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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인사이드] 송민순 회고록 재구성, 2007년 11월 청와대에선 무슨 일이…회고록 일부 오류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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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민순 전 외교통상부 장관의 회고록 『빙하는 움직인다』로 정치권이 분주하다. 송 전 장관은 “움직인다”고 썼지만 그 표현을 뛰어넘어 문자 그대로 요동치고 있다.

송 전 장관은 2007년 유엔 북한인권결의안에 대한 정부 방침을 논의하는 회의에서 “‘(북한의 의견을) 남북경로로 확인해보자’고 결론내렸다”고 회고록에 적었다. 이 과정에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개입했다고 주장했다. 문 전 대표는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일하고 있었다.

새누리당은 최근 ‘문재인 대북결재 진상규명위원회’를 신설했다. 회고록이 여야 정쟁으로 옮겨 붙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정치권에선 송 전 장관의 회고록이 내년으로 예정된 대통령 선거의 신호탄이 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송 전 장관은 17일 “진실은 바뀌지 않는다”며 “나는 정치적인 의도로 쓴 게 아니다. 책 전체를 보면 알 것”이라고 말했지만 회고록을 둘러싼 논란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우선 회고록에 등장하는 당사자들의 주장이 엇갈린다.

송 전 장관이 외교통상부 장관으로 재임한 기간은 2006년 12월부터 2008년 2월까지다. 논란이 되고 있는 북한인권결의안이 청와대에서 논의된 건 2007년 11월 15~20일이다. 북한인권결의안이 논의됐던 2007년 청와대 상황을 날짜별로 복기했다. 송 전 장관의 회고록을 기반으로 대통령기록관ㆍ노무현재단ㆍUNㆍASEAN 홈페이지, 언론보도 등을 참고했다. 이 과정에서 회고록 중 일부에서 오류가 발견되기도 했다.
(※ 기사는 2007년 당시 직책으로 작성됐다.)

2007년 11월. 한반도는 한 달 전 평양에서 열린 남북 정상회담(10월 2~4일)으로 촉발된 화해 무드가 가득했다. 11월 14일 오후 12시 서울 광진구 워커힐 호텔에 김영일 북한 내각총리가 도착했다. 정상회담에 따른 1차 남북총리회담을 열기 위해서였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오시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16년 전 고위급회담이 열렸던 곳이라 오늘 총리회담이 여기서 열리는 것도 각별한 의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고 김영일 북한 내각총리에게 인사를 건냈다.

김 내각총리는 “이렇게 혈육의 정으로 열렬히 환영해 주셔서 감사합니다”고 답했다. 16일까지 사흘간 이어진 남북총리회담에선 개성공단 ‘3통 문제(통행, 통신, 통관)’가 중요 이슈로 다뤄졌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본지와의 전화통화에서 “개성공단 등 실무적인 논의가 주로 얘기됐다”며 “인권결의안 문제는 다뤄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2007년 11월 15일(목요일)
천호선 청와대 대변인은 오후 2시 30분 진행된 정례 브리핑을 통해 기자들과의 질의응답에서 북한 인권결의안에 대한 논의 과정을 밝혔다. 다음은 천 대변인과 연합뉴스 기자와의 질의응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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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호선 전 청와대 대변인.

-성기홍(연합뉴스) 기자 “북한 인권결의안이 내주 유엔 총회에서 표결에 부쳐질 것으로 지금 일정이 잡혀 있는데, 현재 이 인권결의안에 대한 정부입장이 찬성, 반대, 기권 어느 쪽으로 결정이 난 바가 있는지….”
-천 대변인 “제가 얼마 전에 확인했을 때는 초안검토단계에서 아직 입장이 정리된 것이 없다고 들었다. 그런데 지금 이 시점에서 어떠한지는 역시 제가 확인을 아직 못해 보고 왔다. 그것은 확인을 해서 어떤 입장이 결정이 났으면 알려드리도록 하겠다.”
-성기홍(연합뉴스) 기자 “지난해 북한인권 결의안에 대한 정부 입장이 그 동안 쭉 기권 입장을 견지하다가 찬성표를 던진 것으로 알고 있는데, 올해 같은 경우 다시 입장을 논의해야 될 혹시 변경사유라도 있는지, 그게 안보정책회의라든지 그런 테이블에서 논의해서 찬성ㆍ기권ㆍ반대 입장을 결정해야 되는 사안인가?”
-천 대변인 “그런 부분까지 제가 한 번 확인을 해 보겠다.”

