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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시평

전쟁 위기를 넘으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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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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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림
연세대 교수·정치학

인간들은 왜 갈등하는가? 특히 전쟁이 나쁘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없는데도, 전쟁으로 인해 그토록 전율할 살상을 경험하고도 인간들은 왜 또 싸우는가?

분단·전쟁, 통일·평화로 바꾸려면
내부 이념·정치적 차이 극복해야
오늘의 핵 전쟁 위기 넘기 위해선
먼저 남한 내부 차이부터 줄이고
북한과 차이 줄일 대화 계속하길
악은 방치하면 더 자라난다

 사회주의 붕괴 이후 지구상에서 거대 전쟁이 일단 사라지자 인류의 중심 담론에서 전쟁과 평화의 문제는 뒷전으로 밀려나 있다. 인류의 등장 이래 전쟁과 평화 문제보다 더 근본적으로 인간 삶을 좌우한 사태도 없었으나 전체적으로 보아 오늘의 세계는 분명 유례없는 장기 평화를 구가하고 있다.

 그러한 세계 장기 평화 상태에서도 전쟁, 그것도 최악의 핵전쟁의 참화를 두려워하고, 인류가 개발한 첨단무기들이 가장 집중되고 있는 희귀 지역이 한반도다. 쌍방에서 온갖 최첨단 무기의 개발과 배치가 시도되고 공격과 방어, 대량 보복과 인간 살상 훈련과 성능 실험도 반복된다.

 세계와 한반도는 왜 이리 따로 가고 있는가? 명민한 한국인들이 평화 문제만은 유독 더 몽매하고 더 아둔한 것인가? 객관적으로 한반도가 지금은 종식된 세계 자본주의와 세계 사회주의의 체제 대결과 이념 대결의 최후 잔존 지역이고, 북한이 세계 사회주의 독재 체제의 최후 국가라 하더라도 가공할 전쟁 위기와 상호 절멸 의지의 계속되는 반복 도래는 다른 차원이다.

 인간의 본질과 특성에 대한 궁구들에는 해법의 단초가 있을까? 신화·성서·철학·문학은 모두 태초부터 인간 역사는 근린 증오와 근친 살해로 시작됐음을 보여준다. 가까운 사이의 증오와 폭력, 이 문제는 초기부터 인간 사유의 중심 고뇌였다. 고대·근대·현대의 해석들을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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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전 인간학의 한 중심 문제는 이민족과의 ‘전쟁’과 자민족 내의 ‘내전’ 중 어느 것이 더 나쁜가, 더 잔인한가의 문제였다. 근대의 국가 체제를 고안한 토머스 홉스의 정치철학은 스스로 말하듯, 인간의 행위 중 가장 비극적인 ‘내전’의 참상을 목도한 충격의 산물이었다. 근대 국제공법 체제를 탄생시킨 베스트팔렌 체제는 형제애를 강조한 기독교 내부의 종교 ‘내전’, 유럽 ‘내전’의 결과였다.

 현대의 인간학에 큰 영향을 끼친 프로이트는 이러한 ‘동근원성의 역설’을 정교화한다. 사랑하는 또는 가까운 인간들은 ‘사소한 차이’에 대한 과도한 자기 집착과 확대해석으로 인해 점차 증오·갈등·전쟁으로 치닫는다. 사랑과 증오, 인간애와 폭력의 병행 발전에 대한 깊은 통찰이다. 종교·형제·종족·문화·생활권 등 근원이 같고 오랠수록 인간들은 사랑과 증오가 함께 자라난다. 신혼 이혼은 살인이 없으나 황혼 이혼은 살인이 많은 이유다. 사랑의 누적에 비례한 크기만큼 증오는 폭력으로 돌변한다. 공동체도 동일하다. 기독교와 이슬람도 한 뿌리, 한 형제에서 나왔다. 분리된 상대는 공동체를 파괴한 이단과 병균으로 간주되고, 제거를 위한 의지와 수단은 가장 강력하다. 폭력은 물론 전쟁도 불사한다.

 한국은 종족·언어·문화·정치·영토가 희귀할 정도로 오랫동안 일치해 온 사례에 속한다. 그런 그들에게 분단은 예외이자 배반이었다. 한 형제, 한 동포, 한 백성으로 살아온 초장기 단일 공동체를 파괴한 상대는, 오직 이념이라는 단 한 가지만 달랐음에도 이상적 에덴동산을 파괴한 병균·괴뢰로 간주됐다. 결국 초장기 공동 역사에 비례하는 증오는 ‘병균’을 쓸어버리려는 절멸 전쟁을 초래했다. 그러나 내부의 ‘사소한 차이’로 시작한 그들의 내전은 본질적으로 두 세계 이념 및 두 세계 체제와 중첩된 가공할 세계전쟁이었다. 오늘의 상황도 같다. 남북의 충돌은 21세기 초 세계 최고 무기가 동원되는 세계전쟁이 될 것임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 11개의 모든 연합점령, 분할점령 국가에 대한 심층 비교를 진행하면 단순한 사실 하나가 눈에 확 들어온다. 분단과 전쟁을 극복하고 통일과 평화를 달성한 나라들은 외부의 갖은 압력에도 불구하고 혼신의 힘을 다해 사회와 민족 내부의 이념적·정치적 차이를 먼저 극복해 연합·연대·통합·공존의 길로 나갔다. 외부가 준 분단과 전쟁 상황을 내부 노력으로 평화와 통일의 길로 역전시킨 것이다. 한국은 반대였다. 외부 이념 요인을 내부 동질성을 파괴하는 요소로 절대화하고 끝내는 절멸 전쟁까지 치렀다.

 오늘의 핵전쟁 위기를 넘기 위해 우리 지도자는 먼저 남한 내부의 차이를 넘으려 대화하고, 거기에 바탕해 북한과의 차이를 줄일 대화를 계속하길 호소드린다. 평화의 그 길에 국민과 세계는 당연히 함께할 것이다. 지금의 이념과 체제의 차이가 전쟁으로까지 치달아 수많은 생명을 서로 죽일 만큼 절대로 크지는 않다는 사실에 꼭 눈을 뜨자. 상대가 악일지라도 악은 방치하면 더 자라난다. 내게 피해를 줄 악은 더욱 그러하다.

박명림
연세대 교수·정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