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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분 무대 3년 연습…발달장애 14명 마음이 춤췄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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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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휠체어를 탄 우화숙(58·지체장애 1급)·조현숙(57·지체장애 2급)씨가 지난 13일 서울 용산아트홀에서 전문무용수 2명과 함께 춤을 추고 있다. [사진 김현동 기자]

난 13일 오후 7시 서울 용산아트홀 대극장 무대 위. 하얀 장삼이 춤사위에 따라 하늘하늘 흩날렸다. 김하림(28·여)씨 등 전문 무용가 2명의 리드로 앳된 얼굴의 무용수 14명이 동그랗게 모여 강강술래를 하듯 빙그르르 돌았다. 흥이 나는 듯 양 어깨를 들썩이며 사뿐사뿐 버선발로 춤을 췄다. 이따금 춤 대열이 삐끗 엇나가긴 했지만 군무로서 손색이 없었다. 공연이 끝나자 객석에서 박수 갈채가 쏟아졌다. 무용수들의 얼굴엔 해맑은 미소가 번졌다.

장애·비장애인 ‘더불어’ 공연 갈채
서울여고·영등포여고 특수학급생
함께 준비하며 움츠린 마음 열어
휠체어 테니스 대표 출신이 성악도

총 공연 시간은 5분 남짓. 하지만 무용수들은 이 무대를 위해 각자 6개월~3년 가까이 매주 춤 연습을 해왔다. 발달장애·자폐 등의 장애를 안고 있는 서울여고·영등포여고 특수학급 1~3학년생들이다. 간단한 군무 하나를 익히는 데도 수백 번을 연습해야 했다. 안무는 이번 공연의 총 예술감독인 윤덕경 서원대 체육교육과 교수가 한국 무용의 대표적 춤사위를 학생들 수준에 맞게 재해석해 구성했다. 올해 처음 아이들을 가르치고 함께 무대에 섰다는 김하림씨는 “처음에는 하기 싫다고 짜증 내고 투정 부리던 애들이 이렇게 멋진 호흡을 보여주리라곤 상상도 못했다”며 감격스러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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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여고·영등포여고 특수학급 생들의 전통 춤사위. [사진 김현동 기자]

이날 공연은 사단법인 장애인문화예술진흥개발원(이하 장문위) 주최로 열린 ‘더불어 희망세상을 여는 컬래버레이션’의 하나였다. 올해로 7년째인 이 행사에서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춤·노래 등 각종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소설가이자 전 국회의원인 이철용(68) 장문위 이사장은 “장애를 당하는 순간 장애인들이 제일 먼저 잃어버리는 게 ‘춤’이다. 비장애인 또는 전문 무용가들의 독점물로 여겨졌던 춤을 장애인들이 함께 추면서 그 편견의 장벽을 허물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 역시 지체장애 3급으로 지팡이를 짚고 다닌다.

실제로 춤을 배운 뒤 학생들의 모습은 눈에 띄게 달라졌다고 한다. 수업 시간에 멍하니 앉아 있거나 꾸부정한 자세로 스마트폰을 보는 게 취미였던 서울여고 남궁미정(17·발달장애 3급)양은 눈에 띄게 밝아졌다. 남궁양은 공연 전 대기실에서 “얼마 전에 춤추다 넘어졌는데 그래도 계속 췄어요”라며 재잘거렸다. 학생들 사이에서 왕언니라고 불리는 이슬비(18·발달장애 3급)양은 먹을 것을 나눠주고 옷매무새를 만져주는 등 동생들을 각별히 챙겼다. 이전까지는 상상하기 어려운 장면이었다. 서울여고 특수학급을 2년 넘게 맡고 있는 김민화(40) 교사는 “아이들이 함께 춤을 배우면서 배려라는 걸 알고 자신감을 갖게 된 것 같다”며 뿌듯해했다.

‘휠체어를 탄 성악가’로 알려진 황영택(49)씨는 이날 전 KBS 음악감독이자 장애인 기타리스트인 김병식씨의 연주에 맞춰 노래 ‘누구라도 그러하듯이’를 열창했다. 황씨는 26세 때 건설 현장에서 일하다 크레인 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된 중도장애인이다. 결혼 5개월 만에 벌어진 사고였고 당시 아내는 임신 4주였다. 황씨는 “모든 게 절망스러웠지만 내가 한 여자의 남편이자, 아이의 아빠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결국 그는 신체 장애를 극복하고 테니스 국가대표 선수로 5년간 활동했다. 이어 37세 때 성결대 성악과에 진학했다. 내면에 아직 남아 있는 아픔을 노래로 치유하고 싶어서였다고 한다. 숨죽이며 황씨의 노래를 감상하던 관객들은 노래가 끝나자 우레와 같은 박수를 보냈다.

이밖에 발달장애가 있는 쌍둥이 형제 정재원·재호(12)군의 첼로 연주, 노원구국제장애인협회 우화숙(58)·조현숙(57)씨의 휠체어 무용 등도 무대에 올려졌다.

글=홍상지 기자 hongsam@joongang.co.kr
사진=김현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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