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의 계엄령 해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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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바람은 거역하기 어렵다. 필리핀. 싱가포르에서 대만에 이르는 지역에 민주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대만의 국민당 정부는 37년만에 비로소 계엄령을 해제했다. 그리고 다당제 채택의 문호를 개방함으로써 일당통치체제의 변혁을 스스로 시도하고 나섰다.
그것은 대만의 사회적 발전과 그로 인한 국민의식 수준 향상에서 오는 전통주의 적 사회구조 변화의 일환이다.
대만의 국호가 중화민국으로 돼 있지만 국민당 정권을 민주정부로 보아 온 사람은 아직까지 없었다.
그것은 두 가지 기준에서 명백히 비민주적 정체였기 때문이다. 그 기준의 하나는 49년 대북으로의 천도이후 37년째 계속되는 계엄통치이고 또 하나는 국민당에 의한 일당 지배였다.
그러나 국민당 스스로가 15일 정치혁신 안을 채택, 이 두개의 독재조치를 완화키로 했다.
즉 계엄령을「국가안전법령」으로 대체, 군사법정에선 현역 군인만 재판케 하고「민간사단조직법」을 만들어 반대당(야당)의 창설도 허용할 방침이다.
그러나 아직은 원칙의 결정에 머물러 있다. 따라서 관계법이 확정 실시되기까지는 대만 민주세력의 반 독재투쟁은 안전법과 사단법의 제정을 둘러싸고 민주와 자유의 폭을 넓히는 방향으로 전개될 것으로 보인다.
고 장개석 장군이 공산당에 밀려 중원에서 대만으로 옮겨온 이후 그는 정보정치, 강압정치로 일관해 왔다.
그 때문에 민주적 반대세력은 장개석 국민당 정부를『패전 군부집단에 의한 유민정권』이라고 공격하면서 그 통치의 정당성을 부인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개석 총통이 정권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손문의 삼민주의에 의한 신해혁명의 정당한 후계자이고 청조말기의 분리주의 적인 군벌을 타도하여 국가를 통일했고 항일전쟁을 승리로 이끈 공로 때문이었다.
더구나 그는 지방자치제의 민주적 운영을 통해 기초 민주주의를 확립하면서 권력에 의한 부정부패를 일소하고 경제정책의 성공으로 오늘의 부 강을 이루어 반정부의 도전을 극복할 수 있었다.
경제적 성장은 교육수준의 향상과도시화의 확대를 가져와 국민의 정치의식에도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그러나 장개석 총통의 사 거는 대만에 많은 변화를 강요하고 있다. 더군다나 장경국 총통은 대만의 자유화가 중공과는 관계없는 국민당정부의 일관된 정책이라고 말했지만 대만에 대한 중공의 평화공세가 본토 아닌 대만출신 국민들에게 주는 영향은 부인할 수 없다. 대만이 1990년 배경 아시안게임 참가를 결정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종래의 독재적인 정치제도나 통치방식으로는 이제 더 이상 정치문화를 수용할 수 없게 되었다. 이번 국민당의개혁은 이 같은 상황에의 순응이다.
그러나 그 개혁은 기존 집권체제에 의한 하향식 시혜의 범위를 넘지 못한다. 따라서 그것은「민주화」라기 보다는「자유화」에 불과하다. 자유의 회복이지 새로운 자유의 신장이 아니다.
따라서 국민당 정권은 앞으로 집요한 재야 민주화 세력의 도전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여기에 어느 정도의 개방성과 신축성을 보이느냐에 따라 대만의 정치안정은 좌우될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역사는 전체국민의 자유와 복지를 확대, 발전시키는 방향으로 진전돼 왔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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