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착 정국 타개에 큰 변수|정계에 충격던진 김대중씨 불출마 선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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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김대중씨의 돌연한 대통령 후보 불출마 선언은 정계에 큰 충격을 주면서 개헌 정국에 어떤 변수로 작용할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비록 지금 당장 대통령 선거가 있는 것도 아니고 후보 문제를 거론할 여건이나 시점은 아니지만 그의 정치적 비중과 영향력 등을 생각할 때 이번 선언은 그 자체로도 의미를 갖는 것이지만 무엇보다 교착상태에 빠진 개헌 정국에 어떤 변화를 초래할 기폭제가 될 것이 거의 틀림없다는 점에서 중요성을 갖는다 하겠다.
그가 『민주화 투쟁은 계속하겠다』고 밝히고 있고 여권에선 그의 불출마 선언의 의미를 묵살하고 있어 정국추이에 당장 어떤 가시적 변화가 올는지는 예측하기 힘든 상태이긴 하다.
그러나 두 김씨의 「야심」이 여권의 주공격 대상인 동시에 합의개헌의 장애 요소의 하나로 꼽히고 있던 참이어서 『사심 없음』을 상당히 구체적인 형태로 제시한 이번 결단은 야당의 투쟁 의도와 목표를 보다 선명히 하고 여야 합의를 위한 분위기 조성의 효과는 발휘할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또 「협력」을 강조할수록 「경쟁」관계를 더욱 생각게 되는 김영삼씨와의 숙명적 라이벌 관계도 이번 선언을 통해 외견상 일단 크게 완화될 것으로 볼 수 있다.
개인적으로도 국민적 지지도에 나름대로 자신감을 갖고 있는 현실 정치인이 스스로 대권에의 꿈을 버렸다는 점에서 『동기와 이유야 어떻든 용단』이란 찬사도 나오고있다.
지난해 2·12 총선 무렵 귀국한 이래 신민당을 중심으로 꾸준히 자신의 세력 기반을 확충해 온 과정 등으로 미뤄볼 때 대권을 향한 그의 의지는 거의 의심할 나위가 없었다. 따라서 그의 이번 결정은 엄청난 내부 갈등과 고심이 뒤따랐을 것임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이러한 결정을 하게된 배경으로는 우선 무엇보다 김수환 추기경의 로마 발언과 최근 건국대 사태를 전후해 형성되고 있는 정국의 한냉성 기류가 가장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여진다. 그리고 교착 정국의 돌파구를 열어야 할 필요성, 신민당내의 당풍 쇄신 움직임등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미국측 의사와 관련지어 그의 결심을 해석하려는 추측도 있으나 확인되지는 않고 있다. 김씨는 측근들과 최종 결론을 내리기 직전인 4일 낮 방한중인 「윌리엄·클라크」미 국무성 부차관보와 1시간30분여 요담한 것은 사실이다. 측근들은 실세 대화를 제의한 지난 9월 중순에 그가 이미 결심을 했다고 말한다.
김 추기경의 발언은 범 국민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키면서 두 김씨에겐 큰 충격을 준 것으로 보이며 유형무형의 압력이 되어 어떤 형태로든 그에 대한 「회답」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된 것 같다.
김 추기경의 발언이후 있은 국민적 여론의 무게를 감당하기가 수월치 않았으라고 판단되는 것이다.
건국대 사태를 유성환 의원 구속 이후 있은 일련의 강경 조치, 잇단 위기설 등과 연결지어 볼 때 김씨로선 자신을 향해 서서히 죄어 들어오는 압력을 본능적으로 감지했을 것이라고 주의에서는 말하고 있다.
김씨 자신도 『건대 사태 등 일련의 과정은 어떤 조짐이며 시작』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여권의 구도가 명백하고 자신에 대한 「금기적 시각」이 가셔질 전망이 극히 희박한 상태라는 판단을 굳힌 듯 하다.
여기서 현재의 경색 정국 추이와 종합하여 어차피 현실적인 벽이 가로놓여있는 대권에의 꿈을 버리지 않음으로써 올 수도 있는 만약의 사태에 대한 책임만은 면해야되겠다는 계산이 선 듯하다.
즉, 80년대의 전철을 되풀이 않겠다는 의사다.
김씨의 결심을 보는 당 안팎의 시각은 여러 갈래다.
그가 불출마의 조건으로 내세운 『직선제 관철』을 한쪽에선 순수한 민주화 의지의 표명이라고 보는 반면 여권 일부에선 『직선제 관철이란 조건을 내건 것은 여론에 밀린 나머지궁여지책으로 나온 정치적 전략에 불과하다』는 반응이며『직선제 관철 조건은 재기를 겨냥한 카드』라고 까지 의심하고 있다.
당내에선 『그가 영향력을 계속 행사하는 한 별 의미는 없다』고 말하는 이도 있다.
여권에선 그가 내세운 『직선제를 수락하면』이란 조건이 사실상 실현 불가능한 조건이므로 그렇다면「불출마」란 것도 역시 공소한 내용일수 밖에 없지 않느냐고 분석한다.
그리고 설사 불출마가 현재의 심경이라 하더라도 상황이 달라지고 세월이 지나면 어떤 형태로든 심의할 가능성도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도 표시하고 있다. 심지어 그의 이번 선언이 현재의 정치적 「한기」를 완화하고 나아가 사면·복권을 겨냥한 일종의 분위기 조성에 뜻이 있을지 모른다는 얘기를 하는 사람도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야권의 상당수 인사들은 그가 비록 『직선제를 수락하면』이란 조건을 내걸었지만 불출마를 이처럼 선언한 이상 번의해 출마를 한다는 일은 생각하기 어렵다고 보고있다. 이번 선언이 결국 『사심 없음』을 보여준 것이라면 여권이 직선제를 수락하지 않는다고 해서, 다시 야심을 표명할 수야 있겠느냐는 분석이다.
그의 진의을 두고 이처럼 설왕설래가 있지만 그 파장은 눈에 보이게, 안보이게 당 안팎에 번져나갈 것으로 보인다.
우선 상도동계를 포함한 당내 많은 사람들은 김영삼씨도 서독에서 귀국하면 이와 비슷한 선언을 하게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는 『마음을 비웠다』고 늘 말해온 만큼 좀 더 구체적인 「마음을 비운」모습을 주문 받는 상황이라고 보는 것이다. 김영삼씨 자신은 서독에서 이번 소식을 듣고도 자신의 거취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었다.
또 한가지 예상되는 것은 이민우 총재의 입장이 상대적으로 강화될 것으로 전망된다는 점이다.
그렇더라도 이 총재가 과연 어렵고 중요한 막바지 개헌 정국을 헤쳐나갈 만큼 지도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는 별 문제다.
동교동계의 결속에도 다소 영향이 있을 것이란 분석이 많다.
김씨와 불출마 결심이 확고하다고 판단될 경우 그에 대한 추종이 약화될 가능성과 「직선제」에 대한 짐착도 다소 엷어질 가능성도 생각할 수 있다.
「불출마」가 결코 심의를 염두에 두지 않은 것인 지 다목적용인지는 두고봐야 알겠지만 여야가 이를 잘 활용만 한다면 개헌 정국의 돌파구 마련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허남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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