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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인 확인해야 알리는 방식, 美 소비자는 못 참아”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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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1호 18면

14일(현지시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의 삼성전자 매장 앞을 지나는 쇼핑객들. [자카르타 로이터=뉴스1]

“삼성의 리콜 발표는 모든 감정을 배제한 실용적인 대응이었다. 소비자를 배려하는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프랑스 광고대행사 하바스의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 헤드 이브스 로버트 폴)


“고맥락 사회인 한국은 충분한 시간을 두고 명확한 답을 얻어야 이를 밝힌다. 미국서는 익숙하지 않은 문화다.” (폴 아르젠티 다트머스대 경영대 교수)


갤럭시노트7 단종 사태에 직면한 삼성전자의 위기 대응능력이 시험대에 올랐다. 글로벌 여론은 단종 자체보다 단종 사태를 일으킨 삼성전자의 조직 문화, 단종 사태 이후에 보여준 위기 대응능력에 집중하는 분위기다. 특히 노트7 배터리 발화 사고 이후 보여준 일련의 의사 소통 방식이 미국 시장에 적합하지 않다는 지적이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구체적이고 선제적인 정보 공유 필요]


삼성전자가 사고 뒤 시장과 소통하는 방식이 “느리고 충분치 않았다”는 건 위기 관리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이들은 특히 배터리 발화가 처음 알려진 8월 24일부터 전량 리콜이 전격 발표된 9월 2일까지의 9일, 교환한 신제품에서도 발화됐다는 소식이 전해진 5일부터 생산 중단이 밝혀진 11일까지의 6일 간의 간격에 주목한다. 이 기간 삼성전자는 “구체적인 원인을 조사 중”이라는 공식 입장만 밝힌 채 사실상 침묵했다. 그 동안 배터리 발화 사고는 인터넷에서 급속히 퍼져나갔다.


미국 학자들은 삼성전자가 고맥락 사회인 한국식 의사 소통 방식을 세계 소비자를 대상으로 고집했다고 본다. 고맥락 사회는 인류학자 에드워드 홀이 소개한 개념이다. 오랜 기간 같은 역사를 공유한 고맥락 사회 구성원들은 말 대신 상황으로 맥락을 파악한다. 이 때문에 확실한 결과가 나왔을 때 짧게 상황을 설명하는 의사 소통 방식이 일반적이란 얘기다. 문제는 미국의 경우 자잘한 내용도 일일이 설명해줘야 납득하는 저맥락 사회로 분류된다는 것.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는 “원인이 밝혀지면 그때 소통하겠다는 생각을 버리고 원인이 왜 안 밝혀지는지, 어떻게 밝히는 중인지, 그동안은 어떻게 스마트폰을 사용하라는 구체적이고 선제적인 소통이 필요했다”며 “이 사태를 계기로 삼성전자가 글로벌 소비자와의 소통 방식을 좀더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상징적인 리더가 전면에 나서 위기를 수습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 것도 미국 사회가 의아해하는 대목이다. 미국 경제뉴스 채널 CNBC에서 한 패널은 “누구나 애플엔 팀 쿡이 있다는 걸 아는데, 누가 삼성전자를 대변하는지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 이게 가장 큰 문제”라고 표현했다. 빌 조지 하버드대 경영대 교수는 같은 프로그램에 출연해 “이재용 부회장이 미국 소비자들에게 공개 사과하고 미국 의회에 출석해야 한다”며 “그렇지 않으면 폴크스바겐 같은 오류를 범해 삼성이라는 훌륭한 브랜드를 잃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실제로 미국 기업은 이런 품질 문제가 불거지면 거의 예외없이 최고경영자(CEO)가 사태 해명에 나선다. 바비 인형으로 유명한 장난감 회사 마텔의 2008년 납 성분 검출 파동이 대표적이다. 로버트 애커트 CEO는 직접 방송 뉴스에 나가 장난감 리콜 방법과 앞으로 납 성분이 들어가지 않도록 마련한 품질 강화 조치를 설명하며 공식 사과했다. 4명의 일가족이 숨지는 사고를 일으킨 도요타의 렉서스 급발진 사태는 6개월의 공방 끝에 도요타 아키오 사장이 직접 미국 의회 청문회에 나가 눈물을 흘리며 사죄한 뒤에야 소비자들의 분노를 가라앉힐 수 있었다. 애플의 아이폰4가 안테나를 특정 각도로 잡으면 수신률이 떨어진다는 비난에 기자회견장에 선 이도 스티브 잡스 당시 CEO였다. 최순화 동덕여대 국제경영학과 교수는 “품질 문제가 불거지면 많은 소비자들은 ‘회사가 우리의 안전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았다’는 생각에 정서적 반감을 가지게 된다”며 “최고경영자가 나서 감정에 호소하는 커뮤니케이션을 하면 이런 반감을 빠르게 잠재울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조직문화 어떻게 바꾸고 있는지 보여줘야]


