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르디올라, 축구의 두 마리 토끼 다 잡은 감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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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껏 프리미어리그에서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축구다."

잉글랜드 축구의 전설 앨런 시어러(46)는 최근 프리미어리그 맨체스터 시티(이하 맨시티)의 경기를 지켜본 뒤 이렇게 말했다. 펩 과르디올라(45·스페인) 맨시티 감독을 향한 찬사다.

2008년 아랍에미리트(UAE) 석유재벌 셰이크 만수르가 인수한 맨시티는 '오일 머니'를 앞세워 세르히오 아게로(28) 등 스타급 선수들을 줄줄이 영입했다. 맨시티는 2012년과 2014년 프리미어리그 우승을 차지했지만 정작 유럽 챔피언스리그에서는 번번이 좌절을 맛봤다. 지역 라이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밀려 2인자에 머물렀다.

맨시티는 올 시즌 개막을 앞두고 감독으로는 전세계 최고 연봉인 1500만 파운드(약 219억원)를 주고 과르디올라를 영입했다. 그 결과 맨시티는 올 시즌 프리미어리그에서 6승1패로 선두를 달리고 있다. 유럽 챔피언스리그 포함 각종대회에서 10승1무1패를 기록 중이다. 반면 맨유는 리그 6위에 그치고 있다.

과르디올라 감독은 전통적으로 힘과 스피드를 펼치는 잉글랜드 축구에 스페인의 패스 축구를 결합시켰다. 탁월한 전술 분석 능력도 그의 장점이다. 맨시티 케빈 더 브라위너(25)는 지난 17일 본머스와의 5라운드 경기에서 프리킥을 땅볼로 깔아차 득점으로 연결했다. 본머스 수비벽이 세트피스 때 높게 점프하는 걸 미리 간파한 과르디올라 감독의 전략이었다.

과르디올라 감독은 선수 시절부터 영리한 축구를 했다. 그는 1990년부터 11년간 스페인 프로축구 FC바르셀로나에서 뛰었다. '토털 사커(전원 공격 전원수비)'를 펼친 고(故) 요한 크루이프 감독의 중심축 역할을 했다. 과르디올라는 단순히 수비형 미드필더가 아닌 후방 조율사였다. 수비를 할 때는 압박에 가담하고, 공격에 나설 때는 볼을 골고루 배급했다.

2007년 바르셀로나 2군 감독으로 지도자를 시작한 과르디올라 감독은 '스승' 크루이프의 토털 사커를 계승, 더욱 진화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듬해 바르셀로나 1군 감독을 맡아 리오넬 메시(29)와 함께 티키타카(탁구 치듯 짧고 빠른 패스 플레이)를 펼치며 트레블(리그·컵대회·유럽 챔피언스리그 등 3개 대회 우승)을 달성했다. 2013년부터는 독일 바이에른 뮌헨을 이끌고 3시즌 연속 분데스리가 우승을 차지했다.

한준희 KBS 해설위원은 "과르디올라는 축구의 아름다움과 성적,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은 감독이다. 그가 전술을 만들면 전 세계적으로 유행이 된다"고 말했다. 티키타카, 폴스 9(False 9·가짜 공격수가 최전방과 미드필더를 오가는 전술), 포어 리베로(Fore Libero·수비수가 수비형 미드필더까지 소화하는 변형 스리백) 등이 대표적이다. 한 위원은 "축구 지도자는 크게 알렉스 퍼거슨 전 맨유 감독처럼 위대한 지도자, 아리코 사키 전 AC밀란 감독처럼 전술적 혁명가가 로 나뉜다"며 "과르디올라 감독은 9년 만에 총 22차례나 우승을 이끌었고, 축구 전술 패러다임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는 위대한 지도자 겸 전술적 혁명가"라고 말했다.

과르디올라 감독은 맨시티 감독을 맡은 뒤 또 다시 진화했다. 그는 지난 5월 발간된 자서전『과르디올라 컨피덴셜』을 통해 "티키타카는 쓰레기다. 패스를 위한 패스를 한다는 뜻인데, 목표도 없고 공격성도 없다"고 주장했다. 맨시티는 올 시즌 프리미어리그에서 유일하게 볼 점유율이 60%를 넘는다. 단순히 티키타카에만 얽매이지 않고 강력한 압박을 펼친다. 공격을 할 때는 선수 대부분이 가담해 패스를 주고받은 뒤 상대팀 골망을 흔든다. 시어러는 "올 시즌 맨시티는 11명이 아닌 14명이 뛰는 것 같다"고 말했다.

과르디올라 감독은 평소엔 차분하지만 자기만의 철학이 확실하다. 팀과 전술에 맞지 않은 선수는 과감히 내친다. 맨시티 지휘봉을 잡은 뒤 아프리카 올해의 선수 4연패에 빛나는 야야 투레(33)를 명단에서 제외했다. 투레의 에이전트가 맹비난하자 과르디올라 감독은 투레를 아예 전력 외로 분류했다.

과르디올라 감독은 지난 2일 손흥민(24)을 막지 못하고 토트넘에 첫 패배를 당했다. 화가 난 그는 클럽하우스 내 무선랜과 와이파이를 끊어버렸다. 선수들이 스마트폰 사용을 줄이고 서로 소통하라는 취지에서였다. 부임하자마자 선수단에게 피자 금지령을 내렸고, 아침과 점심식사를 함께하도록 했다. 그는 자신이 믿는 선수들에겐 무한 신뢰를 보낸다. 올 시즌 4골을 터뜨린 맨시티 미드필더 라힘 스털링(22)은 "과르디올라 감독은 모든 선수들에게 자신감과 믿음을 준다"고 말했다.

박린 기자 rpark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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