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년 전 오늘 수류탄을 덮쳐 부하를 살리고 강재구 소령이 산화했다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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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강재구 소령. [중앙포토]

절체절명의 순간, 단 5초만 망설여도 모든 사람의 목숨이 끊어진다는 게 확실한 순간, 쉽사리 자신의 목숨을 던질 수 있을까.

평범한 사람이라면 엄청난 두려움에 발끝 하나도 떼기 힘든 상황에도 단호히 자신의 목숨을 바쳐 사람을 살리는 사람이 있다.

1965년 10월 4일 당시 29세이던 고 강재구 소령은 폭발하는 수류탄을 몸으로 막아 부하들을 살리고 꽃같은 나이에 삶을 마감했다. 52년 전 오늘의 일이다.

1965년 맹호부대 제1연대 제10중대장이던 강재구 소령은 베트남 파병을 앞두고 대원들과 강원 홍천 훈련장에서 수류탄 투척 훈련을 실시했다. 한 이등병이 안전핀을 뽑은 수류탄을 던지려다 손에서 미끄러졌고, 하필 수류탄은 중대원들이 모여있는 곳으로 굴렀다. 중대원이 모여 있기에 수류탄을 다른 곳으로 찰 수도 없어 무수한 대원의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

강재구 소령은 망설임없이 수류탄으로 몸을 날렸다. 그가 덮친 몸 아래로 수류탄의 폭발음이 들렸고 강재구 소령은 산화했다. 아내와 어린 아들 그리고 홀어머니를 두고 떠났지만, 그가 있기에 무수한 대원들이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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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강재구 소령 영결식. [중앙포토]

그는 홀로 계신 어머니에게 매달 작은 월급을 쪼개 꼬박꼬박 보내던 효자이기도 했다.

독실한 기독교인이던 그는 늘 작은 성경책을 품에 지니고 다녔다. 사망 당시 그의 군복 주머니에 있던 성경책엔 한 글귀에 빨간 밑줄이 쳐 있었다.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요한복음 15:13)

육군은 그의 희생정신을 높이 평가해 소령으로 1계급 특진시켰고 4등 근무공로훈장을 추서했다. 그가 생전 마지막으로 속한 맹호부대 제1연대 제3대대를 ‘재구대대’로 이름붙였다. 숨진 지 1년 뒤엔 태극무공훈장이 추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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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사관학교에 건립된 고 강재구 소령 동상. [중앙포토]

모교였던 서울고등학교엔 그의 흉상이 세워져 있고, 육군사관학교에도 동상이 서 있다. 숨을 거둔 곳인 강원 홍천엔 강재구공원이 있어 그를 기리고 있다.

이정봉 기자 mol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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