남북총리회담과 별개로 이날 청와대에선 북한인권결의안을 논의하는 안보정책조정회의가 열렸다. 회의 시작 시간은 확인되지 않았지만 회의 개최 여부를 부정하는 이들은 없다.

문재인 비서실장, 이재정 통일부 장관, 김만복 국정원장, 백종천 안보실장, 김장수 국방부 장관 등이 참석했다. 송 장관은 회고록에서 “우리가 북한의 인권 상태를 중시한다는 입장을 취해야 국제사회도 우리의 대북정책에 신뢰를 보이고 지원할 것이라고 주장했다”며 “그런데 이재정 통일부장관, 김만복 국정원장, 백종천 외교안보실장의 입장은 달랐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꼭 그렇다면 찬성과 기권 입장을 병렬해서 지난해처럼 대통령의 결심을 받자고 했다. 그랬더니 문재인 비서실장이 왜 대통령에게 그런 부담을 주느냐면서 다수의 의견대로 기권으로 합의해서 건의하자는 것이었다”며 “내가 동의할 수 없다면서 버티자 회의는 파행되었다. 이러한 상황은 대통령에게 보고되었다”고 적었다.

이날 열린 회의에 대한 다른 참석자들의 평가는 회고록과는 정반대다. 이재정 장관은 언론 인터뷰에서 “우리 정부의 입장은 이미 2007년 11월 15일 (백종천 청와대 외교안보실장 주재로) 열린 안보정책조정회의에서 (기권으로) 결정됐고 이튿날인 16일 논의 내용을 노무현 대통령에게 보고해 ‘기권’으로 최종 결정했다”고 밝혔다.

이어 “송 장관은 15일 회의가 파행이었다고 하는데 이 회의는 파행되는 회의가 아니었다”며 “서로 의견이 다를 뿐이었다”고 말했다. 김경수 연설기획비서관은 “15일 회의에서 문재인 대표가 인권결의안에 찬성하는 입장을 폈다가 다수 의견이 기권으로 흐르자 기권 입장을 수용했다”고 말했다.

2007년 11월 16일(금요일)
노무현 대통령은 김영일 북한 내각총리를 청와대로 초청해 환송 오찬을 열었다. 이날은 남북총리회담의 마지막날이었다. 노 대통령은 오찬에서 “여러분들도 큰 선물을 주고 가시는 것이고 아울러 또 큰 선물보따리를 가지고 가시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 내각총리는 “우리들의 합의는 의심할 바 없이 온 겨레에게 커다란 기쁨을 주게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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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정 전 통일부 장관.

오찬이 끝나고 노 대통령 주재로 송 장관, 통일부 장관, 국정원장, 비서실장, 안보실장 등 다섯 명이 참석하는 토론이 열렸다. 송 장관은 회고록에 이렇게 적었다.

“대통령은 다 듣고 나서는 ‘방금 북한 총리와 송별 오찬을 하고 올라왔는데 바로 북한인권결의안에 찬성하자고 하니 그거 참 그렇네’ 하면서 나와 비서실장을 보면서 우리 입장을 잘 정리해보라는 말을 남기고 자리를 떴다. 우리는 뒤에 남아서 더 격론했지만 결론을 낼 수가 없었다.”

이날 회의 성격에 대한 평가 역시 갈린다. 송 장관은 회의 결렬을 선언한 반면 다른 참석자들은 결의안에 대한 정부 입장 정리가 15, 16일 이틀에 걸쳐 이미 끝났다는 것이다.

김경수 연설기획비서관은 18일 라디오 인터뷰에서 “11월 16일 대통령 주재 회의에서 인권결의안을 기권하자는 것은 결정이 되었던 사안이고 그 이후에는 주무부처인 외교부장관이 유엔에 가서 표결을 해야 하는데 본인이 끝까지 찬성해야 한다고 주장을 굽히지 않으니까 거기에 대해서 그걸 어떻게든 외교부 장관을 설득하는 그런 과정이었다“고 말했다.

송 장관은 외교부 집무실로 돌아와 노 대통령에게 A4 용지 4장에 달하는 서한을 보냈다. 회고록에 공개된 서한 일부는 이렇다. “기권할 경우 앞으로 남은 기간 비핵화를 진전시키고 평화체제 협상을 출범시키는 데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뭔지 막막합니다.”

