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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기록 보면 더 무서운 경주 강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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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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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화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명예교수

지난 12일 경주에서 규모 5.1의 전진(前震)과 5.8의 본진, 그리고 19일 4.5의 여진 등 강력한 지진이 발생해 국민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본진은 1905년 이 땅에서 지진관측을 시작한 이래 한반도 남부에서 발생한 최대 규모의 지진이다. 다행히 이 지진들에 의한 사망자나 건조물 붕괴는 발생하지 않았다. 지진 규모는 컸지만 땅 위로 전달된 진도는 크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쓰는 수정 메르칼리(MM) 진도를 기준으로 본진의 진도는 6으로 1978년 홍성 지진(규모 5.0, 진도 8)보다 낮다. 지진에는 인명과 재산피해를 불러오는 부정적인 측면이 크지만 다가올 지진재해 피해를 줄이는 데 도움이 되는 교훈을 주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

가장 큰 교훈은 역사상 지진의 중요성을 부각시킨 것이다. 필자는 33년 전인 1983년에 역사상 지진을 분석해 경주 부근을 통과하는 양산단층이 명백한 활성단층이며, 지금도 강진이 발생할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또 삼국사기 등 역사에 기록된 2200여 차례 지진의 진앙과 규모를 결정하고 한반도 지진활동의 특성을 밝힌 논문을 2006년 미국지진학회지에 발표했다. 그러나 역사상 지진의 진앙과 크기를 현대적 지진계 기록으로 뒷받침할 수 없다는 이유로 그 중요성을 제대로 평가받지 못해 왔다.

역사적 분석에 의하면 20세기 이후 계기로 측정된 한반도의 지진활동은 이전 1900년간 기록된 지진활동에 비하면 거의 무시할 수 있을 정도다. 전 세계 대규모 활성단층들은 지진활동이 각기 달리 나타나는 몇 개의 구역(segment)으로 구분된다. 이는 각 활성단층에서 발생 가능한 지진의 최대 규모를 제한하기 때문에 재해 예측 및 대응 측면에서 매우 중요하다. 예컨대 필자는 지난 1991년 2000년간의 역사 자료를 근거로 양산단층을 세 구역으로 나누고, 경주가 포함된 중부구역에서 발생 가능한 최대 규모를 6.7로 평가했다. 이러한 작업은 20세기 이후의 계기로 기록된 지진자료만으로는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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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진에 대한 가장 이상적인 대처는 미리 아는 것이다. 그러나 전 세계 지진학계의 일반적인 인식은 지진예측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지구 내부에 위치하는 활성단층이나 거기에 작용하는 응력의 분포를 땅 위에서 직접 관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활성단층에서 끊임없이 발생하는 수많은 미소(微小) 지진들의 일부가 대규모 지진으로 확대되는 메커니즘을 아직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그 대안으로 떠오른 것이 조기경보다. 기상청은 지난해부터 규모 5.0 이상의 국내 지진이 발생하면 50초 이내에 국민안전처 등 유관기관에 통보하고 있다. 2020년까지는 이를 10초로 단축하는 작업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 경주 지진에선 기상청이 규정대로 국민안전처에 통보했음에도 국민들이 재난문자를 받는 데 8분가량 지연됐다. 조기경보는 최대한 시간을 단축하는 데 그 의의가 있으므로 우리나라도 일본처럼 직접 기상청이 발령하도록 조정해야 한다.

지진을 파악하는 기상청의 능력도 보다 강화돼야 한다. 이번 경주 지진의 피해가 규모에 비해 이례적으로 적은 이유로 지진이 비교적 깊은 15㎞에서 발생되었음이 지적되고 있다. 지진 피해는 진원 깊이와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진앙과 진원 깊이는 지각구조 모델에 의해 결정되며 깊이가 모델에 더 민감하다. 현재 기상청이 사용하는 모델은 IASP91로 20㎞ 깊이에 상부지각과 하부지각을 구분하는 콘라드(Conrad)면이 있다. 그러나 한반도의 지각에 콘라드면이 존재하지 않으므로 기상청의 분석모델은 이를 반영하는 것으로 교체해야 더욱 정확한 깊이를 결정할 수 있다. 또 기상청 홈페이지 지진목록에 진앙 깊이도 제시돼야 한다.

다행히 경주 지진이 인근 고리·월성 원자력발전소의 안전성에 큰 문제를 제기하지는 않은 것 같다. 그러나 이번 경주에서 발생한 강진들은 원자력발전소 내진 설계의 중요한 요소인 지반진동감쇠에 대한 새로운 정보를 제공했다. 이 정보와 기타 추가 정보에 근거해 발전소 지진 재해를 재평가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역사 지진 기록에 의하면 779년 경주에서 집들이 무너지고 100여 명이 사망한 지진 등 규모 6.7로 평가되는 지진이 4회 발생했다. 양산단층에서 앞으로 이 규모의 강진들이 발생하리라 예상되지만 그 시기를 정확히 예측할 수 없다. 한반도는 유라시아판 내부에 위치해 판 내부 지진활동의 전형적인 특성인 불규칙성을 보여 준다. 판 내부 지진활동은 판구조론으로 설명이 어렵기 때문에 전 세계 지진학계의 화두가 돼 있다. 달리 말하면 우리나라는 판 내부 지진활동 연구를 위한 좋은 환경을 구비하고 있다. 정부의 획기적 지원으로 국내에 충분한 연구 인력이 확보되면 한반도 지진 재해를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전 세계 판 내부 지진 연구를 주도하는 훌륭한 연구성과도 많이 나오리라 생각한다.

이 기 화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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