 신화사의 김일성 출현 제1보가 나왔을 때도 신화사의 보도만으로 진위를 판단할 수 있겠느냐며 정부는 생존설을 애써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반응마저 보였습니다.
-김의 생존설이 나오자 독자들로부터 빗발치듯 문의 전화가 쇄도했습니다. 대부분 우리의 정보 처리 능력이 이렇게 약한가라는 항의를 제기했습니다.
-시민들이 사망설을 믿게 된 것은 정부측의 국회 보고가 있었기 때문이지요. 이번 사건을 처리하는데 있어 정부가 좀더 신중했어야 했다는 것이 중론이었고 정부의 책임을 거론하는 시민들도 있었습니다.
-한 마디로 사망설이 뒤집어지자 모두들 어처구니없다는 반응들이었습니다. 정부로서는 신뢰 회복의 부담을 안게 되었지요.
-우리 언론들도 많은 반성을 해야지요. 외국 통신이나 신문의 경우 한국 정부의 발표 내용 인용 외에는 사망설을 뒷받침할만한 사실을 보도한 것이 없었지요. 대부분 한국 정부 발표 내용과 이에 대한 회의적인 반응·징조들을 계속 타전해왔습니다.
-사태가 이렇게 크게 확대된 데는 국민들 사이에 김일성 사망을 바라는 속마음이 퍼져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지난 16일 소문이 퍼지고부터 저녁이면 술집에 모여 축배를 드는 사람들도 많았지요.
-뿐만 아니라 한반도의 상황이 살얼음판 같아서 조그만 변수에도 긴장하는 터에 김의 사망은 너무나 큰 변수가 될 수 있다는 것이 이 사망설이 확대될 수 있었던 원인의 하나입니다. 최근 김일성의 소련방문으로 북한이 친소 노선으로 선회하는 느낌을 주어 한반도 주변 상황에 변화가 있지 않겠느냐는 생각들을 해왔는데 그 정권의 핵인 김의 사망이 가져올 동아시아 정세의 변화를 생각할 때 김일성 사망의 국제 정치적 의미는 매우 큰 것이지요.
-16일 아침 동경 루머가 국내 한 일간지에서 기사화 된 후 무엇보다 전방 북괴군의 대남 확성기를 통해 같은 내용의 방송을 시작한 것이 확대의 가장 큰 계기가 됐습니다. 특히 신뢰를 받고 있는 미 정보 기관까지 특이징후첩정보를 제공해주었다는 소문이 퍼져 사망설은 더 믿을만하다는 방향으로 굳어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외신 보도에는 전혀 긍정적인 반응이 없었습니다. 유엔군사령부는 자기 구역 내에서의 확성기 방송과 조기 게양을 알지 못하고 있을 뿐 아니라 이 같은 내용의 첩보를 한국 측에 제공한바 없다고 외신은 전했습니다. 또 18일 상오 3시33분 UPI보도에 따르면 미 중앙정보국 (CIA) 대변인은 CIA가 정보를 제공했다는 것을 부인했습니다.
-그래도 이 사망설이 신빙성을 주면서 유포된 것은 한반도의 주변 정세, 김일성의 나이, 간간이 떠돌던 건강 악화설 등의 뒷받침도 있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16일 상오 평양 방송에 장송곡이 나왔다는 미 정보 기관의 첩보가 한국 측에 전달된 것은 분명한 사실이라고 합니다. 이에 따라 치안 당국은 대외적으로는 알리지 않은 채 조용히 갑호 비상령을 내렸습니다. 이때까지도 이 정보에 큰 신뢰를 두지 못했으나 17일 하오 1시 이후 휴전선 근방에서 확성기 방송이 계속 나오고 지역도 넓어지는 것을 보고 최근 북한 정보를 재분석하고 반기 게양, 김일성 동상에 불이 안 켜진 것 등을 확인했답니다.
그러나 휴전선 이외 다른 지역에는 이상이 없어 위장 전술일 가능성으로 기울고 있었다합니다.
그렇지만 이날 하오 대남 방송으로부터 『열차 내 피격 사망』 『김정일을 지도자로 모시자』는 등 후속 내용들이 입수됨에 따라 믿을 수밖에 없다는 분위기로 흐른 것 같습니다.