노트7 사태에 대한 해명을 넘어 삼성전자의 조직문화에 대해 제기되는 의문에 향후 어떻게 답할 것인가도 삼성전자가 직면한 큰 숙제다. 노트7 배터리 발화가 일어난 배경, 발화 사고가 배터리의 결함이라고 성급히 발표하게 된 이면에 ‘속도 제일주의’와 ‘수직적 군대문화’가 자리하고 있다는 전문가들의 비판은 갤럭시 브랜드를 넘어 삼성 브랜드에까지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위정현 중앙대 경영학과 교수는 “그동안 그룹 계열사의 사업 구조 개편에 주력했던 이재용 부회장이 삼성전자의 조직 문화를 밑바닥부터 통째로 바꾸려면 직접 현장을 챙겨야 할 것”이라며 “기존에도 선언식으로 조직 문화를 바꾸겠다는 다짐은 여러 차례 밝혔지만, 이번엔 실제적으로 어떻게 문화를 바꿔나가고 있는지를 시장에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14일 “이번 이슈를 계기로 제품 안전성 강화를 위해 내부 품질 점검 프로세스를 전면 개편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스마트폰 뿐 아니라 생산 제품 전체에 대한 안전도 점검을 실시하고 ‘하드웨어 명가’로 불렸던 과거 명성을 되찾겠단 얘기다.


[아이폰 7 반사이익, 첫날 예약 10만대]


노트7의 공백으로 국내에서도 애플의 아이폰7·아이폰7플러스가 반사 이익을 누리게 됐다. 14일 예약 판매를 시작한 두 제품은 3개 이동통신사를 통해 하루 10만대 안팎의 주문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2014년 출시돼 국내서 80만대 판매고를 올린 아이폰6·아이폰6플러스의 예약 판매 첫날 실적과 비슷한 수준이다.


시장은 삼성전자가 내년 3월 출시 예정이었던 갤럭시S8 때까지 신제품을 내놓지 않고 기다리다간 경쟁사에 시장을 너무 많이 뺏길 수 있을 거라고 우려한다. 일각에서 갤럭시S8이 조기 출시되는 것 아니냐는 전망이 조심스럽게 나오는 이유다. 삼성전자는 지금까지 갤럭시S3를 출시하며 갤럭시S5 개발에 들어가고, 그 사이엔 갤럭시S2 출시 때 개발을 시작했던 갤럭시S4를 마무리해 내놓는 방식으로 신제품을 내놓았다. 내년 초 출시가 예정된 갤럭시S8은 이미 1년 이상 개발을 지속해왔단 얘기다. 정보기술(IT) 전문매체 폰아레나는 ”삼성전자가 이미 특허청에 갤럭시S8 상표 등록을 신청했다“며 이전보다 출시 시기가 앞당겨질 가능성을 점쳤다.


하지만 섣불리 출시를 앞당겨서는 안된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이병태 KAIST 경영대 교수도 “홍채 인식 기능 등 노트7에 탑재돼 호평을 받았던 모든 기능이 현재 개발 중인 갤럭시S8에도 적용됐을 가능성이 높다”며 “제품 출시를 서두르는 것은 독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임미진·김경미 기자 mi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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