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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창고] 고려 귀족의 옷감 ‘오색금’ 재현 … 업사이클링 한복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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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면

전시
저고리, 그리고 소재를 이야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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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고리 고름, 치마 끈 등 한복의 ?여밈의 미학?을 현대의상에 접목한 정미선 디자이너의 옷들. [사진 아름지기]

고구려·조선 등 각 시대 대표하는 9벌 전시
문헌·그림·유물만으로 옛 직물 재현
네오플렌·니트·저지 등 현대 소재도 활용
양복재킷, 스포츠 의류 해체·조합한 기법도

전통문화 보존과 현대적 계승을 추구해온 재단법인 아름지기(이사장 신연균)가 11월 4일까지 서울 통의동 사옥과 통인동 ‘이상의 집’에서 ‘저고리, 그리고 소재를 이야기하다’ 전을 연다. 아름지기는 해마다 의식주 각 분야의 전통 장인, 현대 작가들과 함께한 연구과정을 발표하는 기획전시를 선보여 왔다. 신연균 이사장은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한복에 대한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시점에 우리 옷의 원형을 제대로 소개하고 고유의 미감을 다시 한 번 환기시키고자 한다”며 “저고리는 복식의 기본인 동시에 자연스러운 풍성함과 절제된 곡선이 시대별로 아름답게 변화해 왔기에 이번 주제로 삼았다”고 말했다.

전시는 ‘현대 기법으로 재탄생한 전통 복식’ ‘전통 복식을 대해석한 현대디자인’ ‘안 입는 옷을 재활용한 업사이클링 한복’ 셋으로 크게 나뉜다. 각 파트 모두 ‘소재’에 주목했다. 문헌·유물로만 존재하는 전통 복식 소재를 현대적 기법으로 재현하거나 네오플렌·니트·저지 등 현대인에게 익숙한 소재를 활용했다.

현대 기법으로 재탄생한 전통 복식
전통 한복 파트는 의식주 전통문화를 연구하는 온지음의 옷공방이 맡았다. 고구려 시대 1벌, 통일신라시대 1벌, 고려시대 3벌, 조선시대 4벌. 각 시대를 대표하는 가장 아름다운 치마저고리 9벌을 전시한다.

전통 복식 재현을 총괄한 조효숙 가천대 부총장은 “문헌·그림 그리고 소수 유물만으로 옛 직물의 원형을 재현하는 데는 시간이 오래 걸리고 생산가가 비싸기 때문에 현대화에 어려움이 많다”며 “이번 전시에선 당시 옷감의 미감을 충분히 살리되 현대화할 수 있는 소재개발에 노력했다”고 말했다. 덕분에 삼국시대부터 고려시대까지 귀족들이 주로 사용했던 귀한 옷감 오색금, 라, 인화문사 등을 현대적 기법으로 만들어낼 수 있었다.

온지음 옷공방의 김정아 선임연구원은 “아미타불에서 찾아낸 유물인 고려시대 라 직물은 드레이프성이 좋고 가로방향으로 신축성이 생긴다는 것을 알고 럭키섬유와 협업해 현대 니트 기법으로 비슷한 소재를 개발했다”고 설명했다.

조선시대 저고리는 시대별로 달라진 길이와 형태, 이에 따른 치마 실루엣 변화를 살펴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조선 중기부터 저고리 길이는 점점 짧아지는데 이는 여성의 사회적 지위와 연관있다. 고려시대엔 여성의 사회활동이 많았다. 때문에 저고리 길이가 길어서 겉옷(외투) 같은 역할을 했다. 김 연구원은 “유교사회인 조선시대 여인들은 집안에 갇혀 있었고, 남성 눈에 예쁘고 섹시하게 비치는 기생 옷이 유행하면서 양반가에서도 점차 활동이 불편할 만큼 저고리 길이가 짧아졌다”며 “당시 기록에 보면 저고리가 워낙 짧고 통이 좁아서 벗을 때는 아예 뜯어서 벗은 다음 다시 수선해 입었다는 일화도 있다”고 했다.

조선 의상 중엔 우리에게 친숙한 신윤복의 ‘미인도’ 의상도 있다. 조선의 미인을 꼽으라면 단연 황진이다. 한데 황진이는 16세기 인물이다. 저고리가 길고, 대신 치마는 ‘전장후단’ 원칙에 따라 엉덩이 부분에 주름을 많이 잡은 스타일을 입었을 거란 얘기다. 한데 드라마나 영화 속 황진이는 늘 17~18세기 ‘미인도’ 의상을 입는다. 창작이 시대 고증을 무시할 수 있는 건 어느 선까지일까 궁금한 지점이다.

디자인 재해석하거나 신소재 입힌 한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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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기 여인인 황진이가 입었을 법한 조선시대 복식. 긴 저고리와 엉덩이 부분 치맛주름이 특징이다.

한복 재해석엔 팟츠팟츠(PartspARTs)의 임선옥, 노케제이(NOHKE J)의 정미선 디자이너가 참여했다. 아름답지만 활동엔 불편한 한복을 위한 답을 제시하려고 평소 현대의상을 만들 때 주로 쓰던 네오플렌·니트·저지 소재를 그대로 사용했다.

임선옥은 유연하고 둥근 항아리 같은 치마 실루엣을 살린 옷과 저고리 동정의 날렵한 선을 살린 액세서리를 선보였다. 또 겉에 입는 배자를 안과 밖, 어디에 입어도 좋을 아이템으로 변화시켰다. 정미선은 저고리 고름을 비롯해 전통 한복이 갖고 있던 ‘여밈’의 미학을 주제로 가슴과 소매, 어깨가 두드러지는 디자인을 선보였다.

코오롱인더스트리FnC의 업사이클링 브랜드 래코드(RE:CODE)가 담당한 업사이클링 한복은 옷장 속 안 입는 한복과 폐기처분할 재고의상을 활용했다.

래코드 팀은 우선 ‘왜 요즘은 한복을 입지 않을까’라는 질문을 던졌다. 세탁하기 어려운 실크 소재, 활동에 제약을 주는 지나치게 넓은 소매와 짧은 상의, 풍성하고 긴 치마, 소화하기 어려운 화려한 컬러감에서 원인을 찾아냈다고 한다.

현대의 양복재킷, 셔츠, 스포츠 의류 등을 해체해서 전통 한복의 여유로운 소매 실루엣, 부드러운 곡선, 공간감이 느껴지는 하의 등을 디자인한 래코드의 의상은 ‘이상의 집’에서 전시된다.

서정민 기자 meantr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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