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톡톡! 글로컬] 8시간 동안 수술실만 찾다 숨진 두 살배기…‘시스템 살인’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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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희
내셔널부 기자

교통사고를 당한 지 11시간40분 만에 두 살배기 남자아이가 숨졌다. 숨진 아이는 병원들이 치료를 미루는 사이 골든타임을 놓쳐 사고 8시간이 지나서야 수술대에 올랐다.

지난달 30일 오후 5시 전북 전주의 한 횡단보도에서 김모(2)군과 누나(4), 외할머니(72)가 후진하던 대형 견인차에 치였다. 5시45분 전북대병원으로 옮겨졌다. 하지만 전북대병원엔 빈 수술실이 없었다. 이 병원 응급의료팀은 김군을 받은 지 15분 만에 다른 병원에 옮기기로 결정했다.

전원(傳院) 요청은 주먹구구였다. 담당 의사가 오후 6시10분부터 2시간 동안 알음알음 전화를 돌리는 식이었다. 전국의 내로라하는 병원 13곳이 김군의 치료를 꺼렸다. “소아 수술 전문의가 없다” “미세 수술은 어렵다” 등이 이유였다. 전남대·을지대병원 등 정부가 2013년부터 중증 외상환자를 365일, 24시간 동안 치료할 수 있게 총 2720억원을 쏟아부은 권역외상센터들도 외면했다. 매뉴얼이 없어 환자 이송을 조정하는 국립중앙의료원 재난응급의료상황실엔 제일 늦게 연락했다.

맨 처음 전북대병원 담당 전공의는 김군의 왼쪽 발목의 개방성 골절이 가장 시급하다고 판단했다. 골반 골절에 의한 출혈과 아랫배 장기 손상이 더 치명적이었지만 가볍게 봤다. 이 탓에 김군은 얼굴이 새파래진 오후 8시가 넘어서야 수혈을 받기 시작했다.

헬기 배치도 오락가락했다. 전북도소방본부와 경기도재난안전본부는 “야간 당직자가 1명뿐이다” “기상이 나쁘다”며 헬기 요청을 거절했다. 결국 오후 10시9분에야 전주에서 220㎞나 떨어진 남양주시 중앙119구조본부 헬기가 이송에 나섰다.

119구급대원에 따르면 김군은 병원에 도착 전까지 의식이 뚜렷했다. “김군 죽음의 이면에는 환자를 7시간 넘게 방치한 ‘허점투성이’ 응급의료체계가 있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보건복지부는 뒤늦게 경위 조사에 착수했다. 교통사고 후 45분 만에 근처에서 가장 큰 병원을 찾고도 생명을 구하지 못하는 후진적 의료체계의 전면적 정비가 시급하다.

김준희 내셔널부 기자 kim.ju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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