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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 낙태수술 의사 처벌 강화 없던 일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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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정부가 불법 낙태수술(인공 임신중절수술)을 시행한 의사에 대해 최대 12개월 자격정지를 가하는 처벌 계획을 백지화했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낙태 의사 처벌 강화는 아예 없던 일로 하기로 결정됐다. 하지만 낙태 문제는 우리 사회가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이기 때문에 추후 사회적 논의 기구를 만들어 계속 논의할 계획”이라고 17일 밝혔다.

여성단체·의료계 등서 강력 반발
복지부, 최대 1년 자격정지 백지화

복지부는 지난달 23일 의료관계 행정처분규칙 개정안을 입법 예고하며 불법 낙태수술 집도를 ‘비도덕적 진료행위’로 명시했다. 현행 모자보건법상 낙태는 ▶유전적 정신장애·신체질환 ▶전염성 질환 ▶강간·준강간 ▶근친상간 ▶산모의 건강이 심각하게 위험한 경우 등 다섯 가지만 예외적으로 허용될 뿐 나머지는 불법이다. 이번 개정안에 따라 불법 낙태 사실이 적발되면 통상 1개월까지였던 자격정지 조치 기간이 최대 12개월로 늘어난 것이다.

복지부의 개정안 입법예고는 한동안 잠잠했던 낙태 논의에 불을 붙였다. 대한산부인과의사회는 “낙태 금지가 사문화된 현실을 전혀 반영하지 않고 의사들만 희생양으로 삼았다”고 강하게 반발했다. 의사 처벌 논란은 낙태 합법화 논쟁으로 발전했다. 한국여성의전화 등 여성 단체들은 자기결정권 존중을 내세워 낙태 관련법 개정을 요구했다. 15일 서울 보신각 앞에선 400여 명이 참가한 낙태죄 폐지 요구 집회도 열렸다.

여론이 악화되자 복지부는 뒤늦게 진화에 나섰다. 정진엽 장관은 지난 14일 열린 종합국감에서 “낙태가 필요한 부분에 퇴로를 만들어 놓고 규제를 해야 한다고 판단해 (입법예고안의) 재검토를 지시했다”고 말했다. 문제가 된 규정의 완화·삭제 등을 놓고 내부 논의가 이뤄졌고, 입법예고 기간이 남았지만 결국 규정을 없애는 쪽으로 정리됐다.

이번 사례를 두고 복지부가 민감한 낙태 이슈를 안일하게 다뤄 일이 커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회용 주사기 재사용의 처벌 수위를 높이는 과정에서 별 고민 없이 불법 낙태도 ‘비도덕적 진료행위’에 추가한 것이다. 김동석 대한산부인과의사회장은 “복지부가 입법예고 전에 산부인과의사회는 물론 대한의사협회와도 논의를 전혀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복지부 관계자도 “관련 단체와 상의 없이 낙태 내용을 집어넣어 문제가 생긴 측면이 있다”고 인정했다.

다만 복지부는 의료계 등이 주장하는 낙태 허용 대상의 확대엔 부정적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 청소년 낙태에 따른 부작용 등을 고려해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정종훈 기자 sakeh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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