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에 발목 잡힌 구로다 총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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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필요 없다. 그러나 필요하다면 내릴 수 있다.”

더 내리면 마이너스 금리 부작용
가능성 없애면 장기 디플레 우려
“필요하면 내릴 수도” 여운만 남겨

구로다 하루히코(사진) 일본은행(BOJ) 총재의 ‘금리인하’ 고민이 계속되고 있다. 금리를 더 내리자니 마이너스 금리 부작용이 우려되고, 금리인하 가능성을 지워버리자니 디플레이션 장기화가 우려되기 때문이다.

9일(현지시간)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구로다 총재는 전날 미국 워싱턴DC의 브루킹스연구소 강연 뒤 나온 질의에서 “기준금리 추가 인하는 현 단계에서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일본 정부의 (현행) 경제 대책을 통해 향후 경기가 회복될 것으로 보고 있다. 금리 추가 인하는 부작용 등을 충분히 고려해 신중하게 판단할 방침”이라고 강조했다. BOJ는 지난달 열린 금융정책결정회의에서 단기금리는 현재처럼 마이너스 금리를 유지하되 장기금리를 0%로 끌어올려 은행의 수익성을 높이는 정책을 발표했다. 경기부양 수단의 무게중심을 기존의 자산매입에서 장기금리 조정으로 옮긴 것이다. 그러나 시장에서는 실물경기 부양에는 중·단기금리 하락이 더 영향을 미치는데 검증도 되지 않은 장기금리 조정이 경기부양에 큰 효과가 있겠느냐는 비판이 나왔다. 정부와의 공조가 필요한 자산매입 정책에 뭔가 문제가 생긴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실제 일본은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최근 0.3%까지 하락해 여전히 목표치인 2%에 한참 미치지 못해 추가 완화가 필요한 상황이다. 이에 대해 구로다 총재는 이날 강연에서 “BOJ의 유동성 공급이 기존과 크게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라며 “당분간 현행 수준인 연 80조엔(860조원) 규모의 국채 매입을 지속하겠다”고 밝혔다. 특히 “장·단기 금리 인하는 필요하다면 언제든 할 수 있다”며 여지를 남겼다. 또한 일본 물가 상승률이 안정적으로 2%를 넘어설 때까지 무제한 완화를 지속한다는 지난달 정책을 “대담하지만 무모하지는 않다”고 표현하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구로다 총재는 “물가 목표를 1%로 설정하면 달성은 쉽겠지만, 세계 중앙은행의 표준이 2%인 상황에서 이를 선택할 수는 없다”며 “강력한 정책으로 반드시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소아 기자 ls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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