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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노무현, 북한 쪽지 보고받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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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2007년 11월 20일 유엔 북한인권결의안에 정부가 기권하는 과정에서 북한 입장을 담은 ‘쪽지’를 노무현 전 대통령이 보고받았다고 송민순(현 북한대학원대학교 총장) 전 외교통상부 장관이 회고록에서 증언했다. 당시 외교안보 라인 핵심 인사들은 쪽지의 존재 자체를 부인했지만, 송 전 장관은 사실이 맞다고 16일 중앙일보 전화 인터뷰에서 확인했다. 송 전 장관은 “회고록에 쓴 대로”라며 “(북측으로부터 받은 반응이라는) 쪽지는 있었고, 그걸 보고 기록을 해놨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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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 전 장관은 회고록 『빙하는 움직인다』에서 2007년 11월 20일 싱가포르에서 있었던 일을 상세히 기술했다. 노 전 대통령은 아세안+3 정상회의에 참석 중이었고, 송 전 장관과 백종천 전 청와대 외교안보실장 등이 수행했다.

송민순 전 장관 회고록 증언
“기록해놨다 회고록에 기술”
“북 의견 듣자”는 문재인 제안
실행에 옮겨진 결과라는 취지
백종천 “북서 온 쪽지 아니다”

송 전 장관은 “20일 저녁 대통령 숙소에서 연락이 와 방으로 올라갔더니 백종천 당시 안보실장이 노 대통령 옆에 쪽지를 들고 있다가 ‘오후에 북측으로부터 받은 반응’이라며 읽어보라고 건네줬다. 예상했던 반응(북한인권결의안에 대한 반발)이었다”고 회고록에 적었다.

쪽지 내용은 “인권결의안 찬성은… 북남관계 발전에 위태로운 사태를 초래할 테니 인권결의 표결에 책임 있는 입장을 취하기 바란다. 남측의 태도를 주시할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송 전 장관은 그로부터 이틀 전인 11월 18일 “노 전 대통령이 소집한 서별관회의에서 김만복 전 국정원장이 ‘북한의 의견을 확인하자’고 제안했고, 문재인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일단 남북 경로로 확인해보자’고 결론 내렸다”고 회고록에 서술했다.

싱가포르에서 등장한 쪽지는 당시 문 전 실장이 내렸다는 서별관회의 결론(‘북한 의견 확인’)이 실행에 옮겨진 결과일 수 있다는 취지로 송 전 장관은 회고록에 적었다. 쪽지 표현도 유엔결의안 표결에 대한 북한의 반응에 가까운 내용이었다. 회고록에서 송 전 장관은 쪽지를 건넨 노 전 대통령이 “(북한한테) 물어까지 봤으니 그냥 기권으로 갑시다. 묻지 말았어야 했는데…”라고 한 뒤 “나 참, 공기가 무거워서 안 되겠네”라며 착잡한 표정으로 침실로 들어갔다고 밝혔다. 당시 현장에 있었던 백 전 실장은 본지 통화에서 “ 북한으로부터 온 메시지가 아니라 정보기관에서 취합한 통상적인 정보 분석이었다. 그 내용 중 기존의 북한 주장이 담겨 있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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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전 실장의 측근인 더불어민주당 김경수 의원도 16일 기자회견을 열어 “쪽지는 (찬반 문의에 대한) 북한의 회신이 아닌 백 전 실장의 정보동향 보고서였다”고 말했다.

송 전 장관은 본지에 “내가 컴퓨터 같은 기억력을 가진 것도 아니고, 기록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구체적으로 쓸 수 있었겠느냐”고 말했다. 송 전 장관은 회고록에서 해당 쪽지의 내용을 3줄, 122자에 걸쳐 기술했다.

유지혜 기자 wise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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