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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핵무기 경쟁과 군비 딜레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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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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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근식
경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북한이 5차 핵실험을 강행했다.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시험 발사 이후 북핵은 이제 실존하는 위협으로 다가오고 있다. 미사일에 탑재 가능한 핵탄두 폭발 실험이 성공했음은 명실상부한 핵무기 보유로 진입했음을 의미한다. 자연스럽게 우리도 핵무장론이 힘을 얻고 있다. 남과 북이 핵으로 맞대결하는 민족 공멸의 핵 분단체제에 빠져들고 있다.

북핵·사드 둘러싼 국제 갈등은
불안정한 정전체제에서 비롯
북한 도발에 강력히 대응하되
평화체제 구축 위한 대화 필요

자고 나면 하루가 멀다 하고 남북의 군비 경쟁이 가속화되고 있다. 북한의 장사정포와 단거리 미사일에 대응하기 위해 우리 군은 이미 킬체인과 한국형미사일방어(KAMD) 체계라는 무기 시스템을 개발해 오고 있다. 기존의 PAC-2로는 모자라 PAC-3 미사일을 들여오기로 했다. 북한은 무수단 시험 발사를 성공시켰고 우리는 서둘러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배치를 결정했다. 사드의 취약 부분을 보완하기 위해 우리는 또 이지스함의 SM-3 미사일이 필요하다. 다시 북한은 사드를 무력화하기 위해 SLBM 시험 발사를 성공시켰고 우리는 다시 핵잠수함 추진을 고민하고 있다.

끝도 없는 남북의 군비 경쟁을 보노라면 마치 최첨단의 최강병기가 총출동하는 전쟁게임에 빠진 듯하다. 그러나 지금의 무제한 군비 경쟁은 오락실의 게임이 아니다. 우리가 발 딛고 살고 있는 한반도의 엄연한 현실이다. 세계 10위의 교역국가가 세계에서 가장 치열한 군비 경쟁의 시험장이 되고 있다. 세계 최고의 휴대전화와 자동차 생산국가가 일촉즉발의 전쟁 위기 속에서 생활하고 있다. 언제부터인지 우리에게 평화란 단어는 실종됐고 평화불감증이 일상화됐다. 무기의 과잉이자 평화의 빈곤이다. 군비 경쟁의 끝은 결국 군사적 충돌과 전쟁으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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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비 경쟁은 안보 딜레마(security dilemma)에서 비롯된다. 자국의 방어적 군비 증강이 상대방에게 공세적 군비 확장으로 인식되는 딜레마다. 스스로는 방어적으로 여겨지는 조치들이 상대방에게 불안감으로 간주되는 구조적 악순환이다. 정전체제 아래 군사적 대치상황의 한반도는 전형적인 안보 딜레마의 현장이다.

북한은 한·미 군사훈련을 북침용 전쟁 연습으로 비난하고 B-2, B-52 폭격기의 한반도 출동을 자신들에 대한 핵 선제공격으로 간주한다. 5차례의 핵실험과 다종의 미사일 발사 실험도 북한엔 자위적 핵 억제력으로 정당화된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은 당연히 한국에 절체절명의 현실적 안보 위협으로 여겨진다. 중국의 반대에도 사드를 배치하고 막대한 비용에도 최첨단의 무기를 새로 구입해야 한다. 현실적인 어려움과 예상되는 미국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핵을 핵으로 막을 수밖에 없다는 핵무장론이 여전히 존재한다.

안보 딜레마와 군비 경쟁은 동북아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중국과 미국은 전략적 협조가 필요하지만 동북아에서는 상대의 군비 증강에 가장 민감하다. 미국의 미사일방어(MD) 체계는 명목상 방어용이지만 상대의 미사일 공격 능력을 원천 봉쇄한다는 점에서 가장 공격적인 무기체계로 간주된다. 중국은 미 항공모함의 역내 진입을 봉쇄하기 위해 항모킬러용 둥펑(東風) 미사일을 실전 배치한다. 사드 배치에 대한 미국과 중국의 팽팽한 신경전은 안보 딜레마의 극적인 사례다. 자국을 방어한다는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도 인접 국가엔 공세적 군비 증강의 정당화로 비친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는 일본 열도의 무장을 정당화하는 구실로 활용된다.

한반도와 동북아의 안보 딜레마는 평화와 협력과 통합 대신 전쟁과 갈등과 대결에 친화적이다. 경제 협력과 사회·문화 교류에도 불구하고 정치·군사적 불안이 상존하는 아시아 패러독스는 바로 안보 딜레마의 다른 표현에 불과하다.

안보 딜레마의 해법은 두 가지다. 추월 불가능한 절대적 군사 우위를 통해 완벽한 억지력을 확보하는 것이다. 그러나 절대적 억지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또한 군사적 절대 우위의 국가가 선제공격의 유혹에 노출된다는 점에서 전쟁이라는 파국의 위험성이 높다. 둘째는 상호신뢰와 평화체제의 구축이다. 안보 딜레마의 불안감은 상대를 믿지 못하는 군사적 긴장 관계의 산물이다. 직접 군사적으로 대치하고 있는 남북은 물론이고 미·중 간, 중·일 간, 북·일 간에도 상대를 잠재적 전쟁 상대로 간주하는 한 안보 딜레마는 지속될 수밖에 없다.

결국 안보 딜레마는 한반도 평화 부재가 핵심 요인이다. 평화체제 구축으로 안보 딜레마를 해소해야 한다. 최고조에 달한 군사적 긴장을 완화하고 상호신뢰의 평화체제를 논의하기 위해 당장 군사회담에 나서야 한다. 북한의 도발에는 단호히 대응하면서도 군비 경쟁의 악순환을 막기 위한 협상을 주저할 필요는 없다. 핵 위협과 핵무장이 맞부딪치는 핵 군비 경쟁의 가속페달을 지금이라도 중단해야 한다. 한반도 평화체제라는 단어 자체가 사라져 버린 지금 평화의 가능성과 평화의 힘과 평화의 노력을 다시 시작해야 한다.

김근식 경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