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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가족] “치매 환자·가족 함께하는 일상 체험, 치료 특효약입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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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일 치매 환자·보호자 20여 명이 국립현대미술관으로 소풍을 갔다. 이런 일상 활동은 치매 진행을 늦추는 데 효과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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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봐도 억지로 끌려 나온 게 분명했다. 초기 치매를 앓고 있는 김명순(83·가명) 할머니는 처음엔 시큰둥했다. 그러나 미술 조각품을 구경하고 색종이와 가위로 직접 작품을 만드는 몇 시간 동안 어느새 얼굴엔 활기와 즐거움이 가득 찼다. 김씨를 간병하는 딸 오순영(59·가명)씨는 “정말 오랜만에 어머니와 싸우지 않고 함께 웃어봤다”며 기뻐했다.

인터뷰│대한치매학회 이재홍 이사장

김씨 모녀는 대한치매학회가 진행하는 ‘일상 예찬 캠페인’에 지난 7일 참여했다. 치매 환자와 보호자에게 일상의 중요성을 일깨워주기 위한 행사다. 대한치매학회 이재홍(서울아산병원 신경과·사진) 이사장을 만나 이 캠페인의 내용과 의미를 물었다.

매년 가을에 보호자 동반
치매 환자 단체 나들이
일상생활 수행 능력 길러

우리나라 치매 현황은.
“지난해 중앙치매센터가 발표한 연차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치매 환자 수는 65만여 명이다. 65세 이상 노인 10명 가운데 1명은 치매인 셈이다. 노인 인구가 늘면서 치매 환자도 많아졌다. 한국의 고령화 속도는 빠른 편이다. 전체 인구 중 노인 비율이 14%를 넘으면 ‘고령사회’라고 하는데, 현재 우리나라 노인 비율은 13% 정도다. 1~2년 내에 고령사회 문턱을 넘을 것이다.”
노인 인구 증가로 치매 환자가 늘어나나, 아니면 치매 발생률 자체가 높아지나.
“국내 치매 발생률은 정확히 알 수 없다. 미국 등 선진국에는 관련 데이터가 있다. 반가운 소식은 유럽과 북미에서 치매 발생률이 줄고 있다는 것이다. 해외 학자들은 대략 세 가지 이유를 꼽는다. 우선 일상생활 개선이다. 넓은 범위에서 뇌 건강에 악영향을 끼치는 고혈압·당뇨·고지혈증을 적극적으로 관리했기 때문이라는 것. 또 조기 진단과 적극적인 대응으로 치료 효과를 높였다고 본다. 치매 전 단계나 초기부터 잘 관리하면 중증 치매로 진행되는 것을 억제할 수 있다. 교육 수준이 높아지면서 치매 환자가 줄어든다는 의견도 있다.”
일상 예찬 캠페인 효과는.
“이 캠페인은 경증 환자와 보호자를 대상으로 일상생활 수행 능력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해 기획됐다. 일상생활 수행 능력은 식사, 화장실 이용, 목욕 같은 신체적 능력뿐 아니라 전화 사용, 음식 장만, 돈 관리 같은 도구적 능력까지 포괄한다. 도구를 사용한 일상 활동을 독립적으로 얼마나 잘 수행하느냐를 의미한다. 치매 초기부터 적극 관리해야 일상생활 수행 능력을 최대한 유지할 수 있다. 보호자의 간병 부담을 더는 데도 도움을 준다. 치매 환자 자신도 문제지만 환자를 간병하는 보호자의 부담도 매우 크다. 경증 치매 환자와 가족이 함께 야외 또는 참여 공간에서 활동하게 해 환자뿐 아니라 보호자의 삶의 질을 높이도록 돕는다.”
캠페인의 구체적인 내용은.
“2012년부터 매년 가을 진행해 오고 있다. 올해는 지난달 23일부터 5주간 매주 금요일에 국립현대미술관 조각공원을 찾는다. 환자와 보호자 200여 명이 참여할 예정이다. 단순한 관람에 그치지 않고 색종이와 가위를 이용해 직접 미술 활동에 참여한다.”
5년간 사업을 진행했는데, 치료 효과는.
“행사에 참여한 환자와 보호자의 만족도가 매우 높다. 일상생활 수행 능력이 향상되는 모습을 본다. 미술 체험을 포함한 일상생활 체험이 환자의 잠재된 능력을 끌어내고 활기를 찾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얼마나 일상생활 수행 능력을 높였는지 정확히 분석하기 위한 사업평가가 진행 중이다.”
개인적으로 치매 환자와 함께 나들이하는 것과 어떤 차이가 있나.
“치매 전문 인력이 참가한 상태에서 진행해야 더 큰 효과를 얻을 수 있다. 프로그램 진행자의 시각에서만 프로그램을 기획하거나 반대로 환자와 가족에게 제공하는 내용에만 집중하면 안전사고를 비롯한 여러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국가 치매 정책에 제안할 게 있다면.
“2008년 치매 종합관리계획이 발표된 후 많은 예산이 투입되고 다양한 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이전과 비교하면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그러나 여전히 아쉬운 부분이 있다. 우선 치매 조기 진단을 위한 대규모 선별 검진에 필요 이상으로 많은 예산과 인력이 투입된다는 점이다. 물론 치매 조기 검진은 치매 관리에 중요하지만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 대규모 선별 검진이 치매 관리에 도움이 되느냐는 별개의 문제다. 대규모 선별 검진이 오히려 치매에 대한 공포를 조성하고 부정적 인식 확산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가짜 치매 환자를 양산할 우려도 크다. 검진사업에 매몰돼 치매 환자와 함께 생활하는 사회를 조성하기보다 오히려 치매 환자를 빨리 발견해 조기에 소외시킬 우려도 크다.”
치매 사업이 파편화돼 있다는 지적도 있다.
"치매가 주요 관심사로 떠오르면서 정부 부처와 지자체별로 다양한 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 치매 전문 인력 없이 산발적으로 진행되는 데 그치고 있다. 다양한 분야의 전문 인력이 참여한 가운데 체계적이고 종합적인 대응방안을 결정할 필요가 있다. 치매 환자를 정책적으로 관리만 하는 게 아니라 이들이 사회 안에서 편안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치매학회의 일상 예찬 캠페인이 이런 변화의 출발점이 됐으면 한다.”

김진구 기자 kim.jing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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