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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 지하 400m에 폐기물 저장…스위스는 6.0 지진 견디게 설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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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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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2일 스위스 방사성 폐기물 처분 연구시설인 그림젤에서 잉고 블레슈미트 박사가 사용 후 핵연료를 보관하는 철제 원통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 원통은 탄소강 물질로 이뤄졌다. [사진 한국원자력문화재단]

호수의 나라로 불리는 핀란드. 겨울이면 수도 헬싱키는 섭씨 영하 20도 이하로 내려가 집집마다 난방은 필수다. 난방에 쓰이는 천연가스는 러시아산을 수입한다. 주변국 정세가 불안하면 천연가스 공급이 끊길 위험에 노출돼 있다. 핀란드는 에너지 독립을 위해 70년대부터 원자력 발전소를 운영했다. 전체 전력 생산량에서 원전이 차지하는 비율은 33%로 한국과 비슷하다. 한인 이보영(49)씨는 “한 달 전기료는 7만~8만원 수준으로 겨울철에 전기 난방기구를 사용해도 무리가 없다”고 말했다.

유럽 각국 원전 폐기물 관리 대책

핀란드는 지난해 세계 최초로 사용후 핵연료를 영구 저장 시설을 건설하기 시작했다. 사용후 핵연료는 방사성 물질 함유량이 높아 고준위 폐기물로 분류된다. 처분장 운영업체 포시바의 킴모 레토(43) 판매부장은 “핀란드에는 태양광도 충분치 않은데다 바람도 약해 원전을 포기할 수 없다”고 말했다.

올해는 1956년 영국에서 최초로 상업용 원전을 운행한지 60주년이 되는 해다. 원전은 효율이 뛰어난 발전 방식이다. 연료비는 석탄의 7분의 1, 천연가스의 27분의 1에 불과하다. 석유·가스 자원이 부족해 에너지원을 해외에 의존하는 나라가 원전을 많이 가동하는 이유다. 문제는 핵연료를 쓰기 때문에 폐기물도 위험하다는 점이다. 최소 10만년 동안 방사성 물질이 나와 인간에게 해롭다.

70년대부터 원전을 본격적으로 짓거나 가동한 핀란드·스위스·스페인 등에서는 원전 내 부지에 폐기물을 임시 저장했다. 하지만 40~50년 밖에 버티지 못한다. 그래서 원전 폐기물 영구 저장시설이 필요하다. 이들 국가에서 폐기물 처분장 건설에 속도를 내는 이유다. 핀란드는 83년부터 부지 선정 작업에 들어가 14년 만인 97년 수도 헬싱키로부터 200㎞에 떨어진 지역에 폐기물 저장시설을 건설하기로 결정했다. 저장시설을 만드는 포시바 직원 아리 안틸라(50)는 “원래 원전이 있던 지역이라 주민 이해도가 빠른데다 연간 세수의 3분의 1을 지원해주기 때문에 찬성 비율이 절반 이상 나왔다”고 말했다.

핀란드는 25만년마다 오는 빙하기까지 대비해 400m 이상 깊은 지하에 폐기물을 저장한다. 개당 2억원인 폐기물 저장용 구리 원통도 개발했다. 이재학 한국원자력환경공단 사용후핵연료사업추진팀장은 “유럽이나 아시아에서 폐기물 저장소 건설이 본격화하면 핀란드는 기술을 수출하는 사업도 구상하고 있다”고 말했다.

스위스는 한국을 포함한 세계 12개국과 함께 폐기물 처분 기술을 공동 연구하고 있다. 해발 1730m 높이의 산악지대에서 450m 깊이의 동굴을 파 연구시설을 만들었다. 규모 6.0의 지진이 50~100년 마다 일어나는 곳이라 지각이흔들리는 상황에도 대비하고 있다.

지역 주민과 갈등을 빚는 곳도 있다. 스페인은 2011년 고준위 폐기물을 60년간 저장할 수 있는 중간 처분장을 수도 마드리드에서 120㎞ 떨어진 소도시에 건설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지자체 반대로 소송이 걸리면서 사업이 중단됐다. 마을에서는 “노인들만 있어 경제를 살리기 위해 처분장이 필요하다”는 주장과 “와인 농장이 있는 환경을 보호해야 한다”는 주장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한필수 전 국제원자력기구(IEAE) 방사선·수송·폐기물안전 국장은 “해외 사례를 단편적으로 보지 말고 국토가 좁고 인구 밀도가 높은 한국의 특성을 감안해 지역 주민을 충분히 설득해 폐기물 문제를 풀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민상 기자 kim.mins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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