2007년 11월 18일(일요일)
“11월 18일 일요일 저녁에 연락이 왔다. 장관들이 다시 모이자는 것이었다. 대통령은 나의 편지를 보고 ‘그동안 외교부가 여러 나라를 설득해서 결의안 문안까지 완화시켰는데 지금 와서 기권하자면 민망할 것이다. 그런데 찬성을 해서 남북관계에 영향을 줄 위험도 생각해야 한다. 엊그제 북한 총리에게 이 문제를 가볍게 언급했더니 ’일 없다‘고 지나가듯이 이야기하던데 좀 더 챙겨볼 걸 그랬다’라고 했다는 것이다.” (송 장관 회고록 중)

송 장관은 “청와대 서별관에 도착하니 다른 네 사람은 미리 와 있었다. 이구동성으로 왜 이미 결정된 사항을 자꾸 문제 삼느냐고 불만을 터뜨렸다. 내가 장관 자리에 있는 한 기권할 수 없다고 했다”고 회고록에 적었다. 회고록 내용을 있는 그대로 해석하면 송 장관은 찬성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고 그를 제외한 이들은 이미 기권으로 결정된 사안을 문제 삼는 송 장관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으로 읽힌다.

송 장관은 이날 회의를 자신의 서한에 대한 대통령의 응답으로 해석했다. 하지만 다른 참석자들의 입장은 이와 다르다. 이재정 장관은 언론 인터뷰에서 “결정 내용을 번복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결의안에 찬성해야 한다’는 입장인 송 장관이 노 대통령에게 간곡히 재고를 주장하니 그를 다독이기 위해 모인 자리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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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가운데)와 조원진 최고위원(왼쪽)이 문재인(오른쪽)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관련된 ‘송민순 회고록’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중앙포토]

고록에 따르면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문재인 비서실장의 발언은 이날 등장한다. 송 장관은 이렇게 적고 있다.

“나의 (찬성) 주장이 계속되자 국정원장이 그러면 남북 채널을 통해서 북한의 의견을 직접 확인해보자고 제안했다. 다른 세 사람도 그 방법에 찬동했다. 나는 ‘그런 걸 대놓고 물어보면 어떡하나. 나올 대답은 뻔한데. 좀 멀리 보고 찬성하자’고 주장했다. 한참 논란이 오고 간 후 문재인 실장이, 일단 남북 경로로 확인해보자고 결론을 내렸다. 더이상 논쟁할 수가 없었다.”

다른 참석자들의 평가는 송 장관의 것과 배치된다. 김경수 비서관은 최근 인터뷰에서 “안보관계 장관들이 모이는 회의는 비서실장이 아니라 안보실장이 주재한다”며 “2007년 11월 18일 회의는 안보실장이 주재한 것인데 비서실장이 주재해서 결론을 내렸다고 (회고록에서) 하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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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만복 전 국정원장.

김만복 국정원장도 언론 인터뷰에서 “아니, 내가 그런 빤한 걸 물어보는 그런 바보가 어디 있어요. 나도 기권하자는 쪽으로 의견을 제시를 했죠. 이견은 있었죠”라고 주장했다. 이재정 장관은 17일 라디오 인터뷰에서 “‘2007년 11월 18일 청와대 회의에서 북한의 의견을 들어보자고 했다’는 건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된다”며 “이미 16일 대통령 관저에서 송 전 장관과 제가 격하게 토론을 해 기권하기로 결론이 났다”고 회고록을 부인했다. 그는 이어 “그날 토론 끝에 노 전 대통령이 ‘이번 상황에서는 통일부 장관의 의견을 따르는 게 좋겠다. 그렇게 결론냅시다’라고 말했다”며 당시 상황을 전했다.

2007년 11월 19일(월요일)
노무현 대통령은 아세안(ASEAN)+3 정상회의 참석차 이날 오전 싱가포르로 출국했다. 송 장관과 백종천 안보실장이 동행했다. 문재인 비서실장은 서울에 남았다. 일반적으로 비서실장과 민정수석은 대통령의 해외순방을 수행하지 않는다.

2007년 11월 20일(화요일)
노무현 대통령은 아세안+3 정상회의 일정 중 이날 가장 바쁜 하루를 보냈다. 오전 한중일 3개국 정상회담을 시작으로 오후에는 원자바오 중국 총리, 후쿠다 야스오 일본 총리와 잇따라 만나 정상회담을 열였다. 정상회담은 하얏트 호텔과 샹그릴라 호텔 등에서 열렸다.

