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련이 설립 주도”서 “말 못하겠다”로 달라진 이승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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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한 이승철 전국경제인연합회 상근부회장(왼쪽)에게 최상목 기획재정부 제1차관이 악수를 청하고 있다. 이 부회장은 이날 미르·K스포츠재단 설립 과정에 청와대의 개입 여부를 묻는 의원들의 질문에 “검찰 조사가 진행 중이라 답변하기 어렵다”며 즉답을 피했다. [뉴시스]

12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회의장에 앉아 있는 이승철 전국경제인연합회 상근부회장에게 최상목 기획재정부 1차관이 다가가 어깨를 두드렸다. 이 부회장은 미르·K스포츠재단에 특혜성 지원을 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전경련의 책임자로 의원들의 질의를 받기 위해 국정감사장에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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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이 부회장이 어색한 모습으로 앉아 있는 것을 보고 최 차관이 먼저 인사를 건넸지만 이 부회장은 최 차관과 어색하게 악수를 한 뒤 무표정하게 시선을 돌렸다. 취재 카메라를 의식, 웃는 모습을 보이지 않기 위해서였다. 이 부회장은 이날 하루 종일 질의에 시달릴 것을 예상한 듯 긴장한 모습으로 앉아 있었다.

“수사 중 사안이라…” 답변만 20번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어 송구
안종범 수석과는 가끔 통화한 사이”
기업 기부금 자발적이었나 질문에
“그런 데도 있고 아닌 데도 있다”

본격 질의가 시작되자 이 부회장은 미리 준비한 듯 “수사 중인 사안이라 말씀드리기 어렵습니다”는 말을 반복했다. 오후 10시가 넘어 끝난 국감에서 “수사 중인 사안이라…”는 대답이 20차례 이상 나올 정도였다.

결국 “그러려면 뭐 하러 나왔어요?”(더민주 송영길 의원), “검찰 조사관 앞에 가서 할 수 있는 얘기를 국회에 와선 왜 못합니까?”(더민주 박광온 의원)라는 야당 의원들의 비판이 쏟아졌다. 그럴 때마다 그는 의원들의 눈을 잠깐 쳐다본 뒤 다시 회의장 앞을 보며 “수사 중인 사안이라…”는 답을 반복했다.

오후에는 “오전처럼 말씀 드릴 수밖에 없는 점에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표현을 바꿨다. 결국 새누리당 의원들도 이 부회장의 태도를 지적하고 나섰다. 이종구 의원은 “재판 중이라 답변 못한다는 얘기는 들어봤어도, 수사 중이라 얘기 못한다는 말은 처음 듣는다”고 지적했다. 당 사무총장인 박명재 의원은 “지난번엔(9월 26일 농해수위 국감) 분명히 전경련 주도로 (미르 재단이) 추진됐다고 얘기했잖아요. 확신과 소신이 있어야죠”라고 답변을 요구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유승민 의원도 “전경련 부회장의 국회 진술이 매우 오만하다”고 비판했다.

이 부회장은 미르 재단을 지원하는 데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안종범 청와대 정책조정수석과의 친분에 대한 질문에는 “창조경제에 조력하는 관행상 가끔 통화한 사이”라고 답했지만, 다른 주요 질문엔 수사를 이유로 답을 피했다.

이 부회장은 답변뿐 아니라 자료 제출에도 소극적이라는 지적을 받았다. 이 때문에 새누리당 소속인 조경태 기재위원장과 더민주 박영선 의원이 다투는 일까지 벌어졌다.

조 위원장이 이 부회장에게 “우리 이 부회장님, 자료 요청에 성실하게 임해주시길 부탁드리겠습니다”라고 하자, 박 의원은 “아니, 위원장님도 이 부회장 앞에선 작아지십니까?”라고 말했다.

이 부회장은 국감 종료 직전 더민주 김종민 의원이 “이 부회장은 ‘기업들이 기부금을 자발적으로 냈다’고 했는데 ‘강제로 냈다’는 증언이 한 곳이라도 나오면 위증죄로 처벌받을 수 있다”고 몰아세우자 “그런 데도 있고 아닌 데도 있다”고 답변을 바꿨다.

이날 증인으로 출석한 문화체육관광부 윤태용 문화콘텐츠산업실장은 ‘재단 설립 허가가 하루 만에 나올 수 있느냐’는 야당 의원들의 지적에 “저희 문체부 내에서는 이틀 만에 허가를 낸 것도 5건, 3일 만에 허가가 나온 것도 15건이었다”며 “정부가 사업계획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해 열심히 일을 해서 조기에 허가를 내주는 게 왜 문제가 되느냐”고 반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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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박계 “전경련에서 공공기관 탈퇴시켜야”=새누리당 비박계 의원들은 이날도 유일호 경제부총리를 상대로 전경련 해체를 요구했다. 유승민 의원은 “전경련 회원사인 공공기관에 대해선 정부가 당장 액션(탈퇴 주문)을 취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전력 등 19개 공공기관을 전경련에서 탈퇴시켜 해체를 가속화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이혜훈 의원도 “공공기관 평가 권한을 갖고 있는 경제부총리가 전경련 탈퇴를 (공공기관에) 주문할 수 없다고 하는 나약한 모습 때문에 경제가 이렇게 어렵다”고 말했다.

최선욱 기자 isotop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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