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내 불만 끄고 정국 돌파구 모색|원내 사령탑 바꾼 신민당 속사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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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신민당이 개헌의 최종 시한으로 잡은 이번 정기국회 말(12월18일)을 2개월도 채 못 남긴 채 원내사령탑을 전격 경질하게 된 것은 개헌정국에 대처하는 당의 복잡한 속사정을 단적으로 드러내 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유성환 의원 구속사태 후 김동영 총무는 강력히 사의를 표명했었다가 상도동 측의 만류로 철회했었다. 그것이 겨우 며칠사이에 다시 총무경질로 반전한 것은 당내 계파간의 시국에 대한 전망이 기본적으로 차이를 보이고 있고 거기서 연유되는 개헌전략 역시 계파간에 큰 차이를 보이는데서 오는 불협화 때문이다.
유 의원 사태를 여권의 강압적 개헌추진전략의 서막으로 보고 있는 동교동 측은 최근 민헌연·민통련 등 관련단체에 대한 수사와 광범하게 진행되고 있는 용공 좌경세력에 대한 정부측의 계속되는 강경 조치를 자 파에 대한 위협적 신호로 보고 이에 대응할 적극적인 전략수립을 촉구해 왔다.
때문에 당내의 헌특 참여노력에 대해 강한 불만을 제기하는 한편 서울지역 개헌추진대회등 장외투쟁의 재개를 주장했으며, 특히 11월초 모종조치 설과 관련해 김영삼 고문의 서독 행을 노골적으로 반대했었다.
이에 반해 상도동 측은 원내중심의 개헌전략을 고수했고 따라서 유 의원파동에도 불구하고 국회를 조기에 정상화시킨 데 이어 헌특의 재개를 모색하는 쪽으로 움직여 왔다.
이처럼 신민당의 개헌전략은 이민우 총재의 선택적 국민투표 제안과 대통령 단독면담 추진, 실세회담의 고수(동교동), 헌특 가동(상도동)등으로 나눠져 갈팡질팡했고 유 의원 파동이후 여당의 강경책에 마주쳐 그 어느 것도 분명한 성과를 거두지 못한 게 사실이다.
이러한 전략의 혼선 가운데 다선 의원들을 중심으로 한 당풍쇄신 파들이 당 지도부의 인책을 강력하게 들고 나온 것이 호소력을 갖게 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비록 당풍쇄신 파들의 움직임이 적전분열이니, 외부의 분열공작이니 하고 비판을 받았고 그 구성멤버들에 대해 신선하지 못하다는 지적이 없지 않았지만 당의 운영방식에 대한 그들의 불만만큼은 당내에서 지지를 받을 수 있게 된 상황이 되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더욱이 앞으로 원내 또는 당내세력판도가 중요시되는 시점을 앞두고 동교·상도동 어느 쪽도 이들의 요구를 전적으로 무시할 수는 없는 형편이고 개헌을 앞둔 당의 전력차질위험을 방치했다는 비판도 감수하기가 힘들었을 것으로 분석된다.
동교동 측은 당의 원내중심개헌전략에 대한 불만을 이들의 지도부 인책요구에 실어 압력을 가했던 것 같고 상도동 측도 여러 가지 당내사정을 감안할 때 이러한 요구에 더 이상 버틸 명분을 갖지는 못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결국 신민당의 각계 파는 총무의 경질로 새로운 국면에 대처하는 전기를 모색해 보는 쪽으로 의견을 모음으로써 당내에서 일고 있는 불만이 본격적으로 타오르기 전에 불씨를 끄기로 한 셈이다.
그러나 김동영 총무를 대신한 김현규 총무의 등장이 임시방편이 될 수는 있을지언정 그것이 전체적인 개헌정국을 타개할 수 있는 결정적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보는 사람은 적은 것 같다. 그 이유는 신임 김현규 총무가 전임총무나 마찬가지로 상도동계에 속하고 있어 상도동의 원내중심전략에서 크게 벗어날 수 없다는 한계를 지니고 있는데다가 총무의 경질로 급한 불을 끈 셈이지만 당 지도부의 지도력이 거의 한계점에 도달하고 있는 내부적인 제약이 너무 심각하기 때문이다.
우선 문제가 되는 점은 전체 정국의 흐름을 진단하는 눈이 계파간에 근본적으로 다르고 거기에 대응하는 신민당내의 반응들이 복잡하기 짝이 없다는 점이다.
현재 동교동이나 상도동, 그리고 당내 각파는 거의가 연말연초가「증대한 고비」가 될 것이라는 데는 인식을 같이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그 고비의 강도와 그것을 헤쳐 나가는 방법에 대해서는 이견의 폭이 너무 깊다.
동교동 쪽으로서는 이 시기를「마지막기회」로 보는 것 같다. 따라서 그에 앞서 실세회담을 반드시 성취해야 한다는 입장이며 그것을 성취시키기 위해서는 헌특 재개는 아무 소용없고 오직 강력한 장외투쟁의 길밖에 없다고 보는 것 같다.
김영삼 고문의 귀국 후가 될 11월 하순에는 그동안 미뤄 왔던 서울대회를 강행함으로써 결전을 시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반면 상도동 측은 개헌의 연말시한을 좀더 신축성 있게 대처함으로써 연말고비를 넘기고 내년으로까지 개헌의 시한을 연장하는 여유를 두는 쪽이 유리하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럴 경우 헌특은 시한연장의 중요한 명분이 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양파의 전략 모두가 민정당의 강경책 앞에서 어떤 효과를 거둘 수 있을지 전망하기 어렵다.
만약 신민당의 개헌전략이 당내의 혼선과 정부·여당의 강경책, 그리고 재야와 운동권의 움직임 때문에 전략으로서 구실을 못하게 된다면 신민당은 커다란 내부진통을 겪지 않을 수 없다.
그같은 진통은 신민당이 연말시한을 무사히 넘기든, 어떤 비상한 조치 앞에 난파하든 간에 불가피하게 겪지 않을 수가 없고 그것은 당의 실세화요구와 당 체제의 개편, 전당대회의 조기소집 등으로 연결될 가능성이 많다.
결국 총무의 경질은 이처럼 예견되는 진통을 앞둔 임시 캄풀 제 구실 밖에 못할지 모른다.
새로운 총무의 등장으로 신민당이 새로운 전기를 모색하려는 몸부림을 보이겠지만 그것이 성과를 거두기에는 외풍이 너무 차고 거기에 대응해야 할당의 속사정은 너무 복잡하게 끓고 있기 때문이다. <김영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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