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위기에 굴하지 않는 한국 기업의 혁신을 기대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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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국내 기업의 ‘빅2’ 삼성전자와 현대차가 휘청거리자 한국 경제의 체력과 민낯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다. 한국무역협회가 어제 발표한 ‘우리나라 수출 톱3 국가의 수출 비중 변화’에 따르면 지난해 26%였던 중국에 대한 한국의 수출 비중이 올 1~8월 중 24.4%로 하락했다. 더 큰 문제는 수출의 절대 액수가 2013년을 정점으로 3년째 줄어들고 있다는 점이다. 북핵 대응을 위한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와 관련해 중국의 무역 보복이 우려되고 있지만 이와 무관하게 이미 수년 전부터 한국이 최대 수출 텃밭인 중국에서 제품 경쟁력을 잃고 있다는 시그널로 볼 수밖에 없다.

주력산업 경쟁력 약화로 위기 직면
중국은 기술 굴기와 창업 위력 떨쳐
비관 말고 최고 품질로 정면 돌파를

이런 결과는 최근 수년간 급격히 저하된 한국 산업경쟁력의 현주소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근거는 너무 많다. 세계 휴대전화 빅5에 국내 기업은 삼성전자뿐이다. 나머지 3~5위는 중국 기업이 차지했다. 올해 글로벌 100대 브랜드에서도 중국 기업은 9곳이 이름을 올렸지만 한국은 삼성전자가 유일하다. 세계 수출시장의 13대 주요 품목 점유율에서도 2011~2015년 사이 중국이 18.3%를 차지했지만 한국은 5.3%에 그쳤다. 중국 시장에서도 우리와 달리 미국·유럽연합(EU)·일본은 소비시장의 고급화, 안전과 디자인을 중시하는 수요 확대에 대응해 수출 비중이 늘었다.

문제는 이런 메가 트렌드 변화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자만에 취해 현실을 보려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중국은 세계적 기술 기업을 닥치는 대로 사들이고 창업 열기가 대륙을 휩쓸고 있다. 대졸자 가운데 창업자가 연간 300만 명씩 쏟아져 나온다. 중국 벤처기업이 돈을 조달하는 ‘신삼판(新三板)’ 상장기업은 1만 개에 달해 한국 전체 상장사의 다섯 배다. 지난 20년간 한국 사회를 주도한 386세대가 이념 갈등으로 밤낮을 지새우고 정부 규제가 양산될 때 중국의 같은 세대는 기술 굴기에 매진한 결과다.

더구나 이제는 주력 산업이 모두 표류하고 있는 데다 간판 기업은 품질 문제를 의심받는 처지에 빠졌다. 삼성전자는 기회비용까지 합하면 노트7으로 인한 손실이 내년 1분기까지 7조원에 이른다. 손실이 여기서 그치면 다행이지만 미·중 언론은 과거 일까지 들추며 삼성전자 배싱(때리기)에 나섰다. 이런 위기 상황에서 현대차 노조는 월 4000원의 기본급 인상안을 손에 쥐려고 파업으로 회사에 3조원의 손실을 입혔다. 생산 차질로 협력업체는 줄도산의 공포에 휩싸여 있다. 이런 공포는 올 12월 미국발 금리 인상이 시작되면 가계부채 폭탄이 터지고 취업·고용절벽 한파까지 몰아닥치면서 패닉으로 커질지도 모른다.

비관만 하고 있을 순 없다. 삼성전자가 잠시 발을 헛디뎠지만 정점에 도달한 원동력은 기술 혁신이었다. 가고 있는 방향은 맞는 것이다. 혁신에는 위험이 따를 수밖에 없다. 성장엔진이 녹슨 국내 산업은 성장의 원동력이던 혁신 역량을 키워 다시 최고의 품질로 세계 시장에서 정면 승부해야 한다. 그것이 사면초가에 빠진 한국이 위기를 돌파하는 유일한 탈출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