이어 오후 7시 시작돼 오후 9시까지 계속된 갈라 만찬에 참석했다.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선 북한인권결의안이 유엔 제3위원회 통과를 앞두고 있었다. 제3위원회는 인권 등을 사회 분야를 관할하는 위원회다.

제3위원회는 뉴욕 현지시간으로 11월 20일 오전 10시 회의가 시작됐다. 서울과 싱가포로와의 시차를 고려하면 제3위원회 개회 시각은 싱가포르 현지 시간으로 11월 20일 오후 10시다. 한국 시간으로 따지면 11월 20일 오후 11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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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유엔 제3위원회 북한인권결의안 표결 기록지. 한국(REP OF KOREA)은 기권(ABSTAIN)했다.

한국이 기권한 북한 인권결의안이 제3위원회에서 통과된 시각은 뉴욕 현지시간으로 20일 오후 12시 50분이다. UN 홈페이지에선 당시 각국의 입장과 표결 시간이 담긴 기록지를 확인할 수 있다. 이를 싱가포르 현지시간으로 환산하면 11월 21일 자정에서 50분이 지난 시각이고 한국 시간으로 따지면 21일 오전 1시 50분이다.

송 장관은 회고록에서 “11월 20일 저녁 대통령의 숙소에서 연락이 왔다. 방으로 올라가보니 대통령 앞에 백종천 안보실장이 쪽지를 들고 있었다. 그날 오후 북측으로부터 받은 반응이라면서 나에게 읽어보라고 건네주는 것이었다. 나는 백 실장을 바라보면서 ‘이렇게 나올 줄 모르고 물어봤느냐’라고 했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자 백 실장은 자리에서 떴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이날 청와대 대변인은 ‘노 대통령이 외교장관과 안보실장으로부터 북한인권결의안에 대해 보고를 받고 기권 방침을 결정했다’고 언론에 설명했다. 다음 날 유엔에서 한국은 북한인권결의안 투표에 기권했다”며 “노 대통령은 ‘그런데 이렇게 물어까지 봤으니 그냥 기권으로 갑시다. 묻지는 말았어야 했는데... 송 장관 그렇다고 사표 낼 생각은 하지 마세요”라고 썼다.

송 장관은 회고록에서 20일 저녁에 불렀다고 썼을 뿐 정확한 시간을 표기하진 않았다. “(노 대통령이) 침실로 들어갔다”는 회고록에서 유추하자면 만찬 등 공식 일정을 모두 끝낸 다음 송 장관을 숙소로 불렀을 확률이 높다. 당시 일정을 고려하면 노 대통령이 갈라 만찬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올 수 있었던 시간은 싱가포르 시간으로 오후 9시 무렵으로 추정된다.

싱가포르 시간으로 오후 10시 유엔 제3위원회 회의가 개의했으니 정부로선 1시간 남짓한 여유가 남아 있던 것이다. 주 유엔 대한민국 대표부 외교관이 총회장에 들어가 투표를 하기 전까지 정부의 입장이 전달되야만 하기 때문에 그리 넉넉한 시간은 아니었다. 송 장관의 주장이 맞다면 북한인권결의안에 대한 투표가 예정된 몇 시간 전까지도 정부 입장이 유엔 대한민국 대표부에 전달되지 못한 것이 된다. 당시 주 유엔 대한민국 대표부 대사는 김현종 대사였고 송 장관의 설득 작업은 끝내 실패했다.

◇회고록에선 몇 가지 오류도 보인다. 송 장관은 “이날(11월 20일) 청와대 대변인이 ‘노 대통령이 외교장관과 안보실장으로부터 북한인권결의안에 대해 보고를 받고 기권 방침을 결정했다’고 언론에 설명했다”적었지만 천호선 청와대 대변인이 언론을 상대로 기권 방침을 설명한 건 싱가포르 시간으로 11월 21일 아침이다. 천 대변인을 인용해 관련 소식을 가장 먼저 전한 연합뉴스 기사는 한국시간으로 11월 21일 오전 10시 43분 송고됐다. “11월 20일에는 유엔의 표결이 예정되어 있었다(449페이지)”는 문장도 시차를 혼동해 오기한 결과다. 회고록은 한국시간을 기준으로 쓰여져 있는데 표결이 이뤄진 시각은 한국과 싱가포르 시간으로 21일 자정이 지나서였다.

강기헌 기자 emck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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