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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강기봉 소방사 아버지 “인원 많았더라면…그래도 원망 않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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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활동 중 순직한 울산 온산소방서 고(故) 강기봉 소방사의 빈소. [사진 뉴시스]

원망이요? 글쎄, (구조대원) 인원이 더 많았으면 사고가 안 났으려나 그런 생각은 하지요. 하지만 원망한들 무슨 소용 있겠어요.”

7일 오후 11시30분쯤 울산 남구 여천동 울산영락원에 차려진 고(故) 강기봉 소방사의 빈소를 찾았을 때 그의 아버지 강상주(62)씨는 초췌한 모습으로 조문객들을 맞고 있었다.

강씨는 1983년부터 31년 동안 제주에서 소방관으로 일하다 2014년 6월 정년퇴직했다. 마른 체격이지만 다부져 보이는 그는 새벽녘까지 아들을 찾아준 이들의 손을 잡고 일일이 “고맙다”고 인사했다.

울산 울주군 온산소방서 소속인 강 소방사는 지난 5일 태풍 ‘차바’로 폭우가 쏟아진 낮 12시 6분 울주군 회야댐 수질개선사업소 앞에서 구조활동을 하다 실종된 뒤 다음날 오전 11시13분 실종 장소에서 3㎞ 정도 떨어진 온양읍 덕망교 근처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뒤늦게 ‘2대째 소방관’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그의 사망소식은 많은 사람을 안타깝게 했다. 아버지 강씨는 “내가 활동하던 20년 전보다 장비는 좋아졌는지 몰라도 인원이 줄어 근무환경은 더 열악해졌다”며 한숨을 쉬었다.

“20명이 2교대 하면 10명씩 나눠서 구조할 사람 구조하고 불 끌 사람 불 끄면 되는데 그게 3교대로 나눠지면 6~7명이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고, 요즘 소방관들은 만능이 돼야 해요.”

강씨는 그러면서 “어떤 상황에서든 자기 할 일을 하는 것이 소방대원의 의무”라며 “다른 사람을 구하려다 이렇게 된 것이니 할 일을 한 것 아니냐”고 의연한 모습이었다.

그는 평소 아들에게 ‘나보다 남을 먼저 위하라’고 가르쳤다고 했다. “항상 남보다 한 발 앞서 나서라고 했는데 지금 생각하니 그게 바보 같은 짓이었나 싶기도 하고….” 애써 담담하게 얘기하던 강씨의 충혈된 눈에 다시 눈물이 고였다.

그럼에도 그는 소방관으로 산 인생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했다. “나도 열심히 했고 아이(강 소방사)도 자기가 좋아서 한 일이니 후회는 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제주 한라대 간호학과를 졸업하고 가족이 있는 제주를 떠나 서울에서 간호사 생활을 하던 강 소방사는 꿈을 이루기 위해 연고가 없는 울산에서 지난해 4월 구급대원으로 소방공무원 생활을 시작했다. 고향인 제주도에는 자주 가지 못했다. 강씨가 아들의 생전 마지막 모습을 본 것은 지난 추석이 일주일 정도 지난 9월 20일쯤이었다.

강 소방사의 한 동료는 “기봉이가 참 착해서 짓궂은 장난을 쳐도 늘 웃으며 받아주곤 했다”며 “올해 본 제주도 소방공무원 시험에서 떨어진 것이 너무 한스럽다. 붙었으면 이렇게 안 됐을 텐데”라며 고개를 떨어뜨렸다. 이 동료는 “7명으로 구조활동을 하는 것도 무리지만 그나마 3교대로 7명씩 일하려면 21명이 있어야 하는데 그 인원이 안 되니 얘(강 소방사)가 그날 대기조로 일을 한 것”이라며 “사람이 없어도 너무 없다”고 토로했다.

표창원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은 7일 안전행정위원회의 국민안전처 국정감사에서 “구급대원이 구조현장에 투입된 것은 인력 부족 때문”이라며 “울산 소방관 정원이 1100명인데 628명만 일하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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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정을 훌쩍 넘은 시간에도 빈소에는 50~60명의 조문객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7일 오후 부산에서 온 일반인 조문객 권희범(25)씨는 “끝까지 구조활동에 최선을 다한 강 소방사님의 희생정신에 고개가 숙여진다”고 말했다.

강 소방사의 장례는 8일 오전 10시 종하체육관에서 울산시청장(葬)으로 치러진다. 영결식에서 고인은 1계급 특진(소방사에서 소방교)과 옥조근정훈장을 받는다.

울산=최은경 기자 chin1chu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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