-궁금한 것은 북한이 무엇 때문에 신격화된 김일성의 사망설까지 동원해 대남 방송을 했겠느냐는 점입니다.
그 점에 대해 많은 얘기들이 나오고 있으나 북한이 남쪽의 오판을 유도해 정부의 신뢰도를 떨어뜨리고 민심을 불안하게 하려는 의도가 아닌가하는 북의 심리 전설을 이야기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심리 전설에 대한 이견도 강합니다. 이 사건의 출발은 대남 확성기 방송이 있기 전 국내 일간지가 먼저 보도했으며 모스크바·북경·뉴델리 등에 있는 북한 대사관은 사망설을 계속 부인해왔습니다. 특히 일본의 조총련은 북한 당국으로부터 확인했다고까지 밝혔습니다. 만약 심리전으로 이용할 의도였다면 그들이 이렇게 확인해 줬을 리가 없다는 거죠.
김일성의 존재를 심리전의 도구로 사용할 수 있는 체제냐, 또 구태여 김을 대남 선전 도구로 쓰지 않으면 안 될 이유가 있느냐는 점에서 퍽 회의적입니다. 차라리 그것보다는 북한내부에 뭔가 변고가 있음이 틀림없고 그 변고 때문에 확성기 방송 등이 나온게 아니냐는 추측들입니다.
-북한 내부의 변고로 생각하기에도 많은 의문점이 있습니다. 만약 변고가 있었다면 군사행동의 흔적이 나타나지 않았을리 없죠. 그런데 세계의 정보 기관들이 한결 같이 그러한 군사적 충돌이나 이동에 대해 침묵하고 있다는 것이 이상합니다. 반란이 있었지만 김이 건재했을 경우를 가상하더라도 건재 사실을 알리는 것이 사태 장악에 유리하다는 점을 생각할 때 회의적입니다.
오히려 갑이라는 지도자에게 변고가 생겼다는 오보가 있을 경우 직접 그 보도를 부인하기보다 갑이 어느 지방을 순시했다는 식으로 그것을 뒤집어 온 공산 국가의 보도 관행에 비추어 이번 사태를 해석해야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죠.
-사실 정부 일부에서도 의도적 조작이라는데는 회의적이며 뭔가 전선에 이상이 있는게 아니냐, 사태 장악을 하는 과정에서 전술적으로 이용하려는 것은 틀림없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또 한 가지 가능성은 일본측이 폐쇄적인 북한의 정보를 확인하기 위해 가끔 언론에 정보를 흘려 그 반응을 본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일본 언론들도 경계하는 그 동경 정보를 우리 언론이 쉽게 받아들인게 아닌가 하는 반성도 있을 수 있습니다.
-어쨌든 휴전선 일대에 반기가 게양되고 방송이 나온 건 사실로 남습니다. 또 미국이 한국 측에 약간의 정보를 제공한 것도 사실인 것 같습니다. 미국이 이것을 부인하는 것은 비공개로 해달라는 요청을 한국 정부가 무시했기 때문이 아니냐는 설명도 가능합니다. 다만 양국이 같은 첩보를 두고 해석을 달리했거나 신중성을 발휘한 정도의 차이는 있다고 봐야죠.
-이번 일에서 또 한번 절실하게 느끼는 것은 북에 관한 정보만은 당사자인 우리 정부가 가장 정통하게 수집·분석, 판단해주어야 하겠다는 점입니다.
-18일 아침이면 판정이 날것을 기다리지 않고 「사망」쪽으로 기울어진 첩보를 발표한 것은 경솔했다는 비난을 면할 길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 사건이 일부의 해석대로 김일성까지 선전 도구로 쓸 정도로 북한이 음흉하다는 인식에 도움이 된다면 다소나마 전화위복이 될 수도 있겠지요.
-어쨌든 17일 밤 축배를 들었던 국민들이 몹시 아쉬워하고 있습니다.

<참석자>
한남규 정치부 차장
문병호 사회부 기자
정봉환 외신부 기자
이규진 외신부 기자
고도원 정치부 기자
김진국 외신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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