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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진단서는 잘못됐지만 부검은 필요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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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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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숭덕
서울대 의대 법의학교실 교수

진단서는 의사가 환자의 상태를 설명해 나타낸 사(私)문서다. 환자를 직접 진찰한 의사가 발행한다. 환자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당연하다. 올바른 진단서를 위해서는 의사 개개인의 노력 외에 의사의 생각을 잘 표현할 수 있게 도움을 주는 환경도 필요하다. 진단서는 공적(公的)으로 쓰이는 경우가 많아 여러 사항을 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가이드라인이 마련돼 있는 경우도 있다.

백남기 농민 ‘외인사’가 맞지만
진단서로 사인 확정되지 않아
논란 커질수록 정확한 규명 필요
전문가·국민이 공정성 지켜볼 것

여러 종류의 진단서 가운데 특히 사망진단서는 중요하다. 죽음은 개인뿐만이 아니라 사회의 관점에서도 여느 질병과 무게가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의료법 시행규칙에서는 사망진단서는 별지 제6호의 서식을 따르도록 규정하고 있다. 사망진단서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사망의 원인(사인)과 종류다. 전자는 사망을 의학적으로 설명한 부분이고, 후자는 규범적·법률적으로 판단한 결과다. 그런데 많은 의사가 사망진단서 작성에 어려움을 느끼고 있다. 사망의 종류 판단에 법률적 소양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필자는 업무상 다른 의사가 발행한 진단서를 자주 접한다. 그중엔 내용이나 형식에 있어 잘못된 것이 적지 않다. 2000년 대한응급의학회지에 발표된 자료에 의하면 주요 오류가 있는 사망진단서의 비율은 50%를 넘는다. 2014년 대한법의학회지 발표 자료에 따르면 부검까지 이른 63건의 사례 중 사인이나 사망 종류가 부검 결과와 불일치한 사례가 29건에 이른다. 제도적 개선이 필요함을 시사하는 결과들이다. 사망의 종류 판단에 있어 인체의 내부적 요인과 외부적 요인이 함께 관여한 경우, 큰 요인이 작용하고 상당한 시간 이후 사망한 경우들에서 특히 오류가 많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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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백남기 농민의 죽음과 관련된 사망진단서가 우리 사회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사망의 종류가 잘못 기록돼 있음이 주요 이슈 가운데 하나다. 지금까지 간접적으로 접한 내용만으로 본다면 ‘병사’라는 분류보다는 ‘외인사’가 적절하다는 의견이다. 사망진단서를 발행한 주치의와는 다른 의견이다. 나 역시 진단서 발행과 관련해 여러 사항이 궁금하다. 그렇다고 하여 이 논란에만 치우쳐 있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결국에는 사망진단서가 적절하게 활용되는 것이 중요하고, 이를 위해 의학적으로 고려해야 할 사항들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사망진단서 발행에서 의사에게 주어진 역할은 개개의 사망에 대해 전문가로서의 의견을 제시하는 것이다. 의사의 의견은 중요하다. 다만 진단서 발행 의사만의 판단에 귀속되지는 않는다. 규범적 판단이 포함돼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의사가 병사라고 발행했기 때문에” 혹은 “외인사가 적절하기 때문에” 이후의 과정이 어떠해야 한다는 주장을 들으면서 나는 무언가 큰 것을 간과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많은 사람은 사인을 밝히기 위해 부검을 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사인 규명은 부검의 주요 목적 가운데 하나이지만 모든 것은 아니다. 때로는 이미 사인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부검을 진행하기도 한다. 부검은 사인뿐만 아니라 다양한 것을 밝히기 위한 절차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사망 상황이 사건의 핵심일 수도 있으며, 사망의 주된 원인뿐만 아니라 사망에 영향을 미친 다른 요인들은 없는지 혹은 어떻게 관여했는지가 부검의 이유일 수도 있다. 때로는 한 사람의 죽음을 둘러싼 여러 논란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해 부검이 필요할 수도 있으며, 정확한 기록이나 자료의 보존을 위해 부검이 진행될 수도 있다. 즉 부검은 우리 사회가 죽음이라는 상황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 하는 차원의 문제이기도 하다. 한 사람의 인생은 죽음의 과정을 통해서도 많은 것을 우리 사회에 남긴다.

‘책임의 회피’나 ‘시신 탈취’와 같은 자극적 단어들은 부검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단순히 ‘법에 정해진 절차이기 때문에’, 혹은 ‘사인이 명확하니까’라는 주장 또한 충분치 않다. 지금 논란이 되는 죽음이 단순히 한 사람의 죽음이 아니라 역사적으로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생각한다면 모든 것을 가능한 한 객관적으로 기록할 필요는 없는가? 부검이라는 절차가 진행되지 않는다면 이후 어떠한 일들이 생길까? 지금, 무엇을, 어떻게 해야만 하는지 좀 더 구체적인 고민과 노력들이 필요한 때라고 생각한다. ‘두벌죽음(한 사람이 두 번 죽는 것)’, 부검에 이르게 된 과정, 결과에 대한 의문 등. 부검과 관련해 여러 고민을 하는 가족들에게 나는 “그때 (부검을) 했었다면 하는 아쉬움이 남지 않도록 판단을 하는 것이 좋을 겁니다”고 조언하곤 한다.

한 사람의 죽음은 그 사람의 삶 못지않게 그 사람의 역사이다. 하물며 사회적으로 중요한 사안에서는 개인의 역사를 뛰어넘는 그 국가의 역사이기도 하다. 그 역사가 올바로 규명되고 밝혀지기 위해서라도 부검이 필요하다. 의사를 비롯한 많은 전문가와 국민이 눈을 크게 뜨고 지켜보고 있지 않은가.

이숭덕 서울대 의대 법의